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전경련이 통계청 통계수치를 인용, 사실왜곡을 벌여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의장 박대규, 전국건설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이하 '전비연')가 전경련이 발표한 비정규직보고서에 대해 '전경련은 통계로 장난치지 말라'고 정면 반박했다.

지난 3일과 4일에 걸쳐 일부 언론이 보도한 비정규 관련 내용에 따르면 “전경련은 통계청 조사를 인용해 비정규직 중 51.5%가 자발적으로 선택했으며, 이 가운데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은 80.5%가 '자발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보다 낮지만, 중소기업 정규직에 비해선 1.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는 것.

이에 대해 전비연은 "위 기사를 보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라며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발적 선택’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51.5%)니,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것이냐"며 되묻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전경련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전비연은 이어 "전경련이 인용한 통계청 조사는 지난해 8월에 내놓은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근로형태별 부가조사표’의 51번 질문 항목에 대한 결과(▶아래 상자기사 '자료 1' 참조)"라며 설명하고 "해당 질문 항목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는가’ 하는 내용이 아니라 ‘현재의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는가’ 하는 것으로써,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발적 비정규직”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시작]
<b>■[자료 1] 전경련이 인용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b>

51. 지난주의 일자리 형태로 일하게 된 것이 자발적인 사유에 의한 것입니까? 아니면 비자발적인 사유에 의한 것 입니까?

1. 자발적인 사유
2. 비자발적인 사유

51-1. 위 문항(51번)에서 답한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근로조건(근로시간, 임금 등)에 만족하여
2. 안정적인 일자리이기 때문에
3. 생활비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
4. 원하는 분야의 일자리가 없어서
5.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
6. 경력을 쌓아 다음 직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7. 육아· 가사 등을 병행하기 위하여
8. 학업· 학원수강·직업훈련·취업준비 등을 병행하기 위하여
9. 노력한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10. 근무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11. 기타( )
[표끝]
즉, 현재 금융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기간제 고용형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는가"라기보다 "금융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는가"로 질문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도 현재의 일자리에 대해 ‘비자발적 선택’이라 답변한 비율이 무려 22.4%에 이르게 됐고, 또한 육아·학업 등을 병행하기 위해 실제 자발적 선택이 있을법한 고용형태인 ‘시간제(파트타임)’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발적 선택’이라 답변한 비율이 오히려 비정규직 전체 평균보다 낮은 47.1% 수준이 된 것.

전비연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자발적 비정규직’ 규모를 정확히 조사하려면 질문 내용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며 전경련 행태를 거듭 성토하고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선택했는가” 혹은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있다면 고용형태를 바꿀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 내용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경련은 마치 300인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매우 높은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 또한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잘못된 분석과 통계수치를 이용하여 엄청나게 부풀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사실 자체를 완전히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전비연은 "제조업 대공장 사내하청을 비롯한 용역·도급·하청 등 간접고용, 그리고 대형 보험사의 보험모집인을 비롯한 특수고용은 정부 통계상 300인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아예 ‘비정규직 범주’ 자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직 대기업과 ‘직접고용’ 관계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포함될 뿐인데, 그래서 그 규모가 불과 36만여명으로 노동계가 주장하는 전체 비정규직(871만)의 4.2%, 정부가 주장하는 전체 비정규직(545만)의 6.7%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전비연 지적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비정규직 규모의 차이가 주로 발생하는 200만에 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의 경우, 정부 통계로는 모조리 중소기업의 정규직으로 분류돼 잇다. 따라서 "엄격하게 좁혀놓은 대기업 비정규직과 상당수 비정규직이 포함된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비교에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비연은 "비정규직 규모를 제대로 산출하여 낸 임금격차는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며 정규직의 50% 수준에서 비정규직 임금이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아래 상자기사 '자료 2' 참조)"고 말한다

[표시작]
<b>■[자료 2]</b>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2006년 8월)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재산출하여 작성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연도별 추이
[표끝]
또한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이 낮게 산출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재벌기업들 횡포에 의한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있으며 바로 그 재벌기업들의 조직인 전경련이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이 너무 낮다고 얘기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비연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라고 통박한다.

전경련이 이와같은 사실왜곡한 통계를 통해 주장하려는 점은 "통계수치를 왜곡해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장해제시키려는 게 겨냥하는 목적"이라고 전비연은 분석한다.

통계조차 왜곡하는 전경련 주장처럼 과연 비정규직도 알고 보면 살만한가? 그나마 일자리라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포자기와 체념을 퍼뜨려서 숱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워버리려는 전경련의 노골적인 책동이야말로 노사갈등과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기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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