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그때,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

인간에게 있어 가장 모순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싶다. 완벽하면서도 가장 부실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그때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이 그렇다.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사랑이기에 그렇다. 끝이 없어야하지만 끝이 있기에, 가장 안정돼야 하지만 가장 위태롭기에 그렇다.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있을까. 영화 ‘블루 발렌타인’이 가슴을 파고든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이삿짐센터 직원 딘(라이온 고슬링), 의학을 전공하며 미래에 의사를 꿈꾸는 여대생 신디(미셸 윌리암스)의 사랑과 결혼, 헤어짐을 아주 솔직하고 밀도 높게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초점은 그토록 사랑했던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천연덕스럽게 관심가는 신디의 옆자리에 앉는 딘과의 연애시절, 갈등을 풀기 위해 찾아간 모텔에서 벌이는 부부의 대화와 행각, 싸운 뒤 극한 감정에서 빼 던진 결혼반지를 다시 찾는 딘에게 연민을 주는 신디의 장면이 리얼하다. 서로가 사랑하는지 가슴으로는 이해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이들 부부의 달콤하고도 위태로워 보이는 아슬아슬함은 이 영화의 매력이다. 원거리 촬영 기법은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처럼 보이게 만든다.
 
최근 반향을 불러일으킨 국내영화 ‘건축학개론’의 플롯처럼, 사랑과 결혼 전과 후를 오버랩해서 반복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뒤얽어놓은 구성은 사랑의 판타지와 현실의 간극을 공감하는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영화보다 더 친숙하고 실제적인 익숙한 광경과 행동들은 관객 몰입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이 영화가 ‘건축학개론’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추억을 넘어서는 어떤 문제의식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것, 빛바랜 이들의 사랑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로 사랑함을 알지만 헤어짐을 선택하려고 하는 이들의 과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랑,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억지 감동이 아닌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기에 빛난다.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나의 지금의 조건은 바닥이다. 앞으로 나아질 일만 남았다.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는 딘이 폭죽 사이로 걸어가는 마지막 뒷모습이 가슴을 저민다. 사랑했던 그때, 그리고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수작임에 틀림없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서 열연한 미셸 윌리암스(신디 역)는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라이온 고슬링(딘 역)은 ‘킹메이커’에서 선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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