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짧은 우리가 있었기에 K2가 성공한 거 아닙니까?”

아웃도어 토종브랜드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K2코리아. 시장 지배력을 높이며 몸집 불리기에 나선 K2가 국내에서 십 수년 간 열악한 노동조건을 묵묵히 견디며 회사 성장에 기여해 온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투쟁을 벌이자 회사는 정리해고를 철회한다고 했지만 국내 공장 폐쇄 입장은 여전하다. 노동자들은 생산라인 유지를 촉구하며 싸우고 있다. 지난 10일 K2코리아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2동에 있는 K2코리아 본사 앞에서 업무를 마친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K2코리아지회 조합원이 머리띠를 묶고 조합원 교육을 받으러 이동하고 있다. 이명익기자
“오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케이투 생산부는 울부짖는다/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고용보장 외치는 형제들 있다”,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승리하자!”

서울 성동구 성수2동 공장밀집지역 내 K2코리아 본사 앞. 오후 5시30분 경 일을 마친 K2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공장 앞에 나와 농민가를 개사해 만든 투쟁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서툰 팔뚝질을 한다.

K2코리아 본사 건물 1층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매장에는 K2코리아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수십 만원대 가격표를 단 K2 등산화와 등산복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 K2코리아는 2010년 매출액이 2600억원이었고 1년 만인 지난해 4000억원대 매출에 당기순이익만 4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급성장한 국내 아웃도어 3위 업체다.

K2코리아는 2011년 74명을 신규채용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1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아웃도어업체 중 유일하게 ‘고용창출 100대 기업’으로 선정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세금조사면세 혜택을 입었다. K2코리아는 대통령표창을 받고 두 달 만에 생산직 노동자 93명 전원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회사의 정리해고 통보 이후 드러난 K2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은 심각했다.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으며 온갖 유해물질들을 만져야 했다. 겨울에는 난로도 없이, 여름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살인적 노동을 강요당한다.

K2는 생산비용을 줄이겠다며 인도네시아에서 공장을 짓고, 5월31일부로 성수동 공장은 폐쇄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3월14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에 가입해 케이투코리아지회를 설립했다.

K2 본사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용역이 있다. 최근 K2 정리해고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회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사측은 용역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나섰다. 조합원들이 출근 길에 지각이라도 하면 관리자가 내려와 일일이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5층 공장으로 올려 보낸다.

K2코리아는 조합비 공제를 위해 임금대장을 달라는 노동조합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근속년수가 아닌 회사 관리자들 임의로 임금이 책정돼 십 수년 일한 사람이 5년 일한 사람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 드러났고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식대도 차별했다. 사무직은 5000원, 생산직은 4000원. “생산직은 식당에 가면 밥값을 깎아주나요?”, “밥을 싸와서 공장 작업대랑 복도에서 먹는데, 그 사진이 카페에 나오니까 회사는 그것 갖고도 뭐라고 해요. 창피한가 보죠.”

▲ 10일 오후 업무를 마친 K2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조합원 교육을 받기 위해 우산을 쓰고 성수역 인근에 있는 성동 근로자복지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K2’ 스티커를 붙인 ‘단결투쟁’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지영식 지회장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원래는 여기 밖에서 구호를 외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3층에서 교섭보고하고 구호도 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지금 화가 많이 났어요. 오늘 교섭한 이야기 듣고.”

오늘(10일) 5차 교섭이 있었다. 사측은 정리해고를 철회한다면서 인도네시아나 개성으로 가던지, 직영점 판매직이나 신발개발부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평생 신발만 만들었어요. K2에 와서도 십 수년 간 신발을 만들었구요. 인도네시아로 개성으로 가라구요? 그만두라는 거와 뭐가 다른가요?”

구덕회 부지회장은 오늘 교섭에서도 회사 입장은 전혀 바뀐 게 없다고 했다. “우리 요구는 일자리 보장이에요. 조합 사무실도 보장받아야 하고, 조합비 공제를 위한 임금대장도 요구하는데 대외비라면서 주지 않아요. 생산라인을 유지하는 문제는 아예 언급도 안하구요. 자기네들은 정리해고를 철회했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죠.”

노경순 조합원(52세). “회사가 자기들은 정리해고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이게 명예퇴직하라는 문서에요. 제 핸드폰에도 저장돼 있어요.” 케이투코리아주식회사 대표이사 명의로 된 ‘생산부서 명예퇴직 신청 안내문’에는 “2012년 6월부터는 신발생산부서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정리해고를 회피하기고자 명예퇴직을 실시한다...명예퇴직 기간 종료 후에는 정리해고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노 조합원이 보여주는 핸드폰에는 희망퇴직을 하면 1년 연봉인 13,145,520원을 지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주어질 것이라는 통보문자가 수신돼 있다.

김필성 조합원(51세)은 1997년에 입사해 15년 3개월 간 K2에서 신발을 만들었다. “명예퇴직하라는 통보가 온 3월 8일부터 잠도 못자요. IMF 때 회사가 어렵다고 보너스도 반납하고 월급도 안올리며 일했는데, 근골격계로 몸이 아파도 진통제랑 연골주사를 맞으며 일했는데 이럴 수는 없어요. 고2 아들이 학원 다니던 것도 줄이고 용돈 적게 쓰면 된다면서 저를 위로해 주더라구요. 회사가 너무 막되게 해요.”

신분이 조합원(56세)은 정리해고 사태 이후 불거진 임금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제가 13년 차에요. 가루 날리는 일을 4년 간 했고 본드 칠하는 약품일도 몇 년 했어요. 구루마 끌고 다니다가 발톱이 빠졌을 때 개인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길래 붕대 감고 다니면서 버텼어요.”

김선자 부지회장(49세)은 회사가 근속년수에 따라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관리자들 마음대로 준다고 했다. 임금대장을 내놓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회사 측의 요구에 따라 8명이 희망퇴직으로 하고 공장을 떠났다. 정리해고에 앞서 희망퇴직을 통보하면서 사측은 3월30일까지 퇴직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고 협박했다.

K2코리아에서 십 수년 간 신발을 만들어 온 노동자 85명은 끝까지 싸워 고용을 보장받고 그동안 빼앗겼던 권리를 찾자며 마음을 모으고 있다. “우리 공장을 지키고 우리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뭐든 할 거에요. 두고 보세요.”

▲ 10일 오후 K2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이 성수역 인근에 있는 성동 근로자복지센터에서 노동자 정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명익기자

▲ 조합원 교육이 끝나고 가진 술자리에서도 지영식 K2코리아 지회장의 머리띠는 풀어지지 않았다. 술이 몇순배 돌때까지도 그들의 주된 안주는 K2 신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이었다. 그렇게 10여년 넘게 일해온 회사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이름값을 하는 회사가 되자 이젠 그만 나가라고 한다. 오늘밤도 또 술이 술술 넘어간다.이명익기자
15년 간 K2만 바라봤는데...
“저희 아빠가 15년 동안 K2 하나만 보고 열심히 땀 흘리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정리해고는 말도 안 됩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가장들에게는 자녀를 키우지 말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K2를 좋아하는 등산객입니다
“저는 K2를 좋아하는 등산객입니다. K2 사장이 40, 50대 여러분 93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직 근로자 여러분 힘내세요. 저도 50대입니다. 고용창출 100대 기업 관련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K2 사장은 열심히 일해 준 사원들 마음을 알아줘야 합니다. 어느 하늘 아래에서 K2 사장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93명 가장들 일자리를 뺏지 마세요
“엄마께서 K2코리아에 2002년 입사해 햇수로 11년째 근무하고 계십니다. 저희 엄마와 회사 직원들은 한여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 서서 일하던 분들이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회사가 이만큼 성장한게 누구 덕인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93명을 해고하는 것은 93명 가장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없었으면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을까요?”

당신들은 우리 가정의 희망입니다, 힘내세요
“다른 삶을 선택하자는 나의 간청을 뿌리치고 당신은 신발 만드는 일을 사랑한다며 K2에 입사했죠. 열악한 근무조건에 불평 한 번 없이 무더운 여름 현장온도가 40도가 돼도 감사하다며 일한 당신. 추운 겨울철에 옷을 두껍게 입고 일하면서도 집에 오면 K2를 자랑하기 바쁘던 당신. 며칠 전 회사에서 정리해고 통지와 함께 집에 온 당신의 얼굴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습니다. 여보, 그리고 회사 생산직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당신들은 우리 가정에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엄마는 K2코리아에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했어요
“저희 엄마는 약 10여 년을 이 회사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셨습니다.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월 100만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셨지만, 엄마는 대기업 K2코리아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장시간 열악한 근무여건에서 본드냄새를 맡으며 일하시던 엄마는 잦은 잔병치레와 급기야 어깨에 석회가 생기는 병이 생기셨습니다. 잠도 못잘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회사에 눈치가 보여 결근은커녕 조퇴도 못하고 평일에는 병원에도 못가셨습니다. 그래도 저희 엄마는 불황 속에 회사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며 항상 뿌듯해 하셨습니다.”

이들은 당신에게 배당금 100억을 벌어준 사람들입니다
“무식한 아줌마들이라고, 100명도 안 되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해봐야 뭘 하겠냐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당신에게 배당금 100억을 벌어준 사람들이고, 이 회사를 수천억대 회사로, 이 브랜드를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만들어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설움을, 이들의 고통을, 이들의 바람을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화장실의 더러운 휴지조각이 아닙니다
“이 회사를 성장시키겠다고 도전장을 던진지 10여년이 채 못돼, 아직도 저희들 할 일이 많고 많은데 이렇게 내동댕이를 쳐 버리십니까? 저희는 화장실의 더러운 휴지조각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짧은 저희들이 있었기에 케이투가 이렇게 성공한 거 아닙니까? 사장님께서는 3월8일 이후 잠을 주무시나요? 저희는 잠을 제대로 못자고 수면제를 먹고야 잠이 듭니다. 열심히 소박하게 살아가는 저희를 이렇게 내치면 벌 받습니다. 저희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세요.”

사장님, 우리와 대화해 주세요
“사장님, 저는 K2 생산1과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1999년부터 햇수로 14년 동안 사장님과 함께 일해 왔습니다. 우리를 피하실 생각 마시고 만나서 대화해 주세요. 제가 몸담은 K2가 언론의 지탄을 받고, 지역 주민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게 저는 싫습니다. 사장님, 우리는 K2가 자랑스럽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직원들 손가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손가락, 허리, 귀가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정년퇴직을 한 선배사원들도 모두 손가락과 팔이 틀어진 채 K2를 떠났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다닐 직장이니까 아파도 참고 어려움을 감수하며 다닙니다. 우리는 직장을 보장받기를 원합니다.”

제 친구를 해고하지 마세요
“제 친구가 케이투코리아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미약한 복리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해 회사를 성장시킨게 무슨 죄라고 생산직을 사유없이 해고합니까? 제 가까운 친구에게 생긴 일이라 걱정되고 고생하는 모습 볼 때 억장이 무너집니다. 근로자들이 일해서 회사가 성장하는 건데 하루아침에 날벼락입니다. 케이투코리아가 그리도 경우 없는 회사였나요?”

딸로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어머니는 성수동 K2코리아 생산직에서 약 10여 년 동안 일해오셨습니다. 어느날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93명 전원 해고 통보서라구요. 문자를 받은 어머니는 잠도 못 주무시고 식사도 잘 못하십니다. 딸로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회사 사정 때문에 저희 자매 졸업식에도 한 번도 못 오셨고, 제가 아파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도 못 오셨습니다. 여름에는 공장에 에어컨도 없이 기계를 돌리고, 겨울에도 난로 하나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해고라니요! 93명 직원이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할 수 있게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생산직 엄마, 아빠, 이모, 삼촌들 힘내세요. 지금처럼만 하시면 분명 이기실 거에요.”

정리해고를 하면 K2가 더 번창할까요?
“저희 남편은 36세에 K2에 입사해 51세가 되기까지 16년 동안 적은 월급과 나쁜 작업환경도 탓하지 않고 일했습니다. K2가 성장하면 우리에게도 언젠가 혜택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기 전에 저희 가정은 나름대로 행복했습니다. 85세 중풍병이 든어머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은 시동생, 어린 아들을 볼 때마다 밤이 하얗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남편은 평생 신발 일만 했고 다른 일은 할 수도 없는데 이 가족을 어찌 부양해야 합니까? 사장님, 이렇게 정리해고를 해서 K2가 더 번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인도네시아나 개성으로 가라구요?
“고용을 보장한다면서 사측은 인도네시아나 개성공장으로 가던지, 신발개발부나 판매직으로 가라고 합니다. 우린 평생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회사가 내놓은 안은 나가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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