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한 교수 “시복식 끝나면 농성장 즉시 원상복구하기로 합의됐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유가족들의 국회와 광화문 농성장이 강제 철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며 “가족들과 함께 하며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단식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날 국민라디오 ‘조상운의 뉴스바’와의 인터뷰에서 “여야의 야합에 의해 특별법이 왜곡된 형태로 통과돼서는 곤란하다”며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에 국민들과 유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일 답답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광장에서 집전하는 시복식에 대해 김 교수는 “광화문 광장 농성장 앞쪽에 장소를 지정해 유가족 600명을 공식 초청하는 것으로 최종합의가 됐다”며 “오늘 밤부터 텐트를 임시철거하고 16일 아침에 시복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고 전했다.

또 “시복식 미사가 끝나면 농성장을 즉시 현재 상태로 원상복구하도록 합의가 됐다”고 덧붙였다.

2014-08-15 국민라디오 ‘조상운의 뉴스바’ 팟캐스트로 듣기  

다음은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전문.

많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그리고 시민들이 세월호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식농성에 합류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이런 생각에서 일 겁니다. 이분들 중 몇몇은 이미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과의 대담, 그리고 캠페인 등을 펼치면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인 김익한 교수를 오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의 공동대표로도 활동 중입니다.

조상운 국민TV 사무국장(이하 조) : 김익한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이하 김) :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지는 못합니다.

조 : 지금 혹시 계시는 곳도 광화문 광장에 계신가요?

김 : 네. 현재 광화문 광장에 있습니다.

조 : 유족들하고 같이 계시니까 정말 안녕하지 못한 건 사실인 거 같고요. 단식 농성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며칠 째로 김 교수님은 접어든 거죠?

김 : 오늘이 5일째입니다. 월요일 날 저희 교수 연구자들이 20명이 모여가지고요. 간단한 기자회견을 하고 단식농성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조 : 이전에도 혹시 단식해보셨습니까?

김 : 대부분 교수들이 처음이었고요. 다행히 두 분 정도가 단식 경험이 있으셔서 건강도 좀 챙겨가면서 하려고 애는 쓰고 있습니다.

조 : 참다못해 이런 결정하신 거 같은데, 특별히 단식농성 내가 동참하겠다. 이렇게 결정하시게 된 계기는요?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기자회견에서 열고 교황이 세월호 가족들의 진실을 향한 염원에 함께 해주기를 촉구하고 있다. ⓒ 2014.8.13/뉴스1

김 : 우선 특별법 제정이 굉장히 당연한 요구인데요. 그런 것이 이제 지금 우리 언론이 말하자면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이 현재 정부에 장악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국민들에게 이제 특별법 제정과정을 호도하는 그런 경향들이 상당히 강했었고요. 거기에다가 박영선 의원이 여당과 내부의원들의 토론과정도 없이 합의를 해버린 바람에 국면이 아주 급진전이 돼버렸죠. 나쁜 방향으로요. 그래서 저희가 주말에 교수들이 좀 논의를 해서 혹시 13일 날 여야의 야합에 의해서 특별법이 왜곡된 형태로 통과가 돼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미 13일 날 특별법을 통과를 시킨 다음에 유가족들의 그.. 국회하고 광화문 농성장을 강제 철거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들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수들도 조기에 빨리 나서서 우리 국민여론도 좀 좋은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그런 생각이 있었고요. 일단은 가족들이 혹시라도 13일이나 또는 교황방한과 관련해서 15일 정도에 강제철거 당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저희는 1차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겠다. 이런 결심을 하고 저희가 단식에 들어오게 됐죠.

조 : 이 시각 현재 가족들하고 함께 하고 있는 분들 대략 몇 분 정도 됩니까?

김 : 지금 국민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돼서요. 416인의 동조단식을 지금 사흘째 계속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기 모여 계신 분들은 아침 시간인데도 대체로 한 200명이 조금 넘는 수가 지금 광화문에 있고요. 일반적으로 조금 시간이 10시 이정도 되면 뭐 이 안이 꽉 차지 않을까 싶어요. 어제 같은 경우에는 제가 대체로 보기에는 한 600여명 정도가 광화문 현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 : 특별히 그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유민양의 아버지시죠. 김영오씨. 오늘로 저희가 알기로는 33일째 단식 농성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곁에서 보고 계실 텐데,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좀 괜찮으신가요?

김 : 괜찮으실 수가 없죠. 여기 저도 광화문 농성장에 합류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요. 다른 거 보다 소음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월요일 날 첫날 단식을 하면서 단식보다도 그 소음에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33일간을 단식을 하면서 견뎠을까? 참 죄송스러운 마음이 점점 강해지는데요. 제가 옆에서 이렇게 보면 굉장히 의연하게 견디고 계신데, 아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의 지금 위기상황이실 겁니다. 저는 유민 아빠의 정말 순수한 마음을 우리 정권이 빨리 잘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저분을 우리가 보호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네요. 어쨌든 건강은 그렇게 썩 좋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또 교황 방한이 끝나는 18일 이후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의심을 하고 계세요. 전 그 의심이 당연하다고 보는데, 아마 저희가 옆에서 적극적으로 만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일 이후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 이런 의지를 밝히고 계십니다.

▲ 수사권·기소권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딸의 사진을 보고 있다. ⓒ 2014.8.12/뉴스1

조 : 그렇지 않아도 내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재하는 시복식이 열립니다. 특별히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 또 현재 단식중인 많은 시민들이 그곳에 머물고 계시는데, 경찰이 와서 어떤 얘기를 한다거나, 머무시는데 지장은 없는 그런 상황인가요?

김 : 어저께 참 다행스럽게요. 잘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정치권도 이렇게 잘 타협을 하면 참 좋겠는데요. 어떻게 됐냐하면 600명을 방준위죠. 가톨릭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서 이 광화문 농성장 앞쪽에 장소를 지정을 해서 공식 초청 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가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부터 여기 텐트를 임시 철거를 하고요. 그다음에 밤을 지샌 다음에 16일 아침에 가족들 600명이 시복미사에 함께 참여하는 걸로 이렇게 타협이 됐어요. 뭐 교황행사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돕는 그런 모양새가 됐고요. 가톨릭 입장에서도 우리 가족 농성장을 강제 철수하는 계기를 만드는 그런 불상사는 없어진 것이죠.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조 : 그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 600여분 정도 참여하고 나서 그러면 그 천막은 다시 설치를 하게 되는 겁니까? 시복식 끝나고 나면요?

김 : 그렇습니다. 시복식 미사가 끝나면 즉시 현재 상태로 원상복구를 하도록 이렇게 합의가 됐습니다.

조 : 그 부분은 좀 말씀하신대로 다행스럽게 결론이 난 거 같습니다.

김 : 네.

조 : 특별히 교황께서 오신 것과 관련해서 관련된 얘기, 농성장에서도 많이 오갈 것 같습니다. 김 교수님 포함해서 유가족들도 교황께 기대하는 바가 클 거 같은데, 어떤 기대나 희망들을 갖고 계십니까?

김 : 교황님께서 그동안 전 세계에서 보여준 정말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저희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황님께서 스스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많이 주시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고요. 저희가 해석을 한다면 조선후기, 한말에 불의에 항거해서 신앙을 지켰던 분들의 순교의 결과로 복자로 시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지금 세월호 참사라는 상황은 굉장히 구조적인 불의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이고, 현재 가족들이 그런 잘못된 구조를 해결하고 안전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그런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지금 스스로 나서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교황님의 인식은 지금 피해자 가족들의 이런 처절한 노력이 조선후기의 복자들과 같은 그런 노력이라고 전 인식을 하시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고요. 그런 발언과 좀 어떤 미래지향적인 그런 희망의 발언을 해주신다면 가족들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방한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한국주교단과의 만남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014.8.14/뉴스1

어쨌든 교황청이 한국정부를 향해서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에는 전 좀 어렵다고 보고요. 현재에 가족들의 이 처절한 노력에 대한 포괄적인 그런 평가가 교황님을 통해서 좀 이루어지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고, 우리 사회 전체, 그리고 세계의 어떤 인간중심의 사회나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조 : 세월호 특별법 관련해서 좀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최근에 한겨레신문 주최로 유가족들과 대담도 하셨고요. 또 그쪽에 계시면서 개별적으로도 많은 얘기를 나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법 문제와 관련해서 유가족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 뭐 수사권, 기소권 아니겠나 라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유족들은 어떤 얘기 하고 계십니까?

김 : 내용적으로 제일 답답한 것은 지금 말씀하신 대두인데요. 그것보다 더 지금 중요한 것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이제 국회인데, 국회가 대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서 입법 활동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요. 지금 국회가 소통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박영선 의원이 예를 들어서 국조특위의 의원들이랄지, 또는 민주당의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과 한 마디 상의 없이 여당과 타협을 해버리는 이런 상황이 아주 상징적으로 얘기해 주고 있는데요. 특별법 제정과정에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또 직접적으로는 유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일 답답해하고 있어요. 저는 초기에 여야 그리고 가족 내지는 가족 대리인이 3자 테이블을 만들어서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가족들이 강력하게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에서 그걸 거부함으로써 이 일이 진행이 안 됐어요. 이 부분이 결국은 현재 파국을 만들어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국회가 소통을 하지 않는 거에 대해서 제일 답답해하고요. 그 소통만 된다면 지금 국민여론, 우리 여론 조사한 바도 있습니다만 특히 수사권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국민, 50%이상의 국민들이 찬성을 하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이런 부분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대로 국민여론, 그리고 유가족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소통의 체계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특별법 문제를 앞으로 지혜롭게 풀어가야 된다고 저희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 : 정부와 유가족들 사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워낙 새누리당도 지금 유가족들과는 말씀하신대로 소통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최근에 청와대로 향하는 유족들을 경찰이 거의 뭐 진압하다시피 해가지고 부상자까지 발생한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세월호 사고 초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장면인데, 이게 시일이 지나면서 유족들 역시 그냥 일반 시위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보시기에.

김 : 뭐 우선 한 가지 생각할 일은요. 유가족들이 지금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사실은 저는 세월호 피해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저도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로서요. 지금 아이를 어떻게 배를 태웁니까?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봤을 때 아이를 군대도 못 보낼 그런 나라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우리 모두의 문제를 유가족들이 대표 주자로 나서서 지금 싸움을 해주고 있는 상태인데요. 그분들에 대한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최소한의 예의를 저는 꼭 지켰으면 하는데, 지금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할 때 하고 국회에서 정말 입에 담기 어렵습니다만 그것도 엄마들이에요. 엄마들에 대해서 공권력이 폭행을 가한다는 거는 이거는 저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정도 민주주의 사회가 된 상태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이런 지점은 앞으로 문제해결하기 위해서 해당 폭력을 가한 경찰과 그 경찰이 속한 경찰서장에 대한 좀 명확한 문책 같은 것이 있어서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경찰이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여야 하는데, 이런 좀 참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조치가 전 당장 필요하다고 보고요. 정부는 그런 점에서 좀 각성하셔야 돼요. 왜냐하면 이분들이 그냥 개인으로서 일상 상태에서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에요. 지금 세달 동안 옆에서 보시면 쉽게 알 수 있는데, 거의 매일 단식 농성하듯이 살고 계세요. 잡수시지 못하고요, 잠 제대로 못자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상태인데, 그 처참한 상황에 계신 분들을 폭행을 한다는 것은 저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드시 공식적인 사과와 폭행을 가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조 :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특별히 김 교수님 기록학전문가로서 세월호 기억 저장소 건립 활동 지금 주도하고 계신 것으로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이게 어떤 활동이고 현재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도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많은, 일반 국민들이 좀 참여를 하고 싶어 할 텐데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좀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네트워크 홈페이지 화면캡처(http://sa416.org)

김 : 고맙습니다. 저희 활동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셔서. 그런데 이게요. 세월호 참사는 간단히 말씀드리면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에 우리사회가 굉장히 큰 변화를 겪었듯이요. 저는 이 4.16 참사 이후가 우리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기록을 국민 모두의 힘을 합쳐서 수집하고, 이 기록들을 우리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가야할 사회를 구상하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그런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 날은 좀 내려가지 못했고요. 5월 초에 진도에 내려가서 기록 수집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국민대책위나 가족대책위의 활동들과 관련된 기록도 수집을 하고 있고요. 그 이외에도 국민 모두가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슬퍼하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글도 쓰시고 편지도 쓰시고 사진도 찍고 계시고요.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계셔서 그 모든 기록을 저희가 모아가지고 안산시에 단원고 옆에 고잔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 동네에다가 세월호 기록저장소를 1호관, 2호관 2개를 지금 조성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다 기록을 다 모아놓고 앞으로 10여년간 가족들과 함께 그 기록을 같이 공유하고 이야기도 하고 또 찾아오시는 국민들과 기록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세상에 바랄 수 있는 뭐 그런 활동을 저희가 하려고 하고 있고요.

기록을 갖고 계신, 그러니까 일기라든지, 뭐 쓰신 글이라든지, 사진 기타 등등 다 좋은데, 아이들이 쓴 그림일기, 이런 것들을 저희 세월호 기억저장소에 좀 기증을 해주시면 미래사회를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도움이 되리라고 보고요. 방법은 인터넷에 들어가셔서 sa416.org를 치시면 거기에 온라인으로 기억저장도 하실 수 있고요. 홈페이지를 통해서 여러 형태로 자원봉사로 참여하실 수도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좀 적극적으로 사이트를 방문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 : 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김 : 네. 감사합니다.

조 : 현재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농성 중인 명지대 김익한 교수와의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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