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햇병아리처럼 단체복 차림으로 선생님 뒤를 졸졸 따르던 유치원 아이들. 대한문에 자리잡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분향소 앞을 지나치다 걸음을 멈춘다. 따가운 오후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대한문 돌담길 앞을 차지한 화단과 화단 앞으로 밀려난 허름한 분향소에 시선을 멈춘다.

뒤따르던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영정사진을 자못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궁금함이 다 풀리지 않은 아이는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뒤돌아 힐끔거린다. 노란 행렬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내 시선은 대한문을 떠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있는 미래의 모습을 더듬고 있다. 하지만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대한문 분향소에 걸려 있는 영정사진이 아이들의 얼굴과 겹쳐졌다. 당황스러운 나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영정 속의 노동자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또다시 눈 앞에 그려졌다. 지나가는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나게 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의 수단을 빼앗긴다는 것은 더 이상 미래를 꿈 꿀 수 없음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2009년 4월 8일 2,646명 정리해고 안이 발표된 후, 미래를 꿈 꿀 수 없는 이들은 현실에서 악몽과 같은 죽음과 마주해야했다. 지금까지 24명의 생명이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살아있는 이들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기만 하다.

기업의 성장이 노동자의 성장임을 목청 높여 외치던 회사와 국가가 현실에선 소수 경영자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퇴직금을 내놓겠다는 노동자들의 순박한 제안과 일자리를 나누며 함께살자는 제안도 모두 묵살 당했다. 이들은 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회계조작으로 회사를 순식간에 부실덩어리 회사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회사에서 내밀린 노동자들을 사회는 어떻게 대했을까. 사회안전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사회는 ‘빨갱이, 강성노조’라는 낙인을 찍어 쫓겨난 이들을 또다시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배척했다. 기업과 공권력이 노동자를 쫒아내고 사회가 숨통을 조이는 완벽한 역할분담에 따른 완벽범죄였다. 피해자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상처를 누르고 자신의 과거를 지운채 숨죽여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쌍용차해고자들의 심리치유상담을 했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 님은 이야기 한다. “극한의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 전쟁을 겪고 돌아온 군인들, 고통스러운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다름 아닌 가족과 사회로 돌아온 순간이다.” 이해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가족과 사회의 비난과 거부감은 끈질기게 지켜오던 삶의 의지를 꺾어버린다는 것이다.

22명의 죽음이 발생하고 2012년 4월 5일 대한문에 세워진 쌍용자동차분향소가 1년 만에 철거당했다. 파업 후 3년 만에 자신들의 아픔을 시민들에게 호소하던 장소다. 뒤늦게 쌍차 사태를 알게 된 시민들이 아픔을 함께 나누던 공간이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이 사회의 아픔들이 세상으로 나와 서로를 다독이던 치유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통행에 방해를 준다고 분향소를 철거한 중구청은 정작 그 자리에 흙을 쏟아 붓고 화단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통행은 화단으로 인해 보행의 폭이 좁아져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대한문 돌담길은 화단에 가려 어색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철거 당시 잠을 자고 있던 쌍용차 조합원들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가방도 챙기지 못한 채 사지가 들려 다시 길거리로 쫓겨나야했다. 맨발로 아스팔트위에선 조합원은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흙을 쏟아 붇고 화단을 만드는 모습을 붉어진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시 내 쫓겨 고개 숙이고 앉은 그들의 눈에선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쌍용차에 연대하는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해고자들의 확성기가 되어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쌍용차와 장기투쟁사업장을 응원하는 '희망지킴이'는 시민들이 2만개의 부품을 구입하고 해고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는 '쌍용차해고자 H-2000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쌍차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사회적 압력을 넣는 것과 동시에 자동차를 시민들과 해고자들이 함께 만들며 다시 한 번 서로를 다독여 힘을 내 보자는 취지다. 2009년 파업 때부터 쌍용차 해고자들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다. 이제 그들만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자동차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 자동차 앞에 선 해고노동자들의 얼굴엔 설레임과 어색함, 긴장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연장을 들고 얼마가 지나자 몸의 기억은 되살아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동차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자동차를 바라보는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해고되기 전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들이 복직하여 공장으로 돌아 갈 모습이 비로소 눈에 그려졌다. 

조립을 끝낸 해고노동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건넨다. “자동차를 만들고, 기름 냄새를 맡고, 연장들 부딪히는 소리들을 들으니 행복했어요. 난 공장에서 일 할 때도 다들 시끄럽다는 기계음들이 음악 같았어요. 손에 연장을 잡으니 그동안 지난 기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데....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드디어, 시민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쌍용해고자 H-20000' 모터쇼가 6월 7일 저녁 7시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각계각층의 인사로 구성된 10여명의 선정위원들은 응모된 사연 중 한 사람, 또는 한 단체를 뽑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담은 자동차는 새 주인을 만나 거리를 누비고 다닐 것이다.

시청광장에는 오후 4시부터 16개의 출판사 북 바자회도 열리고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을 위해 솜사탕 만들기, 팝콘 만들기, H-20000풍선, 페이스페인팅 등의 각종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광장 건너편 재능 농성장에서는 벼룩시장도 열린다고 하니 물품도 현장에서 기부하고 물건도 구입할 수 있다. 7시에 시작하는 모터쇼는 변영주 감독의 진행으로 가수 이한철, 자전거를 탄 풍경, 허클베리핀 등이 출연 예정이다.

모터쇼는 지금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해 헌신적으로 연대를 해주는 시민들, 노동자들, 행사 참가자들의 연대로 가능할 수 있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이제 그 자리를 채워 줄 시민들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거창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한다. 못된 짓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 힘든 이가 있으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들을 어른들이 지켜야 하지 않나. 불의에 침묵하고, 강자의 말에 복종하고, 약자를 향한 폭력에 가담하고, 약속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가르칠텐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 줄텐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싶은가.

6월 7일 시청광장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보자. 4년 동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끝없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쌍용해고노동자들에게 이제 희망이 아닌 현실로 답을 해야 한다. 당신의 발걸음으로 고단한 해고노동자의 어깨를 감싸안고 세상을 향해 함께 소리쳐 달라.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김미성 / ‘함께살자! 희망지킴이’ 홍보대사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