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해고자 한용기 씨

 

▲ “해고라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야죠.”한용기 씨(46)는 삼성화재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됐다.

“징계위 재심 결과 통보서가 우편으로 배달됐다고 금방 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해고라는군요. 예상했던 일이에요. 괜찮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야죠. 삼성 본관 앞 1인시위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겁니다.”

<노동과세계>가 한용기 씨(46씨)를 만난 후 나흘 만인 16일 한 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징계위 재심(10일) 결정을 통보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는 삼성화재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됐다.

한용기 씨는 13년 간 경찰공무원으로 일하며 청와대와 남대문경찰서 등에서 교통사고 조사업무를 전문으로 했다. 경찰을 그만두고 한화손해보험에서 6개월 일하다가 2006년 말 삼성화재로 스카웃 돼 최고의 성과를 올렸고 이듬해 올해의명인상까지 받았다.

“저 역시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고 살았어요.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하는지, 노조가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이 없었어요. 언론이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귀족노조라고 욕하면 그런 줄 알았죠.”

2009년 3월 삼성화재 구조조정 차원의 직군통합 과정에서 그가 소속된 특수조사파트를 비롯해 일부 부서가 누락됐다. 필수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해서 자회사로 분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상사에게 직군통합의 문제점을 제출하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직장인협의회도 노동자를 위해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찾아가 회사에 유령노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복수노조 시행에 맞춰 민주노조를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그는 이른바 ‘MJ사원’(문제사원)이 됐다.

“삼성에는 출신성분, 즉 등급이 있어요. 성골, 진골이라고 부르죠. 경상도 출신이 절대다수를 차지해요. 전라도 출신도 있지만 극소수이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승진에 한계가 있죠. ‘이건희친위대’로 불리는 구조본(현 미래전략실) 출신에게 들은 얘기에요.”

복수노조 시행이 유예되고 이틀 후 한용기 씨는 본사로 강제발령을 받았다. 왕따근무가 시작됐다. 일도 시키지 않고 말조차 걸지 않았다. 일을 달라고 하면 알바생들이 하는 숫자입력 작업을 시켰다. 밥 같이 먹자는 동료가 없어 혼자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다 들어가 앉아 있다가 퇴근을 했다.

한용기 씨 해고 사유의 대부분이 상사폭언, 무단결근이다. 상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노조를 만드는 것이 왜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상사폭언, 남들 다 가는 휴가를 아무리 신청해도 결재해 주지 않았고 사정이 있어 하루이틀 쉬면 무단결근으로 기록됐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으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삼성 측 비리와 불법행태를 제보했다. 그러자 삼성은 21일 간 그를 감금해 놓고 지방으로 끌고 다녔다. 회사 사람들이 감시해 외출은 물론 전화통화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다.

스카웃까지 돼서 승승장구하다가 별의별 핍박을 다 받고 결국 해고까지 당한 그는 어떤 기분일까. “차라리 홀가분해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부산으로 쫓겨가 2년 넘게 있는 동안 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숨이 막혔죠. 커다란 바위에 짓눌리는 느낌이랄까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 "삼성은 팀장과 팀원들이 서로 감시하고 동향을 보고해요.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구조조정 할 수 있으니 삼성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셈이에요. 그런데도 왜 삼성에는 저항한 사람이 없을까요?”

그는 지난 6월28일 해고를 통보받고 억울한 감정을 달래며 모란공원 전태일열사 묘역을 찾아갔다. “삼성은 전태일열사가 분신해 돌아가실 당시의 평화시장과 다를 바가 없어요. 노조가 있어도 싸우기 벅찬데, 삼성은 팀장과 팀원들이 서로 감시하고 동향을 보고해요.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구조조정 할 수 있으니 삼성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셈이에요. 그렇게 오랜 세월 핍박받으면서도 왜 삼성에는 분신으로 저항한 사람이 없을까요?”

한용기 씨를 보면서 주변 사원들은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취업규칙을 만들어 칼질하면 다 죽는다는 걸 알아요. 전 비록 해고됐지만 민주노조를 열망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꿋꿋하게 싸워 조직을 건설하고 자주권을 찾을 겁니다.”

삼성에 맞서 싸움을 준비하면서 이제 진짜 노동자로 거듭나는 한용기 씨. “삼성 노동자들이 불꽃처럼 일어나 그동안 자본에 잠식당하고 침체돼 온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길에 제가 일조하고 싶어요. 삼성에 민주노조를 만들고 노동운동이 삼성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 다시 부흥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전 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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