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난 6월30일,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하고 그에 따른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수만명의 하청노동자들 고용이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정부의 대책 중 그 어디를 찾아봐도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물량팀장들의 목소리,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나온 목소리, 현대중공업 사내훈련원 관계자의 목소리 등 사용자들의 얘기는 곳곳에 인용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조선업 지원대책 수립을 위해 민관 합동조사단을 발족시켜 현장 조사도 실시한 바 있고, 경남·울산·전남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이 직접 지자체나 노동부를 방문해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책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단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건, 정부가 제시한 지원대책의 성격이 무엇인지 충분히 예상케 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 지원대책의 대부분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를 지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업주에게 고용유지 지원금을 줄 수 있도록 지급요건 완화 및 지원 수준 상향 조정 △사회보험료 납부 유예 △직업훈련 시 사업주 대상 훈련비용 지원 한도액 상향 △재취업 위한 전직 훈련 지원 시 훈련비 우대 지원 △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실직자를 채용한 사업주에게 고용촉진지원금 지원 △조선업 퇴직자 채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부여 △긴급경영안정자금 등 다양한 금융 지원 등 그야말로 ‘사업주 종합지원세트’가 제시되어 있다.

그럼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내용은 뭐가 있을까? △임금체불 발생 시 생계비 융자 △체당금 지급요건 개선 △실업급여 신속 지급 및 확대 △실업에 따른 불안 치유를 위한 심리안정 프로그램 제공 △맞춤형 재취업 지원 수준인데 그나마 이런 지원도 깊이 파고들면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책들이다.

대량해고와 실업이 예상되는 쪽은 하청노동자, 그중에서도 이른바 물량팀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물량팀의 경우 사무실도 없고 사업자등록조차 없는 사례가 많아 노동자가 일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사업주의 실체와 근무 사실을 입증해야만 체불임금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 체당금 지급요건을 개선한들 혜택을 받을 물량팀 노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내친김에 이른바 ‘물량팀’이란 것에 대해 살펴보자. 정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물량팀이란, 발주처·원청의 요청 또는 협력업체의 필요로 다급한 공정기한을 맞추거나 갑자기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단기 인력팀’이다. 아니, 제조업에 단기 인력팀이라니? 사무실도, 자체 설비도 없고 대부분 사업자등록조차 갖추지 못한 단기 인력팀! 이건 명백하게 인력공급사업으로 직업안정법 위반에 해당된다. 최소한 제조업에 금지된 파견근로에 해당해 불법파견이 되며, 이 경우 현행 파견법상 단 하루만 일해도 원청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부과됨이 마땅하다.

직업안정법과 파견법 위반 문제에 있어서 근로감독관은 사법경찰관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렇다면 마땅히 노동부는 법이 부여한 임무에 따라 조선소에서 물량팀 사용을 금지시키고 이들 노동자가 조선소에 직접 고용되도록 지도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노동부는 실체도 불분명한 물량팀장을 ‘사용자’로 보는 어처구니없는 행정해석을 고집해왔다. 사업자등록·사무소·자체 설비도 없는데 물량팀장이 사용자라니 대체 말이나 되는 해석인가? 게다가 실체가 불분명한 물량팀의 실체를 입증해야만 실업급여와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다니!

이들 물량팀 노동자는 조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특히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3사의 경우 상시적으로 수천명 규모의 물량팀 노동자들이 일해왔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들 조선소는 공정기한을 맞추기 위해, 또는 갑자기 물량이 늘어나 수천명씩 되는 노동자들을 실체도 불분명한 단기 인력팀을 통해 상시적으로 투입해 왔다는 말이 된다. 거센 풍랑과 폭풍을 헤치며 대양을 누비고 대륙을 오가는 선박 제조업을 이토록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단 말인가.

“하청노조가 보험! 가입과 동시에 일자리 지키기 단체교섭이 시작됩니다.” 고용보험과 실업급여 제도가 하청노동자를 위해 작동되지 않는 현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는 노동조합이 하청노동자를 위해 작동되는 유일한 보험임을 선전하며 노조가입운동을 전면화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에는 적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동참하고 있다. “직영 노동자가 우산이 될게요” “원·하청이 함께 노동조합으로!”

체불임금과 체당금 제도? 물량팀장이 사용자라고 우기는 정부는 이 제도 역시 하청노동자를 위해 작동되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뭉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때에만 떼인 임금도 받고 고용도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법이다.

고용을 유지하면 지원금을 준다? 실직자를 채용하면 인센티브를 준다? 정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미 현대중공업·대우조선 협력업체에서는 상여금 기본급 전환 등 임금삭감을 밀어붙이고 있고, 업체가 폐업되며 집단해고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겐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이런 움직임은 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하기 위한 전초전이자 예행연습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목소리를 배제한 가짜 대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진짜 해법을 제시하고 나서야 한다. 물량팀장을 사용자로 보는 말도 안되는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일, 정규직 노동자를 겨냥한 사전포석으로 진행되는 하청노동자 임금삭감과 집단폐업을 막아내는 일, 그리고 수만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일! 하청노동자도 노동조합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이게 바로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처하는 노동자들의 해법 아닌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7062128005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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