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참 고약한 단어다. 일을 시키려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게 당연한데 간접적으로 고용한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고용형태는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하청, 용역, 도급, 위탁, 파견, 외주 등 다양한 형태로 퍼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그 규모조차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용형태 공시 결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 등 몇 가지 참고할 만한 통계자료가 있긴 하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는 파견과 용역 규모만 나올 뿐 광범위한 규모의 사내하도급이 조사에서 빠져 있다. 고용형태 공시자료는 300인 이하 사업체의 간접고용 규모가 빠져 있으며, 공공부문 자료 역시 민간위탁 규모가 빠져 있다.

하지만 이들 자료에서 일정한 추세는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견근로와 용역근로를 합한 파견·용역 규모는 2014년 8월 80만명에서 2015년 3월에는 85만명, 2016년 3월에는 91만명으로 증가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역시 기간제·단시간 노동자 규모는 조금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간접고용 규모는 오히려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 공시자료는 더 중요한 추세를 보여주는데, 우선 지난해 공시 결과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비재벌 사업장의 간접고용 규모(10.7%)에 비해 재벌 사업장 간접고용 규모(32.2%)가 무려 3배에 달했다. 올해 공시 결과의 경우 500인 이하 사업장 간접고용 규모는 9만1000명인 데 반해 5000명 이상 사업장은 무려 45만1000명으로 나타났다. 즉, 재벌과 대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하청·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간접고용이 늘어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가 상당히 보고되고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죽어간 19세의 청년 노동자, 메탄올을 다루다 시력을 잃어버린 파견노동자, 에어컨을 고치려다 고공에서 추락해 죽어간 수리기사, 메르스에 감염됐으나 직접고용한 직원이 아니란 이유로 관리 대상에서 배제된 삼성병원 환자이송요원, 수시로 사망사고 소식이 들려오는 조선소 하청노동자…. 이들 모두가 간접고용 비정규직들로서 이제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은 일상용어가 된 상황이다.

새누리당조차 ‘위험의 외주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인데, 정부 정책은 완전히 거꾸로다. 올해 3월에 정부가 작성한 ‘지자체 조직관리지침’에 따르면 ‘민간위탁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지역 여건을 반영해 중점 위탁대상 적극 발굴 및 위탁할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정부가 직접 고용해서 수행해야 할 업무를 적극적으로 민간위탁(간접고용)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이 지침에서 정부가 민간위탁 예시로 든 업무를 보면 더 심각하다. 도로유지·보수관리, 건설안전시험, 교량안전점검 업무는 물론이고 차량·중장비관리 업무와 함께 방역, 예방접종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업무들이 적시되어 있다.

정부는 ‘예시’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지침에 이러한 것이 명시되면 공무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뻔한 얘기 아닌가. 이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위험을 외주화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민간부문에서는 아예 업무 전체를 간접고용으로 돌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테면 에어컨·냉장고가 고장 나거나 인터넷·케이블TV 설치를 신청하면 집으로 와서 설치·수리를 해주는 기사들 대부분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위험만이 아니라 ‘노사관계’도 외주화된다. 실제로는 재벌 대기업이 부려먹고 있으면서 이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어 교섭을 요청하면 “우리는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한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다. 그러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원청인 재벌 대기업이 직접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경비나 경찰을 동원해 직접 노동조합 탄압에 나선다.

사용자로서 이익과 권리는 다 누리면서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 형태, 사실 재벌 대기업이 간접고용을 늘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더라도 손쉽게 교섭을 거부하고 노조를 괴멸시킬 수단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손에 피 묻힐 일이 생기면 하청업체에 떠넘기면 그만이다.

근로기준법 9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재벌 대기업은 근로기준법 위의 존재인가? ‘이익을 얻는 자가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 근대 노동법의 원리다.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보면 ‘교섭대상’ 항목을 노동자들이 직접 적도록 하고 있다. 교섭 대상은 노동자들이 자율로 선택하는 것이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로 제한해선 안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누리는 재벌과 대기업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 노동조합법 2조2항의 ‘사용자’ 개념을 조금만 확장하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결성한 노동조합이 원청인 재벌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벌일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재벌의 행태와 비리를 폭로하고 이를 바로잡을 핵심 주체가 아니던가.

재벌 대기업의 갑질과 횡포를 막아 내고 간접고용 확산을 규제하기 위해 노동법상에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시하는 것 즉,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과 함께 20대 국회가 가장 먼저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할 입법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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