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비정규직·재벌특혜 없는 세상! 금속노조 풍산노동자 희망국토대장정’

부산 반여동에 있는 풍산그룹 계열사 (주)PSMC(구 풍산마이크로텍)가 2011년 11월 7일 노동자 58명을 정리해고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입구 주차장에 천막을 쳤고, 풍산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과 부산시내 전역에서 노숙을 하며 8개월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지노위는 지난 2월 “해고가 부당하다”며 지회 51명 조합원과 비조합원 1명 등 노동자 52명 복직을 명령했다. 책임있는 풍산그룹은 모른체 하고 (주)PSMC는 지노위 명령을 거부한다. 해고자 16명, 비해고자 25명 등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 41명이 지난달 30일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 금속노조 풍산노동자 희망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노동과세계>가 희망국토대장정 15일째인 13일 풍산노동자들 대장정 일정을 함께 했다. <기자의 말>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해고자와 비해고자들의 희망국토대행진을 만나러 달려갔다. <노동과세계>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오전 9시30분 경 김천역에 도착했다.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조직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강변조각공원에서 쉬고 영남제1문 쪽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빨리 그 곳으로 데려다달라고 했다.

오전 10시 가까운 시각,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이라고 적힌 몸자보를 앞뒤로 두른 풍산 노동자들이 걷고 있다.
 

▲ 풍산 노동자들이“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몸자보를 두르고 김천시내를 걷고 있다. ⓒ윤성희

맨 먼저 만난 노동자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이소~” 누군지도 묻지 않고 대뜸 손부터 내민다. 이강문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사통계부장(51세). 조합원들 발과 건강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물었다.

“41명 중에 10명 정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물집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요. 신발이랑 몸 상태, 걷는 방법 등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물집이 심한 사람은 우리가 우스개로 발에 실로 수를 놓는다꼬 해요. 이따 보세요. 하하하~”

풍산노동자들은 어제 구미에서 KEC지회 조합원들을 만나 선전전도 하고 KEC와 풍산상황을 공유했다. “어제 KEC가 절반 정도 같이 걷다가 돌아갔어요. 아이고~ KEC도 정리해고는 일단 철회했다 카는데, 들어가도 또 투쟁해야겠더라고요.”

(주)PSMC 즉, 풍산마이크로텍 최근 상황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회사가 임금을 30% 삭감하고, 퇴직금을 반환하면 복직시키겠다 카는데 말이 안되잖아요. 부산시에서 압력을 넣엇 이번주에 실무교섭이 될 듯도 싶은데... 우리는 강대균 회장이 나오면 부양지부장이랑 지회장이랑 들어가 교섭할 겁니다. 지난해 11월부터 4월까지 매주 교섭은 했지만 계속 결렬됐어요.”

풍산마이크로텍은 1991년 풍산금속 동래공장 생산부에서 풍산정밀로 분사, 2000년 풍산마이크로텍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 회사는 1985년 리드프레임 사업을 시작해 비철금속 중 동銅 사업 주력그룹인 풍산그룹 일원으로 그룹의 반도체 부품산업을 맡아왔다.

풍산그룹은 생산물량이 없다며 노동자들에게 연원차 휴가를 쓰게 해놓고 2010년 12월29일 지회와 협의도 없이 풍산마이크로텍 주식지분 57.2%를 240억에 매각했다. 고용불안과 퇴직금 정산 등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이 대거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지회 규모는 186명이 됐다. 지회는 이때부터 고용승계, 노조와 단체협약 승계, 70억원에 이르는 퇴직금 중간정산 확보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열어 풍산마이크로텍 이름을 (주)PSMC로 바꾸고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4월이 되자 ‘유상증자’ 운운하며 “임금을 삭감해 흑자를 만들고 유상증자를 해서 회사를 살리자”고 주장했다. 지회는 회사가 추진하는 정리해고 철회와 성실한 교섭 등을 촉구했지만 회사는 계속해서 억지주장을 밀어붙였고 급기야 지난해 말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해고자 51명, 비해고자 51명 등 총 102명이 지난해 11월 2일부터 정리해고에 저항해 6월 13일 현재 225일째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 풍산그룹 본사 앞, 부산시청·노동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41명이 자원해 지난달 30일 희망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해고자들이 퇴직금을 받아 100만원을 투쟁기금으로 내고, 100만원씩 걷어 비해고자들 급여를 지원했어요. 실업급여를 받아서 1/N로 나눠 최소한의 생계를 잇고 있지요. 우리는 해고자, 비해고자 그런 구분 없이 같이 싸웁니다.”

국토대장정 15일차, 조합원들 몸 상태가 걱정됐다. “말로 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온몸이 다 아프지요. 아프니까 짜증도 나고. 그래도 서로들 양보를 많이 해요. 동생들이 ‘나이 많은 형들은 가만 계이소’ 하고 뭘 갖다주기도 하고, 힘든 일은 다 동생들이 해줘요. 그러니까 투쟁력도 더 올라가구요. 힘든 투쟁이라고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하면서도 이렇라도 해야 자본이 경각심을 갖는다고 하죠. 그런 마음으로 출발했고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단 41명을 5명씩 8개 조로 편성해서 조장들을 중심으로 조원들을 늘 체크하고 걷는 모습을 살피며 필요한 경우 병원 치료 등을 받게 한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승합차와 서울지역본부 트럭을 빌려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세 끼 잘 잡수셔야 할텐데요.”
“취사 당번 한 명이 민주노총 서울본부 트럭을 개조해서 그 차량을 갖고 다니며 밥이랑 반찬을 그때그때 만들어요. 길거리에서 식재료를 사서 밥을 짓고 행진단이 밥 먹을 만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먹이죠.”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단은 기본적으로 숙박과 식사를 모두 거리에서 해결한다. 식사도 길거리에서 하고, 숙박도 장소를 확인해 1인용 텐트를 치고 잔다.

“차출이 아니고 전부가 스스로 지원해서 하는 거니까 모두 웃으며 완주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투쟁에 보탬이 되자고 해요.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 투쟁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무조건 뭐든 해야죠. 자본은 저래 지들끼리 잘 뭉치는데 왜 노동자는 뭉치지를 못하는가? 우리가 (노동자 단결투쟁에) 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전 10시20분 경 영남제1문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신발과 양말부터 벗는다. 몇몇 조합원이 기자에게 누구한테 가보라고 한다. “저 사람 발 쫌 가서 보이소.”

작은 바위 위에 한 노동자가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자신의 발을 들여다보고 있다. 해고노동자 추광식 조합원(43세). “물집이 12개 있었는데 이제 거의 나았어요. 제가 신발을 잘못 신었나봐요. 와이어로 조이는 신발을 신었더니 첫날부터 물집이 잡히고 못견디겠어서 얼른 신발을 샀어요.” 엄지 발톱 두개가 모두 퍼렇게 멍이 들었다. “해고자 비해고자가 같이 싸운다고 좋아보인다고도 하는데요, 직장을 지키려면 무조건 뭉쳐야 해요. 비해고자들이 더 열심이에요. 고맙죠. 같이 하니까 힘도 나구요.”

▲ 대장정 15일차, 300km를 넘게 걸어온 조합원들의 발은 물집과 상처투성이다. ⓒ윤성희

한 노동자는 아예 바늘을 들었다. 그가 꺼낸 안경케이스에는 바늘과 실이 고이 담겨져 있다. 정해웅 조합원(51세). “제가 (발 물집이 심한 상태) 빅3 안에 든다고 동료들은 말하는데 1,2위 안에 들 거에요. 처음 3~4일이 최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목적을 이루기 위해 뚜벅뚜벅 갑니다. 전 촌놈 출신이라 자신하고 왔는데 만만치 않네요. 서로서로 힘줘가며 끝을 봐야죠.”

물집 잡힌 발로 보름을 걸어왔고, 또 앞으로 보름을 더 가야 하는 노동자들. “날짜로 절반, 거리로도 절반을 왔어요. 추풍령 고개 한 번 넘어야죠. 바람도 쉬어가고 구름도 쉬어간다는데 우리도 한 번...” 오늘(13일) 대장정팀은 추풍령을 넘는다.

문영섭 풍산마이크로텍지회장에게 노사교섭 상황을 물어봤다. “지지난주, 지난주에도 교섭을 추진했어요. 회사는 임금을 삭감해서 회사를 돌리겠다고 합니다. 투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거죠. 경영방식이 비도덕적이고 올바르지 않아요. 유상증자와 상장을 위한 정리해고는 안되는 겁니다. 우리가 고통분담은 당연히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 주장은 상식에 합치하질 않아요.”

지노위에서도 (주)PSMC의 잘못된 경영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회사가 퇴직금을 내놔야 복직시킨다고 하자 근로감독관도 나서서 “그런 경우는 없다”고 만류했다. 문 지회장은 지금 회사가 자본이 얼마나 막 나갈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고 일갈했다.

“그래도 교섭은 추진해야죠. 우리는 실제 권한을 가진 회장과 사장이 나오라고 요구합니다. 권한 없는 관리자를 내보내서 임금 30% 삭감하자는 둥, 6개월치 위로금 받고 나가라는 둥 하고 있어요. 서울과 부산에서 노숙투쟁 중이고, 해고자들이 7월 초 중노위 투쟁을 벌일 겁니다. 비해고자들도 그런 경영진과는 함께 하기 힘들다면서 싸우고 있어요.”

대장정팀이 아닌 몇몇 사람들이 지회장에게 인사를 건넨다. ‘플로그TV’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한다. 지회장은 대뜸 비가 올지 모른다며 오늘 합류한 사람들 우비를 걱정한다.

10시 50분 경 다시 출발. 조합원들은 지회에서 제공한 바지와 금속노조에서 보내온 파란색 셔츠를 입고 모두 똑같은 배낭을 맸다. 배낭에는 ‘정리해고 NO!', '비정규직 NO!’, ‘재벌특혜 NO!’라고 적힌 깃발들을 꽂았다.

오늘로 국토대장정 15일째를 맞는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 배낭에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매달려 있다. 옆주머니에는 물병이 꽂혔고, 가방 앞에는 양말, 팬티를 빨래집게로 널어 말리면서 간다. 심지어 옷걸이를 두 개나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노동자도 있다.

▲ 잠들기 전에 빤 양말을 걷는 동안 배낭에 걸어 말린다. ⓒ윤성희

날씨는 구름이 끼어 있어서 햇볕이 내리쬐지는 않아 조금 후덥지근한 정도다. 비가 오지도 땡볕이 내려쬐지도 않아 다행이다.

심동석 조합원(42세). 그는 비해고자다. “다같이 살아야지 몇 명만 살겠다고 하면 그런 회사는 안됩니다. 지금 경영진은 PSMC를 인수할 때부터 경영할 마음이 없었어요. 대놓고 먹고 튀겠다고 했죠. 저는 94년도에 입사했는데 다른 형님들은 대부분 20년 넘었어요. 전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에서 걸어가는 한 노동자가 자꾸 뒤를 돌아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 말을 건넸다. 성세경 조합원(43세). “말로만 듣던 투쟁사업장들 노동자들을 만나며 왔어요. 이제부터는 서울이 점점 가까워져요. 비해고자들도 같이 싸우니까 회사는 비해고자가 복귀해야 해고자도 살 길이 열린다며 회유를 했지만 흔들리지 않아요.”

성 조합원이 입사한 1997년만 해도 풍산마이크로텍에는 700명 노동자가 일했지만 그동안 자르고 또 잘라 지금은 해고자를 포함해 200여 명이 남았다. “풍산그룹이 해결해야 합니다. 현재의 경영진은 투자할 돈도 없고, 경영할 마음도 없어요. 주식으로 한탕 먹고 갈 속셈이에요. 우리가 서울 풍산그룹 앞에서 농성을 했더니 구호도 못하게 가처분을 해놨어요. 그런다고 우리가 못하나요?”

보름 째 강행군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우리 조합원들 이렇게 행진하면서 돈도 줍고, 오디랑 산딸기도 따먹고, 트위터도 하고, 유인물도 돌리고... 즐겁게 하고 있어요.”

▲ 풍산 노동자들의 나이는 최소 38~최고 55세.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단 한 명도 낙오된 이가 없었다. 몸이 힘들어도 서로 자동차에 안 타고 걷겠노라 고집한단다. ⓒ윤성희

정오를 조금 앞둔 시각, 대화2리 검문소 버스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한다. 몇몇 조합원들이 바나나와 쵸코파이가 담긴 상자를 들고 간식을 나눈다.

어제 숙박한 식당에서부터 14km를 왔다. 오늘은 총 34km를 걷는 일정이다. 오늘부터 3일 간은 씻을 곳, 잘 곳이 마땅치 않아 힘들 거라고 했다. 노숙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노동자들이 정색을 한다. “노숙이 오히려 나아요. 어쩌다 방을 잡아서 자면, 와~ 다들 피곤하고 그러니까 그 소음이 엄청나거든요. 차라리 1인용 텐트에서 혼자 자는 게 비만 안오면 훨씬 좋아요.”

윤우영 조합원(45세). 그는 지회 대의원이다. 그의 발은 상태가 꽤 괜찮아 보였다. “그게 아이고요, 제 발에 물집이 잡혔다가도 여성이 보면 부끄러버가 싹 없어진다 아인교.” 그의 유머에 주변 조합원들 웃음보를 터뜨린다.

“어제는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저씨 누구?’ 이라카더라. 그래서 내도 ‘아줌마 누구?’ 했지. 오래 집에서 나와 다녀도 가끔 지금 어디 가고 있다 하고 연락을 해주면 좋아해요. 안심하구요.” 윤 대의원은 부인은 풍산마이크로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 “회사를 매각할 때 노조에 가입했어요. 오래 안돼서 조합을 잘 몰라요. 많이 배우죠. 그 전에 많이 못 도와준게 미안해요.”

그는 (주)PSMC 사장을 일컬어 사채업자라고 표현했다. “전 이게 회사 해체 수순 아닌가 싶어요. 돈 많이 못버는 사업이다보니 투자도 안하구요. 풍산기계, 풍산동래공장 등 풍산그룹 전체가 한국노총인데 PSMC 우리만 민주노총이니까 그걸 깨려는 것도 있구요.”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2002년 노동조합을 결성해 2003년 3월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초기 조합원은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는 호시탐탐 이들을 해고하려고 기회를 엿봤고 온갖 탄압을 일삼았다.

30분 정도 쉬고 12시20분 다시 대장정팀이 신발을 신었다. 출발하고 조금 후 너른 산야를 양쪽에 끼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대오 선두에 선 문영섭 지회장이 외친다. “이제 추풍령입니데이.”

아스팔트 언덕을 오르는데 갑자기 한 노동자가 재게 뛰어 땅에서 뭘 줍는다. 동전이다. “뭐에요?” “100원짜리요!” “행진하면서 돈을 무지 많이 주웠어요.” “아니, 걷기도 힘드실 텐데 그게 보여요?” “그냥 재미죠. 계속 걷기만 하니까 이래저래 살폈더니 길거리에 돈이 많더라구요. 어제는 십원짜리, 백원짜리 해서 1000원 넘게 주웠어요. 우리 4조가 앵벌이조에요.”

윤광섭 조합원(44세). 대장정 보름 째라 늘 건강사태부터 묻게 된다. “사흘째부턴가 물집이 잡혀서 지금까지도 계속 물집이 생기고 없어지면 또 생기고 그래요. 걷기 시작해서 5분이 지나면 감각이 없어요.”

그는 쉬지 않고 계속 걷는게 오히려 낫다고 했다. “처음에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는데 그거 때문에 아프니까 걷는 자세가 부자연스러워지고 그러니까 엄지발가락 밑에 또 물집이 생기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다른 아파도 이를 악물고 꼿꼿이 잘 걸어가야죠.”

고통을 참고 보름을 걸어온 노동자가 하는 이야기. “포기하긴 쉬워도 이루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고통과 땀이 있어야 열매를 맺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채우려고 합니다. 숨쉬기 운동만 하다가 이렇게 걸으려니까 힘든데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해요. 나도 할 수 있구나 싶어요. 누구나 도전하면 할 수 있는건데 도전이 두려워 포기하죠. 우리 전체가 서울에 같이 들어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추풍령 고개가 최대 고비인 것 같아요. 발도 성치 않고 피로는 누적됐고... 오늘 아침에는 너무 힘들어서 차에 탈까? 하루를 건너뛰고 싶은 유혹이 있었는데 걸어서 이 고개를 넘고 싶었어요. 옛날에 선비가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갔을 건데, 짚신으로 어떻게 갔을까. 우리는 편한 장비도 있고 한데요.”

대장정팀은 이번에 포항에도 들렀다. 진방스틸, DKC 등 노조를 파괴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악행에 맞서 장기투쟁을 벌이는 사업장들이 포항에 많다. “집회에서 만나는 것과 우리가 발로 걸어가서 만나는 것이 다르더라구요. 지역을 둘러보고 동지들을 만나면서 금속노동자의 연대정신이라는 걸 체득했어요. 가는 쪽이나 맞는 쪽이나 너무 반가웠어요. 우리가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쓰고 많은 인원이 추풍령을 넘어 계획대로 이뤄내서 다른 사업장 동지들에게도 길잡이가 되고 싶어요.”

추풍령 고개를 한참 넘어가는데 플로그TV 영상기자가 혀를 빼물고 헉헉거리며 대오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조합원들이 웃으며 농을 던진다. “이리 주소, 내가 찍어줄테이까.”
“아이고, 저 한 시간 쯤 앉았다 가야지, 못가겠어요. 헥헥”

한 노동자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소방차 불러라~~ 발바닥에 불난다~~” 출발해서 1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쉴 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갓길도 없는 아스팔트도로가 이어진다.

“소방차 불러야 된다, 발바닥에 불난데이~~”
선두에서 차를 보내며 대오의 안전보행을 관리하던 한 노동자가 뒤를 돌아보며 외친다. “화이팅! 가자!”
뒤에서도 격려가 이어진다. “힘내라!”

오후 1시 50분이 돼서야 쉴 곳을 찾았다. 추풍령 교차로 아래 작은 공원이 있다. “와~ 저기 다리가 있네요. 저 밑으로 갑시데이.” 다리 밑은 신기했다. 마치 냉장고 안에 있는 것처럼 시원하다.

점심식사 시간.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 기간 취사를 맡은 조합원이 오늘 점심에는 시래기국을 끓였다. 흰밥에 고추를 넣어 끓인 시원한 시래기국과 깻잎장아찌, 어묵볶음, 그리고 전라도에서 공수해왔다는 맛좋은 김치가 오늘 점심메뉴다. 오전 내내 아픈 발로 걸어온 조합원들에게는 밥맛이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나니 매트 수십개가 다리 밑으로 날라졌다. 저마다 요가매트를 하나씩 잡고 눕는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시원한 바람까지 부는 다리 밑에 누우니 에어컨 사무실이 부럽지 않다.

▲ 점심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조합원들. ⓒ윤성희

지회 조합원들은 온갖 도구(?)들을 꺼내놓고 발 관리에 들어갔다. 테입이나 밴드를 붙이고 물집도 조심조심 만져본다. 바늘에 실을 꿰어 실이 물집을 통과하게 해놓으면 물집이 쉽게 수그러든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지회 조합원들은 대부분 머리가 짧다. 대장정을 앞두고 거의가 자진결의로 삭발을 했다. 1시간 정도를 쉬고 오후 3시 경 노동자들이 매트와 쓰레기를 치우며 뒷정리를 하고 신발끈을 다시 맨다. “몸풀고 갑시다!” 둥글게 서서 발목과 무릎, 허리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투쟁으로 쟁취하자!” 40여 명 노동자들 목소리가 수백 수천이 외치는 것처럼 우렁차다. “개인소지품 다 챙겼습니까? 휴대폰이랑 물건들 다 챙겼어요?” 조별 인원을 확인한 후 출발.

오후가 되자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와 기온이 올라간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직노동자들의 장정이 6월 중순 무더위를 뚫는다.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민주노조 깃발 아래 하나로 단결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와 비해고로 노동을 갈라치려는 자본의 심장을 향해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대행진단 선두에 선 노동자가 차도 옆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신호를 한다. 1m 가까이 되는 둔덕을 넘어 올라가니 잡초밭 옆에 차가 안다니는 시원한 도로변이 있다. 물을 나눠 마시며 잠시 휴식하고 다시 출발한다.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조직부장. 그는 매주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박4일 간 희망국토대장정 일정을 함께 하고 3일은 부산에 내려가 일을 보고 있다. 풍산마이크로텍을 비롯해 부산지역 주요 현안에 대해 물었다.

“풍산마이크로텍은 지난해 11월 2일 파업에 돌입해 오늘로 225일째 투쟁하고 있어요. 서울 충정로 풍산그룹 앞, 부산노동청과 시청 앞, 그리고 국토대장정 이렇게 세 파트로 투쟁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한진중공업도 쟁의 중이다. 지난 7일 영도공장 정상화를 촉구하며 영도조선소 앞에 천막을 쳤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정투위 투쟁이 극한에 이르면서 지난해 말 사태 해결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여론에 밀린 억지술수였다.

한진중공업은 6월 1일부터 휴업노동자 복귀를 약속해놓고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다. 게다가 93명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문제도 고민된다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한진노동자들은 13일 현재 7일째 공장 앞 천막농성을 통해 휴업노동자들을 모으고 공장 안 복수노조 조합원들에게도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정 조직부장은 르노삼성노동조합이 쟁의권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르노삼성의 경우 삼성 지분은 19%에 불과하지만 노조를 탄력적 준법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외자기업 르노삼성은 르노닛산에서 전 부품을 들여와 만든 차를 국내에서 판매함으로써 국부를 유출하고 있다. 차를 1대 팔 때마다 일본에 500만원을 지급한다. 최근 완성차 3위 대열에서 4위로 밀리며 영업이익이 떨어졌다.

“삼성으로부터 르노가 회사를 헐값으로 인수하면서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요. 국내노동자들만 뺑이치는 거죠. 노동강도가 다른 완성차에 비해 엄청나게 높고 산재도 많은데 근로복지공단 승인도 안되고 있어요. 부산지역 조선업과 자동차 완성차, 부품 사업장들 모두 어려워요.”

다시 풍산마이크로텍으로 이야기가 돌아왔다. “조합원 대부분이 노조를 한 지 얼마 안돼요. 오랫동안 20여명이 깃발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매각을 기점으로 대거 가입했죠. 전국을 다니며 진방스틸이나 DKC 같은 곳을 만나고 1000일 넘는 사업장도 있고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길게 가는 거 아니냐 걱정도 해요. 102명이 225일째 파업하며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나눠 쓰는데 진방스틸 같은 곳이 모범이 됐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펄벅재단 이사장이다. “재벌 2세고, 미국 유학파인데, 자칭 휴머니스트, 민주주의자, 인간주의자래요. 자신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자본으로 인식되는 걸 싫어해요. 풍산 사태가 언론에서도 그렇고 너무 알려지질 않아 그게 안타까워요. 이 동지들이 사실 안해 본 투쟁이 없어요.”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지난해 11월 2일 파업에 돌입한 후 서울 풍산그룹 본사와 부산지역 노동청 등을 오가며 정리해고 철회투쟁을 벌여왔다. “노숙으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총선 시기에도 집중했고, 박근혜 대표가 내려가면 그림자투쟁을 했죠.”

오후 5시 경, 노동자들이 고가도로 아래 공사장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잠깐 쉬었다. 지나가는 화물차량에서 격려의 인사가 튀어나온다. “수고합니다!” 종일 걸어 모두가 힘이 들 텐데도 노동자들 얼굴이 참 밝다. 틈 날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아픈 발을 달래고, 다리도 주물러 본다.

▲ 큰 덩치 탓에 남보다 더 많이 땀을 흘리면서도 문영섭 지회장은 꿋꿋이 걸어왔다. "지회장 쓰러지기 전엔 아무도 못 쓰러진다"고 조합원들이 웃었다.ⓒ윤성희

땀에 젖은 노동자들은 오히려 기자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다리 아프지 않냐고 묻는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지친 얼굴들을 보니 미안하고 민망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오후 5시 20분 다시 출발. “마지막 피치를 올려봅시다!” 오늘의 종착지를 향해 일렬로 걸어가는 노동자들의 행렬 앞으로 해가 저문다. 6시가 가까워오면서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한 조합원은 흥이 나는가 보다. “봐라, 이 시간 되니까 걷기 좋다 아이가.”

대장정팀이 걸어가는 오른편 목재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수고하십니다!”
황간삼거리를 지나 황간으로 들어선다. 참외를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 무슨 일인가 싶어 양품점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는 여인을 향해 풍산노동자들은 인사를 잊지 않는다. “많이 파이소!”, “안녕하세요?”

오후 6시 30분 경이 돼서 노근리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희망국토대장정팀은 오늘 이곳에서 노숙을 한다. 진보신당 지역시당과 유성기업 영동지회가 먼저 와서 삼계탕을 준비해 놓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친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은 공원 안팎에서 씻을 곳을 찾아 씻고 텐트 속에 지친 몸을 뉜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팀은 지난달 30일 부산시청에서 출발, 양산, 울산, 포항, 경주, 대구, 구미, 김천을 거쳐 15일째인 13일 노근리에서 숙박을 했다. 대장정은 오는 27일 서울시청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마무리된다. 지회는 오는 28일 민주노총 경고파업 집회와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부산 풍산마이크로텍에서 20여년 간 전자부품 리드프레임을 생산하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사슬을 끊겠다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이 땅 한복판을 가로질러 700km 거리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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