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항제의 Biz 프리즘] 현대車의 ‘씁쓸한 타결’

산업1부문 선임기자

파업 악순환 고리끊고 10년만에 상생의 악수
노조 경영권 간섭 수용 등‘절반의 성공’그쳐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 잠정 합의, 10년 만에 무분규 타결을 이끌어낸 것은 한국 노사관계의 한 획임이 분명하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1997년을 제외한 19년간의 파업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격려를 받을 만하다. 더구나 현대차 노조는 한국의 대표적 강성노조로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이란 점에서 이번 무분규 타결의 의미는 작지 않다. 현대차 노사는 협상 개시 55일 만인 4일 오후 제12차 본교섭에서 임금 8만4000원 인상, 성과급 300%+200만원 지급, 상여금 50%포인트 인상 등의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노조 요구안을 상당부분 반영한 점에 비춰 합의안은 6일 노조원 찬반투표에서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


▶돋보인 ‘윈-윈’ 전략=우선 노조의 달라진 협상 태도를 평가한다. 노조는 교섭 결렬 후 쟁의 조정기간에도 회사 측과 실무 협상을 계속하는 ‘성의’를 보였다. 파업 찬반투표 가결 후에도 잔업을 계속하도록 유도한 점도 긍정적이다. 과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잘못된 관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울산 시민과 사회단체 등이 따가운 시선, 조합원들의 낮은 파업 찬성률(예년보다 10%포인트 밑도는 62.9%), 노조 주축인 40대 조합원의 보수화 추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나 어쨌든 파업 전 협상 선례는 진일보한 협상 태도다.


회사 측의 유연한 협상 전략도 한몫했다. 협상 결렬 전 노조도 놀랄 만한 파격적인 일괄 협상안을 제시, 적극적인 카드를 보여줬다. 파업 찬반투표 하루 전 윤여철 사장이 노조지부장을 찾아 무파업 결의를 다진 점도 주효했다. ‘파업할 테면 하라’는 식의 버티기 전략 대신 파업은 노사 공멸의 길로 위기극복에 동참하자는 설득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절반의 타결’ 비판 많다=하지만 이번 합의안에 50점 이상의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회사 측이 노조의 어이없는 ‘황당 요구’를 그대로 수용, 앞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여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사측은 신차 생산공장 및 생산물량, 해외 공장 신.증설 등에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받도록 하자는 데 동의해줬다. 이는 경영권 행사의 본질로 시장 상황의 재빠른 대응을 어렵게 할 독소조항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미 ‘아반떼HD’, ‘투싼’ 등의 사례에서 경험한 것처럼 자칫 혹독한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경쟁사는 물론 재계는 벌써부터 이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눈치다.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 연장, 주야 2교대의 주간 2교대 대체는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과도한 임금 인상은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초 제시안부터 경쟁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데다 이번 합의안대로라면 회사 전체로 2000억원 이상을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5260억원에 비춰 결코 작지 않다. 그러면서 생산성 제고의 지름길인 조합원 전환 배치는 논의조차 하지 못한 데다 여름휴가 전 협상 대신 가을철 협상으로 넘긴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노조 측 협상 전술에 사측이 말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노조는 생산성 제고로 보답해야=현대차의 종업원 1인당 생산 대수와 매출액은 각 31.5대, 45만달러로 일본 도요타(58.4대.132만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1인당 영업이익은 4분의 1(1억3000만원 대 3000만원)에 그친다. 미국 중국 시장의 판매량 감소 및 시장 점유율 축소, 국내 시장의 수입차 판매 증대 등 대내외 변수마저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는 노조가 답해야 한다. 생산성을 올리지 않으면 현대차 미래는 없다. 결국 노조와 조합원 일자리도 영원하지 않다는 얘기다. 강성으로 유명한 전미(全美)자동차노조가 협상 출발점을 “회사가 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 분명한 것은 국내 소비자들은 더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그만큼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 확보가 시급하다. 현대차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노조의 적극적인 분발을 촉구한다. (yesstar@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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