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근무한 학교서 자결...전회련학비본부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충북지역 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에 항거해 자결했다. 사진=노동과세계
▲ 이태의 본부장은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은 동료를 보내는 것도 못하게 하느냐?"면서 분노를 표했다. 사진=노동과세계
교육현장의 차별과 억압이 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충북지역 한 초등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난 17일 새벽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목을 맨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고인의 소지품과 동료들의 진술에 의하면, 고인은 업무통합으로 인해 업무가 증가된 데다 당뇨증세가 악화돼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난 6월 30일 불가피하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후 고용보험관리공단을 방문해 실업급여 절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교 내 휴가와 휴직제도가 있음을 알게 됐다.

무급휴직이 가능했다는 것을 확인한 고인은 7월 학교 측에 퇴직금을 반환하며 복직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를 거부했다. 고인은 청와대 국민신문고와 교육청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복직을 탄원했으나 역시 퇴직처리를 취소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고인은 8월 16일 밤 11시 이후 나가서 17일 새벽 근무하던 OO학교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치료받을 권리조차도 심각하게 차별받고 있다. 충북지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4일 간의 유급병가를 포함해 최대 60일의 무급병가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학교의 정규직 공무원들은 연간 60일의 유급병가와 함께 1년 동안(2014년부터는 2년) 봉급의 70%를 받으며 질병휴직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눈치가 보여 제때 쉬지 못하며 병을 키우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는 정작 차별적 병가제도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야 했다.

▲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장. 사진=노동과세계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가 21일 오전 11시 교육부 후문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죽음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회련학비본부는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열흘 동안을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교육부와 충북교육청을 포함한 전국 노동조합 사무실과 온라인상에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의 죽음을 추모한다.

추모기간 노동조합은 교육부와 충청북도교육청 홈페이지에도 애도리본(▶◀)을 달고 항의 글을 올리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자행하는 교육당국을 규탄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오는 8월 30일 충북교육청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대회를 열고, 9월 6일에는 교육부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회견에서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장은 눈물로 얼룩진 비통한 얼굴로 충북 학비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교육부를 규탄했다. “고인이 근무하던 학교현장에 가서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유족을 만나서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그 상처에 또다른 아픔을 줄까봐 유족을 달래기만 했다”고 전한 이 본부장은 “억울해서 못살겠어서 사망을 사주한 정부와 사회와 교육부장관에게 항의하려는데 공권력은 이마저 폭력으로 막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본부장은 “우리 동료를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은 우리 동료를 이렇게 보내야 하느냐?”고 묻고 “13년 간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차별과 억압으로 짓밟히다 병이 생겼는데 치료도 못하고 자기 권리조차 알지 못하는 비정규직 현실이 정말 처참하다”면서 “우리는 동료의 죽음을 딛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시정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사무처장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비통한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진=노동과세계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올해 벌써 비정규직 노동자가 몇 명 죽었는지 아느냐?”고 묻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철탑에 오르고 매달리고 죽어야 고작 언론에 한 줄 나온다”면서 “정규직 노동자가 6시에 퇴근할 때 비정규직은 8시, 9시에 퇴근했고, 정규직이 칼라TV 놓고 살 때 비정규직은 17인치 흑백TV를 놓고 살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죽음은 97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소중한 목숨”이라면서 “박정식 열사가 지난 7월 15일 세상을 떠난 후 아직도 차가운 냉동실에 있다”고 전하고 “전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민주노총이 총력투쟁에 나선다”고 경고했다.

“분하고 원통하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학교비정규직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방적 업무통폐합 중단하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차별이 부른 사회적 살인이다!”
“죽음 부른 학교비정규직 차별, 교육부장관은 당장 사과하라!”

“교육부는 책임지고 재발방지대책 수립하라!”
“아파도 치료받을 권리조차 없는 학교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학교비정규직 죽음! 교육부장관 책임져라!”
“교무실무사님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일방적인 직종통합 반대한다!”

최보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교육현장에서 13년 간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병조차 치료받지 못하고 끝내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말하고 “이는 교육당국이 저지른 명백한 살인이며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면서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의 정당한 노동권을 쟁취하자”고 다짐했다.

정인용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경기지부 사무국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박근혜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공부문에서 가장 심각한 학교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는 무기계약을 정규직이라며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면 비정규직 문제는 사라지는 것인 양 주장하지만 고인은 이미 정부가 그토록 정규직이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였다”고 전했다.

전회련학비본부는 “몸이 아파도 휴직제도조차 없어 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였고, 비정규직의 서글픈 현실에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던 노동자였다”면서 “박근혜정부는 무기한 비정규직에 불과한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짝퉁 대책이 아니라, 차별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처우개선 대책이 수반된 제대로 된 진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차별 앞에 죽음으로 항거한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충북도 내 학교 교무실무사(과학)님의 애통한 죽음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사진=노동과세계
분노와 울분에 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교육부 앞에서 울려퍼졌다.

“교육부는 책임지고 재발방지대책 수립하라!”
“아파도 치료받을 권리조차 없는 학교비정규직차별 철폐하라!”
“분하고 원통하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승리하는 그날까지 목숨걸고 투쟁하자!”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는 이날 회견 직후 교육부 후문 앞에서 철야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충북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알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기자회견과 농성마저 폭력으로 가로막았다. 회견을 진행하기 위해 현수막과 피켓 등을 운반하는 과정에서부터 “영정사진이 있으면 불법집회”라며 관련 물품을 갖고 온 간부들을 에워싼 채 불법으로 감금했다.

회견 후 교육부 후문 앞에서 농성에 돌입할 때도 경찰은 현수막을 달려고 하는 간부들을 끌어내리고 밀어내며 농성물품을 빼앗아가며 도발했다.

이태의 본부장은 국화꽃 다발을 손에 든 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현수막 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죽은 사람을 보내는 것도 못하게 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쓰레기가 아니다. 우리도 인간이고 당당히 주권을 가진 국민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사람을 죽인 이 정부가 왜 우리의 당연한 권리조차 폭력으로 막는가? 얼마나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 경찰의 폭력, 폭력, 폭력... 사진=노동과세계

억울하고 분하고 배신감에 어찌해야 하는지 날마다 눈물만 나옵니다.
갑을의 세상, 비정규직의 비참한 세상이란 말이 절감하여 처절합니다.
13년 동안 과학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지만 나름 보람된 삶을 보냈건만 병으로 인하여 퇴직하는 과정에서의 비참함과 황당함,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 하는 나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
학급수가 54학급까지 있을 때 복수감제도 실시했지만 우린 그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묵묵히 지친 업무에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일했습니다.
행정실은 교무실로, 교무실은 행정실로 나의 억울한 사정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병도 감당하기 힘든데, 수면제 도움없인 잠도 이룰 수가 없는 이 비참한 삶,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게...
날마다 눈물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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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은 고인이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민원(2013. 8. 7 접수)이다. 이 민원 내용은 고인의 유품으로 호주머니 속에서 함께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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