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을 양민학살로만 그리는 시각은 단편적이고 왜곡이다. 제주 4.3항쟁은 단지 '빨갱이사냥'(red- hunt)를 참칭한 양민학살이 아니었다. 실제로 빨갱이 사냥이기도 했다. 제주학살은 바로 5.10 선거, 즉 미군정의 관리감독하에 남한만의 단독국가/정부 구성을 위해 진행된 선거에 대한 반대시위에서 촉발되었으니.

1947년 3월 1일, 경찰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에게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일반 주민이었다. 이 사건이 4.3의 시작이었다.
... 남한에 대한민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제 제주도 사태는 단순한 지역문제를 뛰어 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자, 미군은 제주도를 '붉은 섬(red island)으로 명명하고 'red-hunt'(빨갱이 사냥)을 공식적으로 지시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냥은 5.10 선거 직후인 19 48년 수립된 '신생' 대한민국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다.그리고 이는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무려 7년 7개월간 지속되면서 엄청난 유혈사태로 비화되었다.

이것이 제주4.3항쟁의 전말이다.
제주 4.3항쟁은, 식민지해방이후 미군정이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의 수립과정에서 맞물린 숙명같은 사건이었다. 그것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존재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건이다. 그는 해방정국 혹은 미군정 3년간의 시공간에서 가열차게 벌어진 식민지 해방국가의 모습에 대한 좌우 투쟁과 민중적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쓴 한 세력에 대해서 민중세력이 맞선 최후의 저항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제주 4.3항쟁에 대한 기억투쟁, 그리고 현재 제주 4.3항쟁이 이 나라에서 기억되는 방식은 이 나라의 정통성이 현재가 어디에 뿌리박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결국 친미 우익과 반공을 국시로 한 정치체제. 민주주의도 넘지 못한 국가정신. 이를 어찌 넘어 이념의 자유시장을 만들어낼 것인가.

묻는다. 당신은 만약 4.3항쟁이 당장 오늘 벌어진다면,
과연 이들 학살된 양민들, 그리고 이른바 빨갱이들이 이 땅에 살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지지할 것인가.

문재현/ 통일일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