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로 기억된 21세기 프랑켄슈타인과 복수

성형이 대세다. 바야흐로 중성의 시대다.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피부 관리에 정성을 쏟는다. 지금처럼 피부가 뇌보다 앞선 시대는 없었다. 이성이 감성으로, 이제는 감각으로 시대를 관통한다. 늙음은 자연스럽지만, 그대로 인정되진 못한다. 피부는 이제 삶의 기억이고 미화이며 궤적이다. 영화 ‘내가 사는 피부’가 우리의 피부 속으로 깊게 들어왔다.

21세기에 다가온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바야흐로 신경계가 모호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피부를 경계로 심리적 실물 세계가 나뉘어진 기분이다. 베라를 칭칭 둘러싼 천 조각의 배치는 사랑과 복수가 뒤범벅된 욕망의 경계지점이다. 성형외과 로버트 박사는 아내와 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베라를 통해 완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피조물, 괴물 안이 로버트 박사가 살아가야 할 근거지다. 박사가 만든 아픔의 파열조각들을 이어붙인 ‘피부’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래서다. 한 사람의 상실과 상처가 기이한 미적 감각으로 표현된 이 영화는 양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데 기여를 한다. 단순히 성전환자의 얘기를 뛰어넘는 감독의 상상력과 파괴력이 돋보이는 이유다.
 
베라를 둘러싼 비밀의 궤적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관문을 피부로 보고, 그 피부로 기억되는 삶의 다양한 찰나와 의미, 그리고 고뇌와 본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증오가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표면적으로 완벽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을 허문 데 대한 과학의 폭력에도 경종을 울린다.
 
이 영화는 11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높은 몰입도와 스타일을 보여준다. 모호함 속에 반전이 숨어있는 베라의 비밀이 흉측하지만 아름다운 피부로 되살아나고 있는 얘기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단순한 줄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표현력과 기이함이 묘한 재미와 상상력을 부추긴다. 로버트 성형외과 박사가 피부를 완벽히 복원해 내지만, 여성의 내부적 피부인 질을 둘러싼 성적 욕망의 내러티브는 꽤 인상적이다.
 
원치 않은 성(姓)을 지닌 여자와 원치 않은 성(性)을 지닌 남자, 이 둘이 함께 살아 숨 쉬는 피부가 보여주는 새로운 복수극 ‘내가 사는 피부’. 스킨십이 이성적, 존재적 감각으로 자리잡기까지 인간의 신경계 변천과정이 이 한 편의 영화 속에 번득이는 것 같아 놀랍다. 단지 살붙이에 다름 아닌 피부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장소라는 얘기가 이렇게 피부에 와 닿을 수 있을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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