온정주의 풍토에 맞선 정의 과녁과 활시위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동안 화두가 됐다. 법이 정의는 아니지만 정의의 주요한 한 측면은 돼 보인다. 일반사람들 가운데 법, 경찰, 법원과 친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법에 의지하는 사람, 법을 이용하는 사람, 법 없이 사는 사람 등 우리는 이래저래 법과 연루돼 살아간다. 법은 정말 약자의 편에서 부조리함을 벗겨주는 것인가? 영화 ‘부러진 화살’이 법의 세계를 파헤친다. 2007년 1월 15일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의 일명 ‘석궁테러사건’이 다뤄졌다.

당시 뉴스는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피의자가 석궁으로 담당판사를 쐈다’는 것이 요지였다. 결국 기나긴 재판으로 그는 4년형으로 선도받고 감옥에 있다. 1995년 대학별 입학 고사 수학문제 채점위원으로 선정된 前 성균관대 수학과 김 조교수는 문제 출제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대학당국 및 동료 교수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후 조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부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냈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각당한 뒤 외국으로 나간다. 2005년 힘든 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학교를 상대로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서 나선다. 하지만 패소하게 되고 ‘법전대로 하지 않아 자신에게 패소를 안겼다’며 담당 판사인 박홍우의 집에 찾아가 실랑이를 벌이다가 석궁을 발사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건이다.
 
법원의 권위에 당당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바로 김 교수의 대충(?)할 수 없는 근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중에는 석명권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석명권(형사소송규칙 141조)은 검사의 발언(공격)에 불분명한 곳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신청하는데, 재판장이 검사나 피고인(변호인)에게도 신청할 수 있다. 이 석명권을 통해 재판관을 직무유기로 고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비상식이 상식을 힘으로 누르는 데 대한 한 인간의 몸부림이자 온정주의적 사법 풍토에 대한 절규인 셈이다. 김명호 교수를 아집과 권위 그리고 독선으로 똘똘 뭉쳐 자기를 파멸시킨 편집증환자로 매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차라리 법은 필연적으로 공정할 수 없는 1% 자본가들의 계급지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선언이 더 솔직한 공감을 얻지 않을까싶다. 이 영화는 소통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다. 결코 만날 수 없고, 만날 것 같지도 않은 평행선상에서 정직하려고 했던 수학교수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한국식 셈법’에 걸린 희생양이 아닌지 안타까움을 주기 때문이다.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키워드는 ‘시위자(The protester)’다. 화살은 시위다. 올 한해 수많은 화살이 날아갔고 또 부러졌다. 화살은 양심이고 상식이고 관통하는 의지다. 최근 우리는 수많은 김교수를 만난다. 촛불과 시민사회의 등장은 99%의 화살이 무수히 장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법부의 부러진 신뢰까지도 꿰뚫는 ‘부러진 화살’은 이 시대의 양심을 걸고 날아가고 또 날아갈 것이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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