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여성 일자리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서 개인으로 고용보조금 지원방식 개선.”

지난 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리에서 나온 대책 중 하나이다.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제야 정부가 고용창출이란 미명 아래 기업과 재벌에 퍼주던 정책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말일까?

정부가 편성한 올해 청년취업인턴제 예산만 보더라도 청년에게 직접 주는 지원금은 420억인데 반해 사업주 지원금은 무려 4배 이상 많은 1,758억에 달한다. 반대로 재정투입 1억 대비 효과를 보면 청년에게 직접 줄 때 59.9명의 고용효과가 있는 반면, 사업주 지원금은 13.9명의 미미한 고용효과에 머물렀다.

그럼 그 많던 고용보조금을 사업주들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했을까?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료에 따르면 사업주들은 “고용보조금을 임금인상보다는 노동비용 절감으로 활용”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고 있었다는 말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윤만 늘리려는 기업의 속성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나마 정부의 관리나 감시·감독이 가능한 고용보조금이 이런 상황인데, 임금피크제나 성과급제 도입을 통해 확보된 재원의 경우 전적으로 사업주 재량에 맡겨져 있는데 과연 이를 청년 고용에 사용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신규고용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를 더 줄이려는 노무관리기법이나 쉬운 해고 도입을 위해 활용될 것임에 틀림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주 지원금과는 정반대의 정책이 훨씬 실효성이 높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에 벌어진 일들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인수위 시절, 한화 그룹이 1,9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바 있다. 취임 직후에는 신세계이마트가 1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며, 곧바로 SK 그룹이 58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비록 대부분이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무기계약 전환에 불과했지만, 이들 사례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을까? 한화그룹과 SK그룹은 각각 김승연·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정권 초기에 이런 조치를 통해 선처를 호소하려는 성격이 강했고, 신세계이마트의 경우 직원 사찰을 비롯한 엄청난 부당노동행위가 폭로되고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이어지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의 성격이 짙었다.

다시 말해 사업주에게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주는 게 아니라 회초리를 들어야만 최소한의 정규직 전환이나 청년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 청년 일자리 사업만 13개 부처에서 총 57개 사업을 하고 있으며 2조 1천억의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사업주 지원이 아니라 차라리 이 돈으로 청년을 직접 고용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봉 4천만원 일자리 5만 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규모 아닌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청년일자리 공약과 경제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청년도 살리고 기업과 재벌도 살린다는 공약들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청년을 살리려면 기업과 재벌에 책임을 지워야 하며, 기업과 재벌을 살리려면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한다. 이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주요 통계자료들을 보더라도 분명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08년 1월 현재 7.1% 수준이던 청년 실업률은 매년 증가해 올해 1월에는 9.5%로 급증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신규채용 청년층 중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2008년 54%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8월에는 64%로 무려 10% 포인트가 늘어났다. 즉 청년 실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그나마 고생문을 통과해 취업한 청년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고용해야 할 사업주들은 어떠할까? 작년 9월,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년 동안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1,835개 회사 공시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이 보유한 총 사내유보금은 2008년 519조원에서 2015년 845조원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특히 30대 재벌의 경우 206조에서 551조로 무려 2.7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지난 7년 동안 경제성장의 열매는 재벌이 독식한 반면 희생은 청년층에 집중된 것이다. 청년 고용하라고 보조금 듬뿍 주었더니 그 돈으로 고용을 늘린 게 아니라 비용절감과 이윤 늘리기에 혈안이 되었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친기업·친재벌 정권으로 평가되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 고용보조금 사업 전면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섰을까!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이제 기존 정책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그동안 열매를 독식해온 재벌에게 세금과 함께 강한 사회적 책임을 물리고, 그로부터 마련된 재원이 오롯이 청년에게 직접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청년 일자리를 얘기하면서 재벌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헛 공약(空約)이라 평가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들 역시 강한 책임감이 요구된다.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 △재벌 책임으로 청년 일자리 늘리기 등의 정책을 말이 아니라 실제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자세로 돌파하지 않으면, 청년을 팔아 노동개악을 정당화시키는 정부 정책을 막아낼 수 없다.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세력으로 거듭나야만 운동의 전망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살리기인가 재벌 살리기인가, 이것이야말로 20대 총선을 맞이하는 각 세력들 앞에 던져진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거친 정부는 3월 중순에 청년·여성 고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들의 대책이 나와야 할 때이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3022039185&code=990100&med_id=khan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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