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할 수 없는 사랑의 대서사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대한 배는 침몰했지만, 위대한 사랑은 떠올랐다. 영화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이 촉촉했다.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연인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져 있었다. 사랑에 대한 감성이 극장에 충만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위대했다. 출구로 많은 연인들이 손을 꼭 잡고 걸어나갔다. 잭의 죽음이 안타까웠지만, 로즈의 삶이 위로가 됐다. 3D버전 영화 ‘타이타닉’은 100년의 역사(15년만의 재상영)를 새롭게 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탔다. 사랑의 유람선이다. 인류가 지금처럼 한 배에 탔다는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었을까? 인류 문명은 글로벌화 됐고, 모든 것이 공유되고 공감된다. 이어폰의 음악은 아프리카 음악을 아우르고, 패션은 뉴욕과 파리의 것들이 그대로 재현된다. 애플과 삼성 휴대폰은 세계전역에서 유통된다. 사람들의 감성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그대로 전달된다. 영상, 미디어, SNS까지 지구촌 인류의 네트워크는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돼있다.
 
당시만 해도 영국 초호화선 타이타닉호 탑승객들은 특혜받은 소수였다. 한 배에 탔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이 앞서있었다. 타이타닉은 근대의 산물이다. 석탄과 증기, 캠축에 의한 동력장치가 선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컴퓨터라는 개념이 없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이 지배한다. 선과 악의 축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처럼 인간성이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사랑도 그만큼 절절함이 앞선다. 인연은 길고 질기다.
 
지금 인류는 지구촌 환경을 생각하고 감성을 공유한다. 한 배를 탔다는 인식이 심화돼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 적어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생각한다. 지금 인류는 어느 시대보다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더욱 세밀한 소리, 더욱 선명한 영상과 화질, 더욱 풍부한 표정연기와 동작까지 감성들은 충만하다. 3D의 기술적 완성도는 이러한 감성의 토대를 구축한다. 더 많은 측면과 묘사를 감상하고 공유하고 비교한다.
 
100년 전 타이타닉 호의 세계가 있었다면, 21세기 지구라는 탑승호는 이제 인류 네트워크의 실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3D 기법을 ‘타이타닉’의 멜로적 감성에 적용했다. 기존에 없던 시도다. 충분히 성공했다. 감성은 입체라는 선 위에 더욱 충만돼 꿈틀댔다.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감정과 행위들이 더욱 파도쳤다. 배의 난간들은 더욱 공간감있게 연결됐고, 파도와 뱃머리는 더욱 가파르게 그들의 숨결에 걸쳤다. 화가였던 잭의 연필은 로즈에 대한 사랑의 역사로 더욱 질감있게 터치화됐다.
재앙의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삶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타이타닉 호가 어느새 3D 버전과 함께 공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다. 여기에다 최첨단 모션 좌석들, 바람, 안개, 조명, 향기와 같은 효과를 적용한 4DX(TM) 첨단방식이 잭과 로즈의 한 순간의 사랑을 영원불멸의 감성적 체험으로 각인시켰다. 인류는 비로소 타이타닉 호에 탑승하는 꿈의 실재를 보게 된 셈이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만함, 죽음을 맞이하는 여러 모습, 자기만 살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장면, 잭과 로즈의 절절한 사랑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세계는 지금 ‘지구’라는 또 다른 타이타닉 호의 이름이 아닐까? 타이타닉 호에 다시 탑승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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