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무거운 산소통을 멘 채 한 줄기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서 작업을 했다. 10분만 일해도 구토와 탈진증세를 보일 정도의 강한 방사능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멜트다운(원전 노심 용해)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원전 현장을 지킨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핵 연료봉 온도를 낮추려 엄청난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며 원전의 중심까지 접근하기도 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원전을 지킨 노동자들은 일본에서 ‘50인 결사대’로 불리고 있다. 물론 그 숫자는 날이 갈수록 180명, 500명으로 늘어났는데, 그럼 이 노동자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원전에 투입된 대부분의 직원들은 처자식이 없는 계약직 직원들로 불과 일당 1만엔(10만원 남짓)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 안전을 책임져야 할 당국자들이 제일 먼저 도망을 친 상태에서, 일본 전체의 안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50인 결사대’로 일본에서 추앙받는 이들은 후쿠시마 사태 5년 뒤인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상당수가 엄청난 방사능 피폭으로 암이 발병했고 다수의 사망이 보고되었지만,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1명의 용접공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는 14개월 동안 원전 덮개공사에 참여한 건설 노동자로, 일을 마친 지 2주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바 있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이나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기간제 교원과 정규 교원은 임용기간과 임용권자, 법적 책임이 다 다르다. 무조건 순직을 인정할 경우 정규 교원의 반발 등 혼란이 크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희생된 안산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 이지혜 두 분의 순직 인정 여부에 대해 인사혁신처 연금복지 과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그래, 임용기간과 임용권자 얘기는 둘째치고 대체 법적 책임이 다르다는 얘기는 뭐란 말인가. 아이들을 대하고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책임과 책무에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다는 뜻인가?

죽음이 임박한 순간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세포 하나하나까지 중력이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배가 기울어가던 그 순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사용자와 계약 만료시점을 상기하며 내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의 경중이라도 따져봐야 한단 말인가. 상대적으로 탈출이 쉬웠던 5층 숙소에 있다가 아이들의 절규가 터져나오는 4층으로 내려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 탈출을 돕던 그 순간에,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책무가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단 말인가.

지난해 교육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3월1일 기준으로 전국의 초·중·고 교사 37만6000여명 가운데 기간제 교사는 4만여명으로 전체의 10.8%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담임은 2만1000여명으로 기간제 교사의 절반 이상이 담임교사를 맡고 있다. 고(故) 김초원, 이지혜 교사 역시 각각 2학년 3반과 7반의 담임을 맡고 있었다.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기간제 교사들의 법적 책임이 정규직 교사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정규직 교사의 반발 운운한 것도 어이가 없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부는 정규직 교사의 엄청난 반발이 있는 사학연금 개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성과임금제 도입 역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이 있으니 폐기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노동개악을 추진할 때엔 정규직 과보호론을 주장하고,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문제에선 정규직 반발 때문에 안된다니, 결국 이유를 불문하고 노동자 권리는 보장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지난 4월7일 정부가 발표한 ‘기간제 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에 적시된 내용이다.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은 한사코 안된다고 주장하는 정부 스스로 얼마나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총선을 6일 앞둔 시점,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시점에 ‘선거용’으로 발표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틀 뒤면 304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된다. 지난 2년 동안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말은 무성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 20세기에나 구경할 법한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사고로 청년 노동자들이 실명 또는 정신질환에 빠졌다. 피해자 대부분이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로 나타나 파견법의 해악이 드러났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파견확대 입법의 필요성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설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지난해 38명의 사망자를 내며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로 대형병원의 간접고용과 부실한 감염관리가 드러났음에도 역학조사를 거부한 거대 자본 삼성병원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지난 11일에는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 벌써 3번째 사망사고인데 그중 2명의 희생자가 하청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 어느 누구도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해마다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됐다는 얘기도 들어본 바 없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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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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