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한진중공업지회 한상철 조합원 “민주노조 사수!”

▲ 최강서열사 유서가 적힌 피킷을 들고 부산역 선전전 중인 한진중공업지회 한상철 조합원(1월15일). 사진=변백선기자
한진중공업지회 한상철 조합원이 <노동과세계>를 만나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에 대해 이미 사측 교섭 대표에게 세 차례나 경고를 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사측의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를 규탄하며 항의자결한 지 1월17일 현재 28일째다. 한진중공업지회는 최강서열사의 유언을 관철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완강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가족들도 장례를 미룬 채 한진중공업 조남호회장의 약속이행과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고매일 오후 2시부터 2~3시간 동안 부산역과 시내 일대에서 조남호회장과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로 인해 최강서동지가 항의자결한 사태를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한다.

<노동과세계>가 15일 오후 부산역에서 선전전을 벌이는 있는 한상철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53세)을 만났다. 한 조합원은 “손배가압류 철회! 민주노조 탄압분쇄!”와 최강서열사 유서가 적힌 피켓을 들고 부산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는 인사에 한상철 조합원은 “오늘은 그래도 날씨가 마이 풀려서 서 있기 괘안타”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강서 동지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겉보기에도 그렇고 터프했어요. 강인한 인상이었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힘도 좋았어요. 지난번에 용역과 충돌이 좀 있었는데 좀 맞았다고 그들이 최강서를 비롯해서 우리 조합원 여섯 명을 고소했어요.”

한진중공업 사측은 용역을 고용해 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을 자극해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 “그때도 강서는 뭐 별거 있겠느냐면서 나쁜 놈들이라고 하고 당당했어요. 그러면서도 (강서가) 속으로는 썩어문드러지지 않았겠어요?”

이어 한상철 조합원은 자신이 이미 사측에게 수 차례 경고를 했었다고,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미리 경고를 했었다고 전했다.

“불행한 이 사태를 저는 어쩐지 예측을 했어요. 제가 우리 쪽 교섭대표였거든요. 지난해 5~6월 경에 거의 마지막 교섭을 할 때, 교섭석상에서 두 번이나 경고를 했어요.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한진중공업지회는 사측에 대해 “노동조합의 자존심만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단협도 백지화돼 버린 상황이었고 임금도 동결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손배가압류를 철회하고 노조를 인정하라고 했다.

“우리 자존심만, 노동조합만 인정하면 모든 걸 양보하겠다고 수 차례 이야기를 했어요. 사측도 알 겁니다. 2003년의 교훈이 있지 않습니까? 저들도 과거의 교훈을 통해서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안단 말입니다. 잠재적 요인을 갖고 있다는 걸 당연히 알죠.”

“교섭장에서도 두 차례나 경고를 했고, 공장에서 (사측) 교섭대표를 우연히 만났을 때도 제가 화를 내면서 이런 식으로 가면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교섭석상에서 두 번, 비공식적으로 한 번, 그러니까 총 세 차례나 경고를 한 거죠.”

“강서가 죽은 날 제가 너무 분통하고 억울하고 그래서 교섭대표인 노무팀장이 있는 건물 뒤로 가서 너부터 죽이겠다고 멱을 따버리겠다고 고함을 질렀어요. 그랬더니 문을 꼭 잠그고 안 나오더라구요.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아예 공장 출입도 못하고 있어요.”

▲ 한진중공업지회 부산역 선전전(1월15일). 사진=변백선기자
▲ 한진중공업지회는 최강서 열사 유언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변백선기자
한진중공업지회는 영도 조선소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며 조남호회장과 한진중공업 경영진을 상대로 한 투쟁을 잇고 있다. 매일 출퇴근 투쟁을 벌이고, 오후 2시부터 부산역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방송차를 타고 부산시내를 돌며 시민들에게 조남호회장의 학살을 규탄한다. “요즘도 출퇴근 투쟁 때 그들과 부딪치면 우리가 그러죠. 얼마나 더 죽이려고 그러느냐고요.”

한진중공업 사측은 지회를 겨냥해 어처구니 없는 행태만을 일삼고 있다. “철문을 두 개 세 개 만들어 굳게 잠그고 고성능 CCTV와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정문 옆 건물에 철판을 용접해 막고 용역을 고용했구요. 신문광고를 해서 강서가 생활고를 비관한 개인적 죽음이라고 하고, 복수노조를 이용해서 성명서를 내고, 조남호회장 집 앞 가처분을 신청하고... 그동안 사측이 한 거라고는 담벼락을 치고 틀어막은 거밖에 없어요.”

“저들은 우리가 두렵겠죠. 그러면서도 상황 판단을 못하는 거에요. 어찌 보면 해결이란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쉬운 건데... 돈 들일 일도 없고요.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나요?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복귀 약속을 지키라는 거 말고 없어요.”

“어차피 저질러진 거고, 강서가 판을 열었으니 우리가 투쟁으로 문을 열어야죠. 지금 투쟁하는 간부와 조합원이 20명, 많게는 30여명이에요. 2003년 (김주익열사, 곽재규열사) 그 때도 남은 사람은 상집간부 20여 명밖에 없었어요.”

한진중공업에는 4인의 열사가 있다. 1991년 박창수열사가 전노협과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이는 국가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어 2003년 당시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은 사측의 일방적 정리해고에 맞서 영도 조선소 타워크레인 85호에서 129일 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을 매 세상을 등졌다. 농성 129일 간 사측은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김주익열사가 죽은 후 곽재규열사가 영도조선소 도크 위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김주익열사 유서)

▲ 한진중공업지회 부산역 선전전(1월15일). 사진=변백선기자
한상철 조합원은 1987년에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저는 저는 4명(박창수열사, 김주익열사, 곽재규열사, 최강서열사)의 열사를 고스란히 다 겪었어요. 하필이면 제가 집행간부를 할 때 늘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온갖 파란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그는 민주노조 깃발을 쥐고 한결같이 싸워왔다.

“저는 그래요, (어용노조로 간) 조합원들이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고 봐요. 우리가 이 잘 풀어야죠. 다만 걱정은 사측에게도 제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추가로 또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겁니다. 회사가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데 빨리 이 문제를 풀어야 돼요.”

한진중공업은 2011년 11월 노사합의 후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쥔 채 협박과 강압으로 지회를 탈퇴시켰다. 최강서동지 부친은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 즉 지회를 탈퇴하고 어용노조로 갈 경우 회사가 돈을 천만원씩 줬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회와의 교섭에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응하면서도 단 한 가지도 합의해주지 않았다. “교섭권이 복수노조에 가기만을 기다린 거죠. 지난해 7월에 어용노조가 다수가 되면서 교섭권이 넘어갔어요. 그 전까지는 우리에게 교섭권이 있으니까 교섭대표권이 어용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끈 거에요.”

한진중공업은 교섭권이 어용노조로 넘어가자 한진중공업지회에는 10원 한 장 못 준다고 엄포를 놓고 어용노조는 임금 25만원씩을 인상했다. “조합원들에게 복수노조가 (임금을) 따왔다는 명분을 주려고 한 거죠. 해고자들이 복직할 때도 복직 전에 복수노조와 합의하는 모습을 만들어줬구요.”

한진중공업 네 명의 열사를 모두 겪은 한상철 조합원. 그를 비롯해 남아서 투쟁하는 모든 간부와 조합원들은 마음도 몸도 온통 상처투성이다.

“화를 주체하기 어려워요. 어딜 가던 누가 건드리면 폭발해요. 터지고 말아요. 회사 앞에서 사측을 만나도 그렇고 선전전을 하다가 누가 와서 막 욕을 하면 또 그렇고... 정리해고 때문에 우리가 마음이 다 무너졌어요. 내 동생이, 내 동료가 죽어서 상처 받고, 시민들이 외면하면 또 상처 받고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이 있겠죠.”

▲ 한진중공업지회 부산역 선전전(1월15일). 사진=변백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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