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명 라디오네(마포 <민중의 집> 회원, 출판노동자)

<남성성과 젠더> 권김현영, 나영정, 루인, 염기호, 정희진, 한채윤 지음|자음과 모음|2011년 2월

나꼼수 성희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많은 논쟁이 오갔지만,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적극 문제제기를 하는 쪽에 대한 나꼼수 옹호자들의 격렬한 반응이었다. 꼴페미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핏대를 세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한혜정 교수가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했듯 갈수록 남녀대결 구도로 가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자 중심인 남성성이 궁금해졌다.
 
그런 면에서 《남성성과 젠더》는 사이버 상의 정치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어떤 기저에서 비롯되는가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불가능성’에서 저자 염기호는 2008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여성이 새롭게 정치주체로 등장하는 동안 남성에게는 두드러진 변화가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만난 세 명의 남성 사이에서 ‘국민으로서의 권리 주장과 인터넷을 통한 일상적인 정치활동, 그리고 백수’라는 공통점을 찾아낸다. 이들은 백수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국가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도 주지 않거나 무시해버리기 일쑤였다. 반면, 인터넷은 그들이 잃어버린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르고 분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들의 분노는 어디서 비롯되었고 인터넷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둘러싼 주도권의 변화를 짚어봐야 한다. 근대사회는 노동력이 부의 원천이었다. 당시의 권력은 ‘남성’의 노동력이 절대 필요했고 여성의 출산과 가사노동은 ‘보충’으로 취급했다. 때문에 부르주아 다음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것은 노동력을 쥔 남성이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1997년 IMF위기와 함께 금융자본이 자본주의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자 노동의 지위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부의 원천은 금융이 된 것이다. 남성성으로 충만했던 이전 노동의 가치는 비효율적인 것이 돼버렸다. 실제로 전 산업에 걸쳐 ‘감정노동’이 확산되는 경향은 ‘감정자본’이 없는 남성들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장을 빌려 ‘노동의 영역으로 편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네가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네가 왜 잉여가 되고 쓰레기가 되고 있는지를 납득시키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면서, 이런 상황이 남성에게는 매우 낯선 상황임을 주지시킨다. 남성이 당연하게 여기던 정치적, 경제적 주체성이 금간 것이다.
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남성성이 왜곡된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바로 ‘더치페이에 목숨을 거는 루저남부터, 자기만족적인 쾌락을 향유하는 초식남, 그리고 괴물로 진화하는 사이버 마초들’이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남성들은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소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들은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정치적으로, 남성성으로 자신들을 다시 주체화 한다. 디씨를 비롯해 까페, 아고라 할 것 없이 여성성을 배척하고, 끊임없이 공간의 정체성을 지키자며 적과 동지로 나눠 전쟁을 수행한다. “이것을 통해서 이들은 국민으로부터 추방이라는 자신들의 훼손된 정치성을 복원할 수 있다.”
 
이 책은 ‘남성성과 젠더’라는 주제로 6명의 필진이 다양한 담론을 펼치지만 필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남성성 역시 사회적 맥락과 시대에 따른 산물이라는 것이다. 본질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규정짓기는 무의미하다. 정희진의 말처럼 “젠더를 다른 사회적 모순과 상관없이 분리되어 작동하는 여성 문제로만 인식한다면 … 결과적으로 성차가 본질화된다.” 요컨대 성과 젠더보다 사회적 모순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나꼼수의 이번 실언은 싫든 좋든 많은 담론을 양산하고 있다. 일견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보이는 양상이지만 서로의 물적 토대를 돌아본다면, 이 역시 사회변동이 빚어낸 마찰이다. 위기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누군가를 해친다. 불안에 떠는 남성과 상처 받는 여성을 모두 돌봐줄 시대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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