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성 보호' 미명으로 자주적인 노조 숨통 끊은 서울행정법원

 서울행정법원이 오늘 대한민국의 시계바늘을 30년 전으로 돌렸다. 30년 전에 이미 폐지된 행정부의 ‘노조 해산권’을 되살려 행정부에 갖다 바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반정우 부장판사는 오늘 고용노동부가 해직교원을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게 내린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창립 뒤 25년 동안 6만 명 가까운 조합원을 가지고 활동해 온 전교조는 졸지에 법외노조가 되어 법 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심각한 역사적 퇴행에 직면하게 됐다. 행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엣가시 같은 노동조합을 사소한 것을 꼬투리 잡아 언제든 법적 지위를 박탈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노조 해산명령’에 관한 규정이 없다. 역대 군사정권이 정권에 비판적인 노동운동을 순치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해 온 ‘노조 해산명령’을 1987년 11월 국회가 여야 합의로 삭제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뒤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 조치가 취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듬해인 1988년 4월, 노태우 정부는 종래의 ‘노조 해산명령’과 동일한 내용을 노조법시행령에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이 규정은 처음부터 국회의 입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게 바로 현행 노동조합법시행령 제9조 제2항에 있는 ‘법외노조 통보’ 규정이다. 오늘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쫓아낸 것도 바로 이 조항이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오늘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군사독재 시절의 유물인 ‘노조 해산권’을 부활시켜 행정관청인 노동부에 ‘상납’했다. 대한민국 법원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1987년 이전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더 가당찮은 것은 서울행정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리게 된 근거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사용자 또는 그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노동조합의 본래 목적을 지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법원이 진정으로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다면 전교조의 자주성을 실제로 침해하고 위협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부터 분명히 했어야 옳다. 
   
20년이 넘도록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교조를 없애지 못해 안달한 쪽은 정부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전교조 출신 해직교원이 전교조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노동부가 이 같은 침해로부터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켜주기 위해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한 것은 정당하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법원의 오늘 판결은 결국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옹호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말살하는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서울행정법원의 석연찮은 오늘 판결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지방자치 선거에서 전교조와 비슷한 성향의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뒤, 부담을 느낀 정부가 어떻게든 전교조의 기를 꺾기 위해 재판부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는 믿기 어려운 분석까지 나온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울행정법원의 오늘 판결은 정부에 밉보인 노동조합은 언제든 법 밖으로 내쫒길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으며, 국민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값진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린 대표적 노동탄압 판례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막기는커녕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노릇을 자처한다면, ‘법이 침묵하고 주먹이 말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법부 자신을 위해서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교육희망 송원재 편집실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