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부모님과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술도 마시고, 미팅도 하고, 여행도 가고, 놀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온통 통제와 억압뿐이었던 청소년기를 마감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좋았다. 그래서 20대 이후 삶이 어찌 보면 온전한 나로, 스스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분기점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다행히도 그랬다. 그런데 인생에서 해 봤던 것보다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많았던 아이들이, 인생의 많은 것을 20대 이후로 미뤄두었을 우리의 아이들이 차마 그 시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물 속에 갇혔다.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국가는 한 명의 아이도 구조하지 못했다. 혹자는 세월호 침몰은 청해진해운사의 책임이지만, 인명참사는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기간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뿐만 아니라 전 국민은 깊은 탄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선진국 대열에 낄 만큼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왔던 모두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국민의 생명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지켜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권과 정권해바라기 언론들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오도하기 위해, 이제까지처럼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세상에는 꽃다워 차마 부르기조차 아까운 아이들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 6살짜리 부모도, 가족을 위해 일 해온 계약직 여성노동자도,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했던 선생님들은 없다.

그들의 세상엔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은 것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관료와 당연히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관료, 혹시라도 군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까봐 염려스러워 민간 구조요원의 도움을 뿌리쳤던 군관계자, 울분을 참다못해 청와대로 향했던 실종자가족들을 막아섰어야 했던 경찰, 혹시라도 좌파세력에게 권력을 뺏길까봐 전전긍긍하며 개드립을 쳐대는 정치인과 보수인사, 사고는 안중에도 없이 선거 운동하는 지방선거 후보자와 거기에 함께했던 유권자들 등이 있다. 그 세상에는 아마도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고, 아마도 인간은 평등하지 않고, 이러한 불평등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데 그들이 우리 세상의 실권을 쥐고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대학때 주말마다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일을 그만둔 지 6개월 만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광경이었고, 내가 일했던 곳은 지하 매장이었는데 알고 지냈던 내 또래 직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때도 돈에 눈이 먼 사장과 그걸 눈감고 허가해 준 관계 당국 등의 총체적 비리가 드러났고, 우리 사회는 다시는 그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자고 건축규제를 강화했다. 안전은 결국 비용과 직결된 문제이고 일상적으로 이 같은 비용은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아깝다. 안전은 기본적인 인프라뿐만 아니라 인건비 측면에서도 상당한 자본이 투자돼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투자는 단기 생산력의 측면에서는 생산비용을 증대시켜 이윤을 감소시킨다.

그러기에 신자유주자들은 탈규제가 보다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경제모델인 것처럼 주장해 왔고, 한국에서도 탈규제가 주류 경제원리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해운업계의 요청에 힘입어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에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시켰다(1985년 여객선 사용연한 20년으로 제한, 91년에 조건부로 5년 범위 내에서 연장). 그 결과 선령 20년 이상 여객선이 2008년에 7.2%(전체 여객선 166척 중 12척)에서 2013년 30.9%로 증가했다(전체 여객선 217척 중 20년 이상 67척). 1994년 건조됐던 세월호가 2012년 인수할 당시 선령이 18년이었고, 변경된 시행규칙에 따라 문제없이 승인됐다. 이와 같은 규제완화로 2008년 선박 767척, 인명 4976명의 해상조난사고가 발생했으며, 2009년에는 선박 1,921척, 인명 1만1,037명의 해상조난사고로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청해진해운의 경우 종교를 기반으로 매우 폐쇄적인 기업운영구조를 가졌다. 이러한 폐쇄성은 노동조건에 그대로 반영되어,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임금 수준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결국 노동을 존중하지 않고, 안전에 투자하지 않았던 청해진해운은 2014년 4월 16일 아침 476명의 승객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내 몰았다. 그리고 국가는 청해진해운과 같은 자격미달 기업이 시장에서 버젓이 장사를 하는 것은 방조했다. 각종 안정점검은 이른바 해피아(해수부 마피아)들에 의해 점령되어 형식화됐으며, 예고된 참사를 막아내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연초부터 각종 규제완화에 대해 강력하게 선동했다. 또한 정부는 세월호 침몰이후 국민을 살려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더 이상 박근혜 정권에 대해 그 어떤 신뢰를 갖기 어렵게 됐다.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Brecht)는 나치정권을 피해 망명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돌아와 한 편의 시로 그의 심정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알려진 이 시의 원제는 ‘나 살아남은 자(Ich der Überlebende)’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파시즘의 폭력으로 죽어갔던 친구들을 기리며, 그 시기를 견뎌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이 짧은 시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이제 우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생존해서 돌아온 귀한 우리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보내야 한다. 또한 오늘도 살아 있는 이 자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운이 좋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국가가 이렇게 운영된다면 언제, 어디서 우리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살아있는 자로서 우리의 세상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다른 어떤 것을 지키려는 자들을 권력층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이제까지 가족을 위해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멀리해왔다면 이제는 참여하지 않고서는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에는 무관심한 저들에게 국가권력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그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뿐으로 살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란리본을 달고 기적을 바라고 있고, 모두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이 지경이 된 국가권력을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장에게 독설을 날리고 공무원들의 기강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내놓는 것으로 최선의 책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약속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않았던 국가를 반드시 바꿀 것이라는 약속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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