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일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와 '현대자동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최정명(오른쪽), 한규협 조합원이 식사와 물, 아이스팩을 전달받고 있다. ⓒ 변백선 기자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목숨 건 고공농성을 벌이는 하청노동자들이 폭염의 날씨에 이레 동안이나 물과 음식을 공급받지 못한 채 사투를 벌였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최정명·한규협 조합원이 서울시청 앞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상황에서 광고업체 '명보에드넷'은 지난 7월 25일 법원 가처분결정을 빌미로 음식과 물 등 생필품 전달을 직계가족만 할 수 있게 한정했다.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으로 인해 광고가 중단돼 손실을 입었다며 광고업체는 전기까지 끊었다. 두 농성자의 가족들은 육아와 생계 문제로 농성장에 종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2인에게 식사와 물 반입이 중단된지 일주일이 지난 31일 KNCC 정진우 목사가 방문해 관리자와 몸싸움을 벌인 끝에 식사를 전달했지만 이미 그들은 7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쫄쫄 굶었다. 노조가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최정명, 한규협 조합원이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와 '현대자동차 그룹 정몽구 회장 책임'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지 55일째인 8월 4일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공농성자들에게 물-음식 반입 긴급구제를 거부한 인권위를 규탄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와 현대 재벌의 눈치를 보며 인권위 역할을 방기하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제라도 인권위는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4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구제 거부한 인권위를 규탄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 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 497명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을 규탄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양경수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인권위 옥상 광고탑에 있는 두 명의 노동자들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며 "너무나 절박한 처지와 조건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 그 자체가 긴급구제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2명의 노동자들은 6월 11일 아찔한 광고탑에 오르며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고자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조차 챙기지 못했다"며 "전광판 위는 철판으로 돼 있고, 피뢰침만이 농성자들의 버팀목이 되는데 장마철 천둥번개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안전사고가 우려돼 인권위에 안전장치를 요청했다"고 전하고 "인권위 조사관 2명이 올라갔지만 위에 있는 피뢰침에 몸을 묶고 버티라고 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인권위를 규탄했다.

또 "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고, 비정규직도 사람이라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인권위는 우리 건물이 아니고 우리 전광판이 아니고 긴급구제 대상이 아니다는 말만 한다"며 "지난 법원 가처분신청 이후 식사와 물마저 반입을 중단한 것은 광고업만의 생각만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하고 "제가 지난 7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정몽구 회장을 불법파견 현행범으로 고소했는데 그에 대한 보복조치로 본다"고 전했다.

▲ 인권위법 상의 긴급구제 대상자인데도 불구하고 제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국가인권위를 규탄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서를 전달했다. ⓒ 변백선 기자

양 분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기대고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이 나라의 법도 정의도 인권도 철저히 유린당하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이 현대ㆍ기아 자본이라는 너무나 높고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투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위에 있는 동지들이 밥도 물도 정상적으로 전달받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명숙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위는 법원의 가처분을 근거로 긴급구제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법원의 가처분결정에는 음식과 물을 제공하지 말라는 어떤 문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인권위가 나서서 물과 음식을 제공케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인권위법 상의 긴급구제 대상에는 의료, 급식, 의복 등 제공으로 나와 있다"며 "의료, 급식은 진정사건이 오래 걸리면 생명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긴급구제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긴급구제 거부한 인권위를 규탄한다!"
"불법파견 자행하는 정몽구를 구속하라!"

▲ 식사와 물, 아이스팩을 올리려고 하자 경찰이 검문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 식사를 올려주고 있는 양경수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장. ⓒ 변백선 기자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은 "인권피해를 받는 당사자가 심각한 상황에 닥쳤을때 진정이 접수되면 인권위가 인권위가 먼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인권위법에 명시돼 있다"며 "대한민국 국가인권위라면 이 문제가 긴급구제 대상인가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인권위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전하고 "현재 인권위는 긴급구제 신청이 들어오면 정권과 자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부터 검토하는 것 같다"고 인권위의 긴급구제 거부를 규탄했다.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은 "법원이 사내하청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이유는 중간착취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라며 "사내하청 제3자를 통한 노동력 사용은 중간착취이고 사람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에 법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전하고 "지난 해 9월 기아차 497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고 지금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바로 불법파견을 인정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며 올라간 것"이라며 "이것은 헌법과 노동법에 따라 지극히 정당한 요구이고 노동자들이 전광판에 올라가지 않았어도 이미 시행되됐어야 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 ⓒ 변백선 기자

▲ 기아차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조합원들이 54일째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최정명, 한규협 조합원고 함께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 변백선 기자

이원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고공농성자에게 필수적인 물과 음식,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발언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 2010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권과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외치며 농성하던 장애인권활동가들에게 한겨울에 전기와 난방을 중단하고 식사반입과 활동보조인 출입도 제한했다"며 "4년 전 일과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며 분노가 치민다"고 규탄하고 "인권위는 초심으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인권위가 긴급구제 결정을 안한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라며 "현병철 체제 6년간  보여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던 악행을 또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전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인권의 잣대로 사내하청노동자들 목소리를 들으라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국제인권기구가 권고했듯이 인권옹호자를 위한 전담부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옹호자들의 견해가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서를 전달하고, 55일째 고공농성 중인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식사와 물, 아이스팩을 전달했다.

물과 식사, 아이스팩을 전달 받은 최정명, 한규협 조합원은 광고탑 위에서 손인사를 하며 밝은 미소를 보내고 "아이스팩을 받으니 몸이 호강한다"고 말했다.

▲ ⓒ 변백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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