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낭만적 재평가 ‘미드나잇 인 파리’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자기 뜻대로 안될 때도 많다. 그 순간 문득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기만 하다. 하지만 과거로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은 없다. 과거를 통해 얻어진 경험들이 ‘현재’를 구성하고 있을지언정, 과거 자체가 현재는 될 수 없다. 과거로부터 현재의 가치를 재구성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가장 로맨틱한 장면들을 펼쳐놓는다.

소설가 길과 약혼녀 이네즈는 파리로 여행을 한다. 헐리웃 작가로 잘 나가는 길은 괜찮은 소설 한권을 써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매일 밤 12시, 클래식 푸조에 올라타면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당시를 살아갔던 희대의 예술가들이다. 스콧 피츠제랄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아드리아나, 거트루드 스타인, 살바도르 달리 등. 로맨틱한 시간여행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인문학적 향수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파리의 오늘과 과거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흘러 건물이 낡고 퇴락하면 새 건물을 지어 올렸을 법한데, 파리의 아름다움이 변해 보이지 않는다.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과 대비되는 순간이다. 현대 공법으로 무장해 첨단 건물로 교체되는 ‘선진화’의 바람이 그것이다.

파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공간이다. 그 안을 채우며 살고 있는 파리 시민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인다. 길의 마지막 선택은 부잣집 딸 미국인 약혼녀도 아니고, 시간여행을 통해 만났던 아름다운 뮤즈 아드리아나도 아니다. 중고물품을 팔며,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던 평범한 지금의 프랑스 여인이다. 비가 내리면 파리는 더욱 아름답게 물든다.

과거로 돌아가고픈 욕망은 대개 현실의 불만족과 연결된다. 이 영화가 주목받는 점이 여기에 있다. 아름다운 파리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바로 ‘현재’라는 시점의 만족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심을 얘기하지만, 결국 출발점은 늘 변해있는 지금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답을 찾고 만족감을 얻으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파리의 야경과 분위기, 근사한 음악을 듣노라면 파리로 날아가고픈 생각이 굴뚝같다. 세느 강변을 혼자 걷는 남자가 이토록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보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재미와 메시지와 로맨틱한 근사함까지 모두 한눈에 접할 수 있게 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휩쓴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뉴욕 찬가 대신 유럽의 인문학적 예술과 영감의 공간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이유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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