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인생들의 연대와 구원...창의적 에너지 구현과 아날로그적 상상력의 도미노

바야흐로 우리는 ‘복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권이 강화되고 개인의 자주성이 고양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복수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집단적인 형태인 전쟁으로부터 개인들의 극단적인 표현 양상까지 복수는 악순환마저 겪는다. 최근 복수는 처절하고 지독한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영화 ‘믹막(티르라리고 사람들)’의 해피한 복수 이야기는 드물게 맛보는 향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릴 적 지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바질. 그는 우연한 사고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직장과 집까지 잃고 거리를 전전하는 처량한 신세의 바질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티르라리고’ 사람들. 약간은 기괴하지만 따뜻한 마음씨의 친구들로부터 용기를 얻은 바질은 머릿속에 박힌 총알과 아버지를 죽게 한 지뢰를 만든 두 명의 무기제조회사 사장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믹막은 불어로 ‘음모(陰謀)’를 뜻하고 티르라리고는 고철판매업자들이 살고 있는 동굴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머리에 총알이 박힌 불운의 사나이 ‘바질’, 전직 민속학자 출신으로 말도 안 되는 사자성어로 적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타자기’, 인생의 3/4을 감방에서 보내고 단두대 고장으로 기적처럼 살아난 ‘감빵맨’, 티르라리고의 왕언니 ‘빅마마’, 유연한 몸의 직선적 영혼의 소유자 ‘고무여인’, 무엇이든 보는 즉시 계산하는 천재소녀 ‘계산기’, 기네스북에 오르는 것이 꿈인 ‘인간탄환’, 어떤 고철이든 작품으로 만드는 괴력의 아티스트 ‘발명가’가 그렇다.

사실 영화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고철이나 폐기자재들을 수집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굴지의 무기제조업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러한 묵직함을 해학과 풍자로 경쾌한 해피 무비를 만들어냈다. 주인공이 사경을 헤매는 장면에서 동전 뒤집기로 수술 방향이 결정되는 모습은 상황의 심각성을 경감시켜주면서도 직업윤리를 저버린 의료진의 안이한 태도를 꼬집는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상대를 향한 무모한 도전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무기제조업자들이 익살스런 캐릭터들의 기발한 재치와 트릭에 속아 악행을 자백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통쾌함마저 선사한다.

우리는 어쩌면 머릿속에 총알을 박고 살아가는 바질과 다르지 않다. 선량하지만 답답함과 불안감으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와 협력이 강조되는 것은 그래서다. 진정한 복수란 분노의 관철이 아닌 목숨을 회복시키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프랑스의 거장이자 기발한 상상력의 귀재로 불리는 장 피에르 주네는 데뷔작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두 번째 작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단 두 작품만으로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정립, 세자르 영화제 2개 부문 수상과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실력파 감독이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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