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열사정신계승! 노동탄압분쇄! 민주노조사수! 2012년 임단투승리! 故하중근열사 6주기 추모대회

- 일시, 장소 : 2012. 7. 27(금) 16:00, 포항 형산로터리(해도근린공원)

- 주최 및 주관 :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하중근열사 영정~1.JPG

 

1. 하중근열사 약력

1962. 7. 11 경북 포항 호미곶 구룡포(현 포항 남구 대보면)에서 태어남

1981 포항 수산고등학교(현 포항해양과학고) 졸업

1981 원양어선에서 항해사로 10여 년 근무

1993 건강보조식품 사업

1995 소형 통발어선 운영

1997 포항건설노조에 가입해 제관분회 소속으로 활동

2006. 7. 16 포항 형산강로터리 집회에서 경찰폭력으로 쓰러져 뇌 손상 판정

2006. 8. 1 새벽 2시 55분 뇌사 상태에서 끝내 운명

2006. 9. 6 포항에서 건설노동자장으로 장례/화장 후 고향 앞바다에 뿌려짐

2. 하중근열사 투쟁 경과

열사는 포항건설노조에 가입해 제관분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2006년 포스코 현장의 토목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관행적으로 강요되어 오던 9시간(오전 7시 출근) 노동 거부를 선언하자 사측은 5월 30일 300여 명을 일시에 해고했고, 포항지방노동청에 진정했으나 관행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답을 듣게 되자 연일 항의집회를 이어갔다.

2006년 7월 1일, 포항건설노조 4천여 조합원은 주5일제 실시에 따른 대책, 임금인상, 다단계하도급구조 청산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11일 포스코 측과 성실교섭에 합의하였으나 13일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에 대항하여 포스코 점거농성에 돌입하게 된다.

7월 16일, 열사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주최로 형산강로터리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경찰은 이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열사는 방패로 뒷머리 우측 부근을 가격당해 쓰러진 후 경찰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고, 경찰이 물러간 후 발견돼 급히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사경을 헤매던 열사는 몇 차례의 수술을 받기도 하였으나 결국 8월 1일 새벽 운명하였다.

열사가 운명하자 파업투쟁 과정에서 전국 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항지역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폭력살인 정권 규탄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건설노동자 하중근 열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응했으며, 유족들의 요청으로 37일만인 9월 6일 장례가 치뤄졌다.

이 과정에서, 열사대책위는 국가인권위원회 제소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말 현장 조사와 진압경찰 및 지휘부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나,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2006년 11월 27일 하중근 열사의 사망사건에 대하여 경찰의 과잉 진압을 지적하면서 경찰의 집회, 시위 강제해산과정에서 열사가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인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 유족과 열사대책위원회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열사대책위원회와 건설연맹 등이 1년 넘도록 집중집회 및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이어갔으나 2주기 추모대회 직후인 2008년 8월 14일, 서울지방법원은 '증거불충분과 증거능력 부족'을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고, 2009년 12월 1일 대법원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하중근열사 사망사건은 6년이 지났지만 미제사건으로 처리되어, 현재 ‘의문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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