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8대 1이라는 가히 압도적 차이로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헌재가 그간 보여 온 ‘사법의 정치화’를 극도로 추구한 사건으로, 민중의 피땀으로 성취해온 미완성의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거꾸로 되돌리는 반역사적 사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허약한 기관인 헌재는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때만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는 이 점을 망각한 채 논리적 비약과 반공주의적 ‘종북론’에 편승해 우리 사회를 ‘국민’과 ‘비국민’, ‘반공’과 ‘종북’으로 구분·배제해 버림으로써 가장 나쁜 의미의 ‘정치’를 스스로 수행했다.

복수정당제도가 민주주의 실현에 필수불가결하며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이 특별히 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과 위헌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요건인 다양성과 다원성을 보장하고 소수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헌재는 정당해산의 요건에 대해 가능한 한 최대한의 숙고와 엄격한 해석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헌재는 집권세력의 정치적 의도와 정국돌파시도에 적극 동조·협력하여 헌정사에 가장 큰 오점이 될 반동적인 판결을 행함으로써 소수의 사법관료들에 의해 헌법재판, 나아가 사법제도가 어떻게 권력의 정당화 기제로 전락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헌재의 결정은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통합진보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며, 해산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 통합진보당 중앙당 등록 말소 공고/ 2014. 12. 19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런데 헌재는 헌법 제8조 제4항의 위헌정당의 해산기준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를 지난 세기 냉전의 유산이라고 해도 좋을 ‘전투적 민주주의’(일명 ‘방어적 민주주의’) 담론으로 치환하여 해석해 버렸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KPD) 위헌판결에서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전투적 민주주의’를 정당해산의 기준으로 삼았다. 문제는 전투적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가치절대주의는 무엇이 민주주의의 적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대결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경우 전투적 민주주의론은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소수세력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매우 적절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를 억압하는 다수자의 횡포로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역설을 낳는다. 전투적 민주주의가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 나치당과 같은 전체주의 정당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이론이 가치의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처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은 한 정당의 해산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든 합법·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충실했던 이명박 정권을 지나, 친기업적이면서도 권위주의적인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 ‘87년 체제’라는 이름으로 성취했다고 믿어온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정체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일체의 국가규제를 해소시켜버리는 신자유주의와 이에 굴복하지 않는 세력에 대한 정치적 배제가 결합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미래는 암담하다.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은 국민의 자유과 권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리라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일거에 무위로 되돌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뇌관이다. 헌재가 기대고 있는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이 반자본주의를 표적으로 삼을 때, 신자유주의 집권세력이 급진적·진보적 정치세력을 분리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또다시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직후, 정해진 수순처럼,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는 10만여 명에 이르는 통합진보당 소속의 국회의원과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19일, 법무부는 ‘대체정당 설립금지’와 ‘통합진보당 관련 집회금지·처벌’ 등 후속조치를 내놨다. 검찰은 또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이 접수된 통합진보당 당원들에 대한 수사 착수를 검토하기 시작해, 벌써부터 새로운 공안정국이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헌재의 반대의견에서도 우려했듯이, 독일공산당 해산결정이후 12만 5천명에 이르는 관련자가 수사를 받고 그 중 6~7천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해고되어 쫓겨났다. 지배적 가치관에 순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국민을 분리하고 후자를 사회에서 낙인찍어 괄호 밖으로 내치는 이러한 통치전략은 50년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70년대 한국에서 유신이라는 이름으로도 전개된바 있다.

이처럼 이번 헌재의 결정은 정당해산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각할 자유, 말할 자유, 모일 자유까지 탄압할 강력한 법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투쟁의 산물로 탄생한 헌재가 그 투쟁 대상이었던 권력에 부역하여 도리어 투쟁 주체인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해버린 셈이다. 폭력적인 정치와 수구적인 사법의 이종교배를 막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암흑의 시대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제 국민이 깨어나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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