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엄강민 대협국장, ‘일본 강제징용 노동자像’ 제막식 참관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진. 금속노조 엄강민 대협국장

8월23일 아침 처음으로 가보는 일본여행(?)의 기대감으로 들떠,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像 제막식도 우키시마號 폭침 희생자 추모제도 다 잊고 일본으로 향했다.

도착 후 처음으로 향한 곳은 오사카성 인근에 세워진 '피스오사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 들어선 순간 들떠있던 기분은 사라지고 맹렬한 분노가 솟았다. 그곳은 전쟁 중 일본의 피해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주제를 주어 그렸음직한 전쟁 상황 그림들이 줄지어 붙어있는 복도에서 기막히다는 표현 외에 할 말이 없었다.

자신들의 피해는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희생된 조선 노동자들에게는 그토록 모질게 다루고, 사과 한마디 없이 잊으라 강요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망국의 설움을 당한 국민을 대신해 진심어린 사과와 완전한 배상을 요구해야 할 나의조국 대한민국이 가해자들과 손 맞잡고 오히려 우리 국민을 향해 잊을 것을 강요하는 행태가 생각나서일 것이다.

 

갑자기 서글픈 심정이 밀려왔다.

분노와 서글픔이 무겁게 가슴을 짖누르는 답답함은 이제 겨우 시작이였음을 다음날에야 깨달았다.

8월24일 마이즈루시 우키시마號 폭침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를 참석하고서야 일정 전체에 채워져 있는 민족의 아픔이 조금씩 보이는 듯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는 조선인들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1945년 8월22일 일본을 출발해 목적지인 부산으로 가지 못하였는가? 왜, 3일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 항 부근에서 무엇 때문에 폭침 당해야 했을까?

일본정부가 공식발표한 사망자는 549명, 실종자는 수 천 명이나 된 이 사건은 진상조사 없고 사과도 그리고 배상도 없이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사과도 배상도 필요 없다는 일본 법원의 판결은 뻔뻔한 그들의 민낯을 보는듯해 분노가 솟구쳤다.

“왜 이리 늦게 왔냐?”는 현지 주민의 말을 전해 들으며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늦었지만, 당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망간광산 앞에 세워진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像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像을 건립하기로 한 ‘단바 망간광산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재일동포가 사재를 털어 강제징용의 역사 현장을 보존하고 있었다. 기념관 관장님의 안내로 갱도를 견학하였다.

어둡고 습하고 위험스러운 갱도에서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상상을 해 봤다. “조선노동자들은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국 땅속 광산에서 광물을 캐 실어 나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조국과 고향과 어머니가 그리웠을까?” 상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흰 천으로 가려진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像 제막에 앞서 동포 소녀들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말로 환하게 웃으며, 멀리까지 찾아 온 동포들이 고맙다며 노래를 했다.

우키시마號 추모제에 참가한 민주노총 대표단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너무 늦어서, 분단된 조국이 미안해서, 그런데도 이렇게 웃으며 맞아주어서,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 노동자들은 일본 땅에, 작지만 시작을 알리는 노동자像 세웠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가 열이 되고 천이 되어서 희생된 조선인의 한이 풀릴 때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돌아 왔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그 한 마디가 지금도 가슴속에 사무치게 남는다. 노동자들이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평화와 통일의 과제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엄강민 대외협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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