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내디디면

보이지 않던 길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5월 15일, 결국 MBC에는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세월호처럼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우리나라 저널리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 날, MBC는 반성의 유전자를 결여한 최소한의 양식도 없는 구제불능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SBS 뉴스는 유족 대담을 통해서, KBS는 자신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는 리포트로 그동안의 보도 태도를 되돌아보고 사과하고 사죄했습니다. 그러나 MBC는 아무런 반성도 참회도 없이 여전히 오만한 시선으로 뉴스를 편집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했습니다.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이미 잃을 대로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는 건, 이미 침몰한 ‘언론사 MBC’를 인양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늦었습니다. 사과할 기회조차 놓쳐버린 겁니다.

우리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성문을 쓴 기자들에게 ‘색출’을 운운하고 또 부당인사의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남은 것이 있었다면 그건, 사측의 사과와 반성을 강제하는 ‘행동'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측 또한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조건들. 무단협, 해고자, 가압류, 대체인력, 대량징계… 정말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끙끙 앓다가, 이것이 답인가 하다가도 또 번복하고 또 고민하는 쳇바퀴가 계속됐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전히 MBC보도국의 수뇌부들은 ‘색출’과 ‘제거’를 모의할 뿐 도무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영진 또한 보도국 수뇌부의 인식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방문진 또한 그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외유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170일 파업을 하고도 바꾸지 못한, 7명이 해고되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징계당하고 쫓겨나고도 바꾸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고백합니다.

이런 머리의 생각을 제 심장이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몸부림쳐야 하지 않냐고 외치고 있습니다. 행동하고 절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지만, 이미 가라앉았지만 그 배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우리가 다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저부터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의미없는, 부질없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몸짓일지라도 일단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제자리를 맴도는 수많은 고민들을 일단 제쳐놓고 일단 한 걸음을 내딛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몸부림조차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미약하지만, 다른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걸음 내디디면 보이지 않던 길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2014년 5월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장 이 성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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