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활동가가 본 한상균위원장 공판

* 이 글은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하는 아샤님이 기고해주셨습니다.

 

나는 미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미드의 여러 가지 장르 중에서도 법정물을 가장 좋아한다. 변호사나 검찰이 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무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재판 중간중간에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서로의 허점을 파고드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활동을 하면서 내가 마주하게 된 법정의 현실은 TV 속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에 날카롭게 주고받는 논쟁 따위는 없고, 서류 뭉치나 잔뜩 들고 와서 거기에 쓰인 것이나 읽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드라마 속 법정 모습이 더 리얼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내가 너무 미드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을까?


한상균 위원장의 공판 모습도 여느 현실 속 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재판보다는 오히려 한상균 위원장이 입장할 때 방청객들이 박수를 친 것을 가지고 청원경찰과 다툰 일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매번 법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왜 법원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칙(심지어 규정에도 없는 규칙)들을 강제하는 것일까? 모자를 써서도 안 되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도 안 되고, 팔짱을 껴도 안 되고...(모자는 확실한데 나머지 두 가지는 요즘에도 금지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장시간 법정에 앉아 있으면서 가끔 다리도 꼬고, 팔짱도 낀 것 같은데 아무런 재지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그런 방식이 법원의 위엄을 세우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그런 식으로 세워질 위엄이었다면 우리나라 법원의 위엄은 진작 하늘을 찔렀으리라.


그날 재판의 중심 내용은 채증 경찰이 찍은 영상의 증거 채택 여부와 한상균 위원장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지, 그리고 조합원들을 선동하여 경찰들을 공격하도록 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작년 노동절 집회 때 나왔던 경찰 6명이 증인으로 나왔고,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가며 질문을 했다. 몇몇 증인이 검사의 질문에 너무나도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1주일 전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저 사람들은 1년 전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저렇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증언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확실하지 않은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텐데 모든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저 사람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반복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회상할수록 덧입혀지고 다시 쓰이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증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극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경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그렇다. 사람들의 기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증인들은 몇 번이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기억을 덧입혔을까? 저 검사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증인을 대신해 증언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리고 왜 똑같은 증인이 검사의 질문에는 너무나 잘 대답하면서 변호사의 반대 심문에는 그리 기억나지 않는 게 많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식의 재판으로 한상균 위원장의 유·무죄를 가린다는 게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재판을 보면서 어쩌면 정의라는 것은 기억이나 사실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법이 규정하는 정의와 한상균 위원장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때, 정의가 무엇인지 재판에서 증인들의 기억과 진술을 통해 가려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행여 재판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그 날 그 현장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을 거짓이라고 말 할 수도 없을뿐더러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과 행동이 정의로움으로 가득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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