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하청의 재하청·한달짜리 도급계약 일삼다 해고...하청노동자 산재사망 방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빙그레가 자회사와 하청의 재하청, 심지어 한 달짜리 도급계약을 강요하며 노동자를 피를 말리고 그것도 모자라 끝내 해고까지 자행하는 노동탄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재연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KNL물류지부장과 정찬무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이 민주노총과 국민라디오가 함께 만드는 팟캐스트 <노동과세계>에 출연해 전한 내용을 정리했다. 기업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일삼는 온갖 불법과 폭력, 오만의 실상을 고발한다. <편집자주>


▲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KNL물류지부 이재연 지부장. ⓒ 변백선 기자
이재연 지부장은 1988년 빙그레에 입사해 25년 가까이 몸담으며 빙그레 제품 물류운송을 담당해왔다. 빙그레는 그를 처음에는 자회사로 보내고, 하청의 재하청을 강요하고, 한 달짜리 도급계약을 체결하며 피를 말리다 결국 해고를 단행했다. 회사를 믿고 성실하게 일한 이 노동자에게 회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신과 거짓, 기만으로 일관했다.

“98년 IMF 때 물류부문을 아웃소싱하는 과정에서 1차 피해를 입게 됐어요. 빙그레가 대기업이니까 KNL물류로 가도 똑같이 정규직으로 해준다고 했죠. 말 그대로 똑같이 해주겠다고, 똑같은 조건에 같은 밥 먹고 같은 화장실 쓰고 같은 통근버스 타고 다니는데 뭐가 다르냐고 아무 걱정 말고 믿으라고 했어요.”

KNL물류로 가서 3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개인사업주, 즉 소사장제라는 편법을 강요했다. 이 지부장은 회사를 믿었고 회사가 하자는대로 개인사업주가 됐다. “빙그레 입사동기와 연봉이 2,000만원 차이가 나요. 그걸 감수하며 우리도 빙그레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근무했어요. 그런데 작년 11월에 도급사 전환을 시킨다는 거에요. 하청의 재하청은 절대 할 수 없어요. 두 번까지는 속았는데 세 번째 속으라고 합니다.”

도급을 받아들이고 물러설 것인지 심사숙고하며 노동자들은 수차례 토론을 했다. 깡통을 차는 한이 있어도 한 번은 후회 없이 살자고, 불의에 맞서자고 했다. 이재연 지부장을 비롯한 7명의 노동자가 의기투합해 민주노총 문을 두드렸고 노동조합을 설립해 8개월 여 동안 KNL물류와 빙그레를 상대로 투쟁을 잇고 있다.

노동자를 고용해 부려먹다 하청의 재하청 비정규직으로 전락시켜 생존권을 빼앗은 빙그레. 정찬무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은 2월 15일 빙그레 본사인 남양주공장에서 일어난 암모니아가스 폭발사고 당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어떤 과정에서 산재사망에 이르렀는지를 전한다.

“암모니아가스는 식품을 냉장냉동할 때 사용하는 냉매용재에요. 가스가 누출되는 걸 확인한 후 빙그레 생산직과 관리직 정규직 노동자들, KNL물류 노동자들에게 대피지시가 내려갔고 대피를 했어요. 한 노동자의 증언에 의하면 KNL에 재하청이 돼 있는 분이 출고작업지시를 받고 들어갔다고 해요. 가스 누출을 알았다면 들어갔을 리가 없겠죠. 대피 지시를 못 받고 현장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겁니다.”

“백번 양보해서 정규직노동자와 하청노동자 간에 임금의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그 목숨값에 차이를 둔 거잖아요. 빙그레가 돌아가신 분의 목숨값으로 2억7천만원을 변상했어요. 정확히 따지면 하청의 하청사인 페이퍼슨 소속직원이기 때문에 거기서 산재사망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맞을 텐데 빙그레가 지급한 걸로 확인됩니다.”

▲ 공항항만운송본부 정찬무 조직국장. ⓒ 변백선 기자
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는 이재연 지부장과 똑같은 일을 하고 근속이 3~4년 더 길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 “우리 조합원들이 그걸 보면서 ‘내 목숨 하나 지킬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은 진짜 안된다’고 했어요. 그러자 한 달 만에 도급계약 만료에 의한 해고를 회사가 통보했어요.”

노동자의 목숨을 이렇듯 하찮게 여기는 빙그레는 어떤 회사인가. 정찬무 조직국장은 빙그레 김호연 회장이 자식들에게 부를 세습하기 위해 어떻게 기업을 운용하는지를 설명한다.

“빙그레 자회사인 KNL물류 지분을 김호연 씨 세 아들딸이 나눠 갖고 있어요. 몇 해 전 부의 되물림이 문제가 돼서 언론지상에도 보도된 적도 있어요. 자회사를 운영하면서 대기업의 종업원 수를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소사장제로 만들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동자를 배신한 겁니다. 그게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계기가 됐구요.”

KNL물류가 재하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0개가 넘는 현장 중 광주공장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문을 두드렸다. 회사는 지난해 말로 소사장제를 중단한다며 12월부터 2월까지 한 달짜리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3월 25일 도급계약 만료에 의한 해고를 통보했고 급기야 폭행사건까지 저질렀다.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회사에 들어가다 몸싸움을 했어요. 처음 보는 덩치 큰 직원이 우리를 밀어서 계단에서 굴러 머리가 깨지고 타박상에 허리까지 삐끗해 2주 동안 입원했어요. 그래도 KNL물류는 사과 한 마디 없고, 오히려 자기네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어요.”

KNL물류가 자행한 한 달짜리 도급계약. “이게 피 말리는 고용불안이에요. 계약을 하고 15일 정도 잊고 일을 하다가 15일이 지나면 다음달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싶어 안절부절 못해요. 그걸 계속 반복하는 거에요.”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조는 원청인 KNL물류와 명목상의 하도급업체인 이천물류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25년을 부려먹은 원청은 철저히 외면하며 딴청을 부렸고, 하도급업체는 고용문제가 자기들 권한이 아니라며 교섭을 해태했다.

▲ ⓒ 변백선 기자
파업권이 절실했던 노동조합이 지노위에 쟁의조정을 해달라고 요구하자 노동위원회는 교섭대상도 아니고 교섭내용이 부실하니 다시 교섭하라고 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고용노동부는 결국 KNL물류가 실제 사장이고 불법파견은 더 다룰 필요가 없고 도급계약 만료에 의한 해고는 무효이니 원직복직시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해고된 지 넉 달 만에 승소 판결을 움켜쥔 노조가 회사에 공문을 보내 사태를 해결하자고 요구했다. 노동조합법상 노사관계가 성립됐으니 KNL물류는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복직시켜야 마땅한 상황을 합법적으로 만들었지만 사측은 지금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회사가 보내온 공문을 보니 노동부가 불법적 권한을 남용했고 법 해석의 오해를 불러왔다고, 그 판결이 불법적 판단임을 귀 노조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했어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불법을 했다고 말하는 회사를 보면서 법 위에 돈이 있구나 싶었죠.”

KNL물류지부는 매주 월수금은 빙그레 본사 앞에서, 화목은 KNL물류 본사 앞에서 집회투쟁을 진행하며 사측의 비윤리적 경영과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김호연 회장 집 앞에서도 3개월 간 아침저녁으로 집회를 했다. 공항항만운송본부는 오는 9월 26일 빙그레 서울본사 앞에 집결해 힘찬 투쟁으로 다시 사측에 경고장을 날린다. 또 KNL물류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화주들에게도 달려가 노동부 판결조차 이행치 않는 부도덕한 기업, 노동자의 울분을 실어 나르는 KNL물류와 함께 일할 것인지를 엄중히 묻는다.


※ 민주노총과 국민라디오가 함께 만드는 팟캐스트 <노동과세계>에서 이 인터뷰 전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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