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대학생 강연가를 꿈꾸던 시절 나는 이 시가 너무도 좋았다. 프레젠테이션 대회에 참가했지만 좌절 더불어 기획서를 들고 부탁을 드렸지만 거절 당했다. 뭐랄까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하면 그 좌절감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면서 점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과연 내가 이렇게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까 깊은 망설임에 빠진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을 보는데 흔들리며 피는 꽃이 있었고 나의 마음에 있어서 많은 힐링이 되었다. 지금 내가 좌절하고 있는 것은 젖고 있는 것이며 거절 당하는 것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되새기면서 나날이 더욱 노력했다. 거절을 받는 이유는 내가 그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과 실력적인 부분에 있지 않을까해서 그때부터는 무조건 어디든지 달려갔다.

모든 수업은 발표수업으로 들었다. 프레젠테이션 역량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쌓고자 노력했고 프레젠테이션 관련 세미나는 모두 들으러 다녔다. 기록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어서 매일 기록했고 집으로 돌아와 실제로 많이 해보았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은 느낄 수 없었지만 그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날수록 예전과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찌보면 꽃이 피는 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꽃은 한 순간에 피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피어 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섬세하게 조금씩 피어난다. 우리의 삶도 같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또 다른 꽃을 피우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 도전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괜찮다. 이것들이 내 스스로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것들인 동시에 내가 꽃을 피울 수 있게 함께해주는 고마운 것들이다.

버텨라 버텨라 버텨라 힘들다면 꽃의 행동을 잘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녀석은 매번 버티고 있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버틸 뿐이다. 이와 같은 인내와 끈기가 시간과 함께 만나 꽃을 피운다.

우리의 인생도 성취가 클수록 인내와 끈기의 시간도 길다. 자신이 무언가 하고 있다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했다면 다음번에는 실패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고 넘어졌다면 다음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주변에 실패했거나 넘어진 친구가 있다면 일어나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서 이 시를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

도종환 시인의 시집을 감상하기 전에 그 분이 살았던 삶을 이해하고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의미와 그 깊이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종환 시인에 대하여

도종환 시인은 중학교 다니던 무렵 부친이 사업에 실패했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외가에 맡겨져 앞을 못 보시던 조부는 고모 댁에 불편한 몸을 의탁해야 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은 어린 나는 밤이면 창틀을 붙잡고 눈물을 질금거리다가 편지를 썼다고 한다.

가난해서 책을 사달라고 말할지 못했으며 그래서 도서관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도종환 시인의 문학은 좌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미대를 갈 수 없었고 미대는 커녕 대학을 갈 형편도 못 되었다.

결국 국가에서 대주는 지방 국립 사법대를 가야했고 그중에서도 돈이 제일 안 들 것처럼 보이는 국어교육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많이 방황했고 많이 절망했고 폭음이 잦았다.

군에 있는 동안에는 광주민중항쟁이 터졌고 여수와 순천 국도변 바리케이드 뒤에서 총을 들고 있어야 했다. 그 일에 민족현실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제대 후에 작품 발표를 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 있는데, 작품을 발표할 매체나 정기간행물은 폐간되고 없었다. <분단시대>라는 동인모임을 만들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이었다

도종환 시인의 문학은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젊은 아내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떳을 때 서른 두 살이었다. 낳은 지 넉 달밖에 되지 않는 딸아이와 두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 몸부림치면서 시에 매달리게 되었다. 부당한 권력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나 혼자 개인적인 고통과 상실의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한 사람의 아픔이든 우리가 모두 겪는 아픔이든 그 아픔에 정직해야 하는 게 시인이 가져야 할 태도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더불어 도종환 시인의 문학은 버림받음에서 지속되었다. 내 딴에는 선생노릇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교육운동에도 참여하였지만 아이들을 두고 감옥으로 끌려가야 했고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의절을 하겠다고 하시는 아버지나 아이들을 떠맡게 되신 어머니에게 죄스러웠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데 십년이 걸렸다.

도종환 시인의 문학은 아픔에서 다시 시작하곤 하였다. 대학의 경임교수를 그만두고 시골 중학교에 복직하여 오 년 가까이 학생들과 즐겁게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수 중에 강의를 듣고 앉아 있다가 쓰러졌다. 그 뒤부터 잔병에 걸려도 낫지를 않고 병원에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외로움과 가난과 좌절과 억방과 상실과 버림받음과 아픔이 없었다면 나의 문학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들에 감사하며 그것들 하나하나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롭고 가난하고 절망스럽지 않았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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