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점거하라

남미국가 대부분이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반해 브라질은 유일하게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또 많은 나라가 식민지 해방투쟁을 통해 독립한 데 반해 브라질만은 평화롭게 독립을 했다. 독립을 요구하자 포르투갈 국왕은 이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본국으로 철수했다. 공식적으론 유혈혁명이 한 번도 없었던 나라다. 이런 상황은 지난 500여년의 역사 속에서 토지혁명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이어졌다. 경작이 가능한 토지의 56.7%를 2.8% 이하의 지주들만 소유하고 있다. 한 사람의 지주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벨기에 땅을 합친 것 만한 땅을 소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지가 없는 농민들의 토지 점거 운동”인 MST(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lis Sem Terra)는 이런 조건에서 1984년 만들어 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자신의 땅을 무단으로 점거당한 지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중화기로 무장한 사설 경비용역들을 동원했다. 1985년부터 99년까지 1,158명의 농촌에서 활동가들이 암살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PT) 룰라 대통령의 집권이전 까르도주 집권 초기 4년 동안만 163명이 사살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6년 4월의 까라자스 학살사건으로 19명이 사살되고, 69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금도 MST는 매년 4월이면 ‘붉은 4월’ 시위를 한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MST, PT(브라질노동자당), CUT(브라질노총)

▲ MST 시위 장면.
“우리는 국유지건 사유지건 가리지 않고 점거한다. 획일적인 토지분배 방법은 없고, 가족단위나 집단 단위로 하는 등 다양하다. 점거 이후 주로 주 정부에서 사들이거나 해서 점거단위에 70%~100% 무상으로 분배한다. 우리는 점거이후 분배과정에서도 계속 투쟁한다.”라는 설명처럼 MST 운동으로 현재 브라질 25개 전역에서 약 50만 가구가 토지소유를 받았고, 10만 가구는 지금 현재도 토지를 점거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한 가구당 약 3명 정도로 보면 약 160만명에 해당하는 농민들이 MST에 속해 있는 셈이다. 토지를 점령하게 되면 정착촌을 구성하게 되고, 대략 2500명에서 4500명 정도가 한 단위가 된다고 한다.

MST 조직은 상당히 민주적으로 구성되는 게 특징이다. 투쟁과 조직, 재정 등을 담당하는 10개 부문을 대표하는 대표를 남성과 여성 한명씩으로 20명을 뽑는다. 즉 한 정착촌 마다 20명의 대표가 있는 셈이고, 이런 정착촌이 5개를 이룬 100명이 하나의 주를 이끄는 지도부가 된다. 그리고 다시 각 주의 100명 중에서 2명을 전국위원회에 파견한다. 이렇게 하여 브라질 전역에 80명의 전국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고 그 중 2명의 남여 각각이 대표역할을 한다. 현재 브라질 17개 주, 27개 행정구역 중에서 25개 행정지역에 지역본부가 있다. MST는 단지 토지를 점거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이 곳에서 자본주의를 넘는 바람직한 사회관계의 형성을 꾀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조직한다. MST가 점거한 토지는 모두 협동조합 식으로 운영하여 생산과 생활의 공동체를 이룬다. 전국에 500여개의 농업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이유다. MST는 애초 농민들의 조직에서 출발했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농촌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도시지역의 대중운동, 정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 MST에 대한 설명을 해 준 폴레레스땅 뻬르난지수 학교 교사인 이지스 깜뿌스.
“토지소유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그들이 생산하는 생산물은 주로 대도시의 시민들이 소비하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늘 도시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사회운동, 정당, 노동운동과 연대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과 싸우면서 대안운동인 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농업노동자들의 경우는 브라질 노총에 가입한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브라질노총, 브라질노동자당, MST는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전략적 동맹관계로 아주 많이 지원한다.”는 것이 설명을 해 준 이지스 깜뿌스의 말이다. 

그러나 MST는 독립적인 사회운동단체로 다양한 좌파정당과 관계를 맺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을 만들 때 많은 관계를 맺었고, 활동가중에도 당원이 있지만 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룰라 대통령 시절에는 약속했던 만큼 토지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도 많았고, 대규모 시위도 전개했다. “신자유주의 15년, 계급타협 정부(PT)의 지난 10년은 정치를 자본의 인질로 전화시켰다.”라는 MST 지도자의 비판도 있었다.

“룰라는 토지개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MST는 많은 비판을 했다. 반면 빈민에 대한 지원을 많이 했고, 점거한 땅에 대한 지원을 위한 법제화등도 있었다. 비록 12년 동안 토지개혁 등의 일은 없어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지우마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결선투표에서만 지우마 지지를 공식화했다. 이번 선거에서 2명의 MST 출신이 연방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당이 MST안에 조직적 기반을 만드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건물을 점거하라

▲ 점거 중인 건물
2009년 벌어진 용산 참사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상파울로 시에서는 조직적인 건물 점거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토지점거운동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것이 하나의 운동이라는 점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들 모두는 연방헌법에서 “모든 땅과 건물, 주택은 사회적인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항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 소유라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건물, 토지, 주택 등의 점거가 연방 헌법에 의해 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반면 사유재산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런 모순을 이용한 것이 점거방식의 운동이다. 연수단은 이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인 MMC(Movimento de Moradia Da Cidade de SaoPaulo, 빈집 점거운동단체)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었다.

▲ MMC 지도자, 제제
설명을 해 준 현재 65세인 제제는 14살부터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MST운동을 하기도 했다. 두 번에 걸쳐 구속되기도 했던 그는 브라질 노동자당과 브라질 노총 건설에도 참여한 베테랑 활동가다. “노동운동을 했지만 노동운동이 만족할 만큼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새로운 세상, 좋은 환경, 좋은 주택 등을 가지려면 노동운동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나는 혁명주의자다.”라는 제제는 현재도 브라질 노동자당의 전국위원이다.

현재 브라질에는 아무데도 기거할 집이 없는 무주택가구가 680만에 이른다. 상파울로에만 160만 가구가 무주택이다. 그래서 빈 건물에 대한 점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상파울로에서만 현재 40개의 건물을 점거 중이다. 일단 빈 건물을 점거한 후에 정부에게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t식이다. 당연히 용산사태와 같은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부분 개인소유라 건물주는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여 탄압한다. 주 정부가 소유한 건물은 모두 법적 소송 중이라 한다. 그나마 브라질 노동자당이 집권하고 있는 시정부의 경우는 다른 지역에 공공주택을 지어 이주하게 한다든지, 점거 중인 건물을 시 정부가 구입하고  리모델링하는 동안 호텔 등 다른 공간에 머물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쓴다고 했다. 또 무상주택을 짓고, 저리의 은행융자를 해주거나 정부가 국영은행을 만들어 크레디트카드를 발급해 주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시내의 700여개 건물의 지하가 비어있어 이를 가난한 사람들이 활용해 가게를 운영할 수 잇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브라질 노동자당이 집권한 지난 12년 동안 350만개의 주택을 건설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재정문제다. 우파들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된 지난 1995년부터 빈집 점거운동이 시작되어 2000년까지가 절정이었다. 그 이후 잠잠했다가 2012년부터 다시 점거가 늘어났다. 우파가 집권한 상파울로 주 정부가 임대주택을 지은다고 지었는데 1,000개도 안 지었다. 그래서 열 받아서 다시 점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조직이 없었으면 룰라도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민중조직이 필요하다. 당 조직과 사회운동이 수평적으로 발전이 되어야 변화가 가능하다. 여러 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이 룰라 정부에 참여했지만 난 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가 브라질 노동자당 정부를 비판하고 싸우는 것은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우파가 집권하면 모든 게 후퇴할 것이다. 그들은 부르조아와 손잡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당의 지우마를 지지한다.” 라고 노혁명가인 제제는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연수단에게 해 줄 말이 없냐는 질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에 대해서는 두 나라로 나뉘어 있다는 것밖에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민중이 쪼개질수록 자본가들은 지배하기 쉬울 것이고, 민중들이 뭉치면 뭉칠수록 자본가들의 지배는 어려울 것이다. 난 브라질 민중들을 뭉치게 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그런 활동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남과 북이 하나로 되기를 기원한다.”

연수단이 제일 부러워 한 MST가 운영하는 학교

연수 마지막에 찾은 곳은 MST가 운영하는 “폴레레스땅 뻬르난지수” 학교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라 했다. 베네주엘라, 칠레, 멕시코 등 남미 전역에서 온 학생들이 매우 많았다. 그동안 9,700여명이 졸업을 했고, 4만명 이상이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넓은 부지에, <로자 룩셈부르크> <체 게바라> 등 혁명가들의 이름을 딴 교실이 곳곳에 있었다. 곳곳에 혁명가들 의 사진들을 두고, 그들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급여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를 하는 교사만도 100여명이라 하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건물 점거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제도 여기에서 교사활동을 했다고 했다. 

“한 건축가와 계약해서 학교를 지었으면 금방 지었겠지만 여기는 수많은 활동가와 다양한 사람들이 틈틈이 결합해서 4년 6개월이 걸려 학교를 지었다.”라는 말에서 이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짓고 있는 한 건물도 상파울로 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짓고 있었다.
 
이 학교는 4가지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브라질 동지들을 위한 교육과정, 농민들 중 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정. 사회운동가 과정, 땅 없는 농민 노동자들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 등이다.

▲ 상파울로대 건축과 학생들이 짓는 건물.
“MST가 건물을 만들자고 먼저 주장했지만 브라질의  다양한 동지들과 전 세계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학교는 MST 만의 학교가 아니라 모두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브라질, 라틴 아메리카 등 전 세계 민중들을 대상으로 각종 사회운동, 정치활동 강화를 위한 교과과정을 만들어 왔고 교육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재 40명의 활동가들이 상주하면서 시설유지, 학교운영, 교사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를 통과한 모든 학생들은 공부도 하고, 투쟁에도 참여하고,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가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는 완전무상교육이다. 운영비용 등은 많은 사회운동 단체와 정당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전 세계 동지들로 받는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점거한 땅에서  생산한 여러 생산물들을 직접 보내주기도 하고, 학교 내 시설에서 각종 야채와 가축들을 직접 길러 거기서 얻는 수익 등으로 운영비용을 마련하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학교의 목표는 노동계급의 비판의식을 키우는 게 주요한 목표다. 그것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다.”라는 설명처럼 무상으로 남미 전역의 젊은 활동가들이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각 사회운동 조직에서 파견 혹은 추천을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민주노총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해외연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연수단은 마지막 방문지인 이 학교를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았다. 민주노총은 물론 사회운동단체 중 제대로 된 연수원을 가진 곳은 아무데도 없다. 민주노동당 남원 연수원이 있긴 했으나 이미 사라졌고, 관세무역개발원노조 운영하는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경연수원이 고작이다. 금속노조가 대단위 연수원을 짓기로 했으니 지켜 볼 일이지만 이들처럼 긴 안목을 가지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전체가 함께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활동가들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연수원이 많이 부러웠다. 상파울로 외곽 빈민지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이지스 깜뿌스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남편과 4살 된 딸과 여기서 함께 살고 있다. 좋은 환경에서 항상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풍부한 지식을 접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도 그런 행복을 만들고 싶다. (끝)

▲ 학교에서 연수단.

☞ 팟캐스트로 듣기

<민주노총 아르헨티나, 브라질 정치연수단 종합 평가와 과제>
: 2014년 11월 20일 14차 중집 보고 내용

연수단이 느낀 평가를 핵심주제(Key-word) 중심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음.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잃어버린 과거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브라질에서는 아직 우리에게는 오지 않은 미래를 볼 수 있었음. 그들의 고민을 볼 수 있었고, 이는 이후 민주노총 정치사업에 주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임. 

1. 독립성

- 아르헨티나 CTA와 브라질 CUT 등 두 나라의 총연맹은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있었음. 이와 관련하여 연수단이 만난 모든 간부들이 일관되게 강조한 말은 “독립성”이었음.
- 민주노총은 2000년 민주노동당을 만들면서 소위 ‘배타적 지지방침’을 견지함. 구체적인 내용은 민주노총 조합원이 출마할 경우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음. 그러나 민주노총의 [제2기 노동자정치세력화 길 찾기 연속토론회]에서 아래와 같은 지적이 있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음.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이 민주노동당 전체 당원 수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는 했지만 조합원 수에 비해 보면 5% 수준을 넘지 못함. 민주노동당이 분당에 이르는 2008년까지 조합원 대비 당원 수는 한번도 5%를 넘지 못함. 즉 조합원 대중까지 조직하지 못하고 노조간부, 활동가 층의 조직적 결의에 의한 강제가 강했음을 보여 주고 있음.”
“민노당의 주된 조직 기반으로 이야기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민노당 지지 비율을 보면, 99년 제조업 가운데 지지율은 31%, 지지정당 없음이 52%를, 2001년에는 각각 33%와 43%, 2003년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보면, 지지가 49%, 지지정당 없음이 51%였음. 물론 2004년 이후 등락이 존재했겠지만, 무당파 조합원이 40~50% 사이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비민주노총 노동자층의 민노당 지지비율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음. 이는 2008년 대선에서 계급투표 양상에서도 드러남. “8010”사업(80만 조합원 1인당 10인 지지자 확보)을 내세웠지만, 민노총 대표적 사업장이 존재하는 울산의 지지율은 8%, 같은 해 10월 서울 남동지구 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35%만이 민노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함. 이런 제반 상황은 민노총 중앙의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실제 조합원들에게 큰 설득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음을 드러냄.”

- 노조가 진보정당을 주도적으로 만들거나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배타적으로 지지하지는 않고, 노조와 정당 간에 상호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내적으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두 나라의 경우는 체계적으로, 깊은 연구가 후속조치로 진행되어야 할 것임.
- 한편, ‘독립적’이라 하지만 노조출신이 시장 등 공직에 출마하고 다시 노동운동으로 복귀하는 데 대한 제한이 없는 부분은 이후 우리 운동에서도 참고할 수 있을 것임. 이를 통한 인적으로 내적연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측면도 있음. 다만 위원장 등 높은 지위가 아니라 현장 속에서 다시 운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관행에 대한 참고가 있어야 할 것임. 공직활동에서의 경험을 노동운동에 다시 접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고, 개인적인 지위 변화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담보하는 활동으로서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시사점이 있었음.
- 두 나라 모두 노동운동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핵심임. 총연맹이 운동의 정점에서 정당 등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음. 연수단은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진행하면서 진보정당운동이 성장과 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중심이 되는 가치를 놓쳐 버린 게 아니었던가?’ 라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음. 결국 반복하여 세계노동운동사가 보여 주듯이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은 조직의 성격상 서로 차이가 있으므로 상호 독립적이어야 함. 그러나 노동운동이 힘을 가지고 중심으로 제대로 유지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성장과 발전에도 유의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두 나라의 경우를 보면서 확실히 알게 됨.

2. 기억

-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공히 군사독재정권을 거치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았음. 우리보다 긴 민중운동의 역사와 살해·납치·고문 등 가혹한 탄압이 있었음. 아르헨티나의 경우 3만명에 달하는 노동운동가, 학생, 시민들이 학살되기도 했음.
-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사무실이 있는 장소에 각종 조형물, 사망자외 실종자를 기리는 현판 등을 통해 끊임없이 앞서 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음. 먼저 쓰러져 간 동지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들의 태도는 열사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했음. 이를 보면서 민주노총도 건물 입구나 사무실 등에 먼저 간 동지들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음.
- 이러한 기억의 일상화를 통해 항상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넘어 현재에 열정적으로 투쟁하고, 미래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며 나가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음. 직선제를 둘러싼 조직의 분열(아르헨티나 CTA의 경우)과 노동자당의 집권 후 나타나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로 인한 혼란(브라질 PT와 CUT의 경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기차게 운동할 수 있는 토대인 것 같아 배울 점이 많았음.

3. 자부심과 포용력

-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하는 노조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라는 활동가들의 반복되는 대답과 “나는 노동운동을 사랑한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할 것이다.”라는 환갑이 넘은 지도급 인사들의 표현은 우리 운동이 처한 척박한 태도 등에 비교하여 깊은 감동을 연수단에게 주었음. 또한 선배가 존중되고, 후배를 존중하는 태도 등 운동하는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은 연수였음.
-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매우 높았음. 연수단은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그러했는가라는 반성을 많이 함. ‘우리의 후배들이 즐겁고 자부심을 갖고 어떻게 활동하게 할 것인가?’ 라는 점을 이들의 활동을 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됨.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밑바탕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여유와 큰 품을 확인하는 연수였음. 이는 특히 작은 차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문화, 수용하고 인정하기 보다는 배제하는 풍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하려는 배려와 애정부족, 소위 정파간 대립의 극심함 등에 비춰 많은 반성을 연수단에게 줌.

4. 연대

- 노동운동이 사회전체를 포괄하고 있었음. 아르헨티나의 경우 사회운동단체가 노동운동 안으로 들어와 있어 자연히 운동이 확대되어 있었고, 브라질의 경우도 노동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운동 전 영역을 책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음. 이를 통해 현재 남미 전체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선을 치고 있었음. 이는 정당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에 있어 일관된 태도였음.
- 노동운동을 전통적 노사관계라는 틀 속에 가두는 게 아니라 노동의 확장, 이를 통한 시민사회 운동 전체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그 자체가 ‘진정한 정치’로 보일 정도로 확장된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음. 노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전 영역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고 민주노총의 활동에 대해 돌아보게 됨. 고립되고, 협소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 아니라 운동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함.
- 특히 이들은 자국의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개념으로서 남미 전체, 나아가 전 세계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진행하고 있음이 인상적이었음. 우리 역시 국내적으로 모든 민중세력을 포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노동운동세력이라도 모으려는 전망과 비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자성이 있었음.

5. 열정

-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노조간부, 당 간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만나면서 이들 모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의 열정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음. 활동가들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라는 점은 매번 느낄 수 있었음.
- 연수단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어느새 열정과 신념 없이 그냥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을 많이 함. 특히 우리보다 훨씬 길고, 어려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진 두 나라의 경우지만 지치지 않고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30여년에 불과한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벌써 지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성이 생김.
- 특히 공직에 출마하여 시장 혹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의 고향은 노동운동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상에는 어디에 있든 변함이 없다.”라는 등 일관된 태도는 우리와 비교하여 귀감이 되는 측면이 많았음. 우리의 경우 위원장 등 간부를 그만 두면 노동운동에서 벗어나거나 개인적인 활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어느 자리에 있든 상관없이 지속적인 열정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토대(진보정당, 지역운동, 다양한 민중운동 등)가 있다는 점은 노동운동의 지평이 더 넓어지고, 풍부해져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음.

6. 전략

- 연수단은 연수기간 내내 두 나라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반문할 정도로 일관된 운동이 진행 중임을 볼 수 있었음.
- 브라질의 경우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을 통해 16년 집권을 이어가게 됨. 아르헨티나의 경우 직선제 이후 총연맹이 2개로 분리되는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견지하고, 인민연합당(Unidad Popular)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정치적 구심체를 형성하고 있었음.
- 이는 단지 정치운동을 통한 영역확대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각종 민중운동과 결합하고(브라질의 경우 토지점거운동단체(MST), 건물 점거운동 등과의 결합, 아르헨티나의 경우 활동가 단체의 노동조합가입 허용 등),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전략임. 특히 MST가 운영하는 연수원의 경우 민주노총 차원에서 많은 시사점을 받을 수 있을 것임. 단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 하나의 운동이 되도록 하는 전략적 발상이 필요함.
- 전략적 사고는 개인은 물론 조직차원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는 거꾸로 개인의 활동이 조직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있음. 공직을 맡든 안 맡든 새로운 사회를 열어나가자는 데 대한 일체감이 형성되어 있고, 이는 우리에게 “노동운동이 왜 권력을 잡으려 하는가? 그 권력은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민중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는 과정은 무엇인가?” 등등의 과제를 던졌고, 연수단은 가슴이 먹먹해 짐을 수시로 느낌. 이를 통해 노동조합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됨.

<결론>

-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짧은 시간에 본다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음. 다만 해외연수를 통해 우리 운동을 돌아보고, 그들의 장점을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매우 유의미 할 것임.
- 이번 정치위원회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연수는 이런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연수단은 평가하고 있음. 다만 이것이 이후 민주노총 정치사업은 물론 각종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지는 과제로 설정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져야 할 것임.
- 연수단은 지속적인 교류가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함. 두 나라 노동운동가를 초청하고, 다시 연수단을 파견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이후 전략적 교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함. 이를 통해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진보적인 노동운동의 폭을 넓히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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