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저널리즘’ 탄생주역 톰슨의 일대기 ‘럼 다이어리’

술 소비는 경기와 반비례한다는 보고가 있다. 불황이나 불경기일 때 술 소비는 증가한다. 삶의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해서다. 지하철 역사 내 노숙자들이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은 흔하다. 최근 홍대 근처 클럽에도 술에 쩐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청년들의 실업이 만성화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근대 개발의 역사도 술과 함께 했다. ‘캐러비안 해적’의 조니뎁이 술에 쩐 채 나타났다. 1960년대 미국 투기 붐과 당시 언론을 조명한 영화 ‘럼 다이어리’다.

1960년 한때 소설가를 꿈꾸던 폴 켐프(조니 뎁)가 카리브해 연안의 지역 신문기자로 날아온다. 그의 방에는 숱한 미니 위스키병이 나뒹굴고, 술에 깨어나선 금붕어가 살아 움직이는 어항의 물도 냉큼 들이킨다. 어느 날 부동산 재벌 샌더슨과 그의 연인 셔넬(앰버 허드)이 거액을 제시하며 불법 리조트를 위한 기사를 청탁해온다. 평생 술값에 양심을 팔 것인가, 아니면 일생 최대의 특종을 잡을 것인가.
 
이 영화가 저널이라는 주제를 다뤘음에도 언론의 날카로움에 무게를 둔 것 같진 않다. 대신 카리브해안의 풍경과 푸에르토리코 빈민가의 환경 정도가 대비돼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60년대 포드차와 고물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의 모습이 살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뉴욕타임즈 기자들이 술과 마약에 취해 흥청거리는 모습 속에, 개발 투기 자본가들의 소비향락 문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내내 궁금하게 만든다.
 
톰슨 기자의 특종 잡기도 숙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처럼 명쾌하진 않다. ‘취중진담’이 보일락 말락 톰슨 특유의 매력을 전달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그저 영화는 비교적 담담하게 흐름을 유지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톰슨이 종종 술에 절고 약에 취해 흥청거리는 양 행동하지만, 진실을 찾는 예리한 태도를 거둔 것은 아니다. ‘곤조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럼 다이어리’는 타락, 탐욕, 소비에 기반을 둔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언론까지도 무력하게 하는지 까발린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톰슨이 엿 같다고 욕한 세상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사업가를 흉내 내는 투기꾼들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여전히 탐욕과 부패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인미답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미국의 거대 자본과 기업의 개발로 서서히 병들어가는 불편한 진실을 씁쓸한 시선으로 담은 ‘럼 다이어리’. 재미는 적을지 모르지만 통렬한 비판의식은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에메랄드 빛 해변에서 펼쳐지는 조니 뎁과 엠버 허드의 러브신도 볼거리다. 2005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톰슨은 ‘곤조 저널리즘’이란 글쓰기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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