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 생활임금보다 적게 지급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Underpay your staff, and you will pay the price).”

영국 보수당 정부 수장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말이다. 시간당 6.5파운드이던 최저임금을 7.2파운드(1만2000원)로 10.6% 인상했으며, 이 금액은 2020년까지 9파운드(1만5000원)로 올릴 계획이다. 캐머런 총리가 공언한 것처럼 최저임금(생활임금)을 위반할 경우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위반 시 물리는 벌금을 최대 2만파운드(3350만원)로 2배 늘리고, 위반 사업주는 최대 15년 동안 사업주 대표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영국은 최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기존 최저임금 제도를 ‘생활임금’으로 이름을 바꾸고, 3인 가구가 최저임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하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3인 가구는 기본적으로 1명은 전일제 노동자, 1명은 시간제 노동자, 1명은 부양해야 할 아이로 설계되며, 최저임금이 시간당 9파운드로 높아지는 시점에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해 3인 가구가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본래 ‘생활임금’이라는 구상은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주장해온 것으로, 보수당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그러나 보수당이 정권을 잡아 행정을 펼쳐보니, 최저임금과 일자리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 그래서 애초 노동당의 제안이었던 생활임금 제도를 오히려 보수당 정부가 앞장서서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8년, 햇수로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강산이 세 번은 변했을 이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최저임금심의위가 매년 ‘비혼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참조해 최저임금 심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3~4인 가구가 보통인 현실에서 혼자 사는 노동자의 생계비를 주로 들여다보는 관행은, 영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제 3~4인 가구의 생계를 기준으로 심의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시간당 8.5유로(1만300원)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독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요? 일면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나쁜 일자리가 줄어들거든요. 대신 최저임금을 도입하니 좋은 일자리가 훨씬 늘어났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칭송하는 관변 학자들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마치 모범인 것처럼 떠들지만, 실제 독일에서는 ‘미니잡(Mini Job)’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나쁜 일자리만 양산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시간당 1만300원의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자, 지난 1년 동안 미니잡을 비롯한 질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든 반면, 사회보험 적용이 되는 괜찮은 일자리가 71만3000개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8.5유로의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최대 6억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소상공인과 중소영세상인들이 몰락하고 수십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설 땅이 없다. 실제 영세상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최저임금이 아니라 임대료 인상, 재벌 프랜차이즈의 수수료 인상, 대형 유통업체들의 진출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말이다. 저임금 노동자, 영세상인들 모두 재벌들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공동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용자단체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최저임금을 업종별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업종은 물론이고 직무별로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가 정착되어 있는 독일에서도 최저임금을 도입할 때 지역이나 업종별 구분 없이 전국적·일률적으로 적용되도록 설계한 바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영국, 독일 등 보수적인 정부들의 움직임이 이러한데,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 지난해에는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려야 한다”고 해놓고 고작 시간당 450원 인상으로 실망시켰는데, 올해엔 아예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9000원이라는 공약을 냈으나, 내용을 뜯어보면 세제 혜택을 통해 9000원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것조차 당장이 아니고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에나 말이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들은 어떠한가. 작년에 회원사의 임금협상과 관련해 1.6% 인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던 경총은, 올해엔 아예 임금 동결을 내놓았다. 1.6%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지난해엔 최저임금 동결안을 최초 요구안으로 내놓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엔 최저임금 삭감안을 들고나올지도 모르겠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재벌 대기업, 수십억~수백억원의 연봉을 받는 CEO들의 사회적 책임에는 입을 닫아놓고 말이다.

“노동자에게 생활임금 이하로 지급하면서 살아남고자 하는 기업은 이 나라에서 지속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노동계의 주장이 아니다. 대공황 시기 미국에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0.10달러(1만1770원)로 올리는 텐-텐 법안을 내놓았다. 인상률로만 보면 40%에 달한다. 말끝마다 한·미동맹을 외치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왜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는 눈을 감으려 할까.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자들의 우울증 치료에도 특효약임이 입증되고 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비롯한 4개 대학 연구진이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임금이 오른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항우울제를 복용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좋아졌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없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된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는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6152054005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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