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불법 낙인을 찍었다. 그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임금체계 개편은 법으로 의무화된 책무”라는 주장을 펼친다. 철도노조가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권력을 발동하겠다는 얘기이다. 도대체 무슨 법에 어떻게 명시되어 있기에 그런 걸까?

“사업주와 노동조합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2013년에 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이 조항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당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규정한 내용인데, 법 조항 어디에도 ‘성과연봉제’를 논의하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조항 하나로 공공기관 전체에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반대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근로자·노동조합 및 사용자는 이 법 시행과 관련하여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만료여부를 불문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이내에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임금보전방안 및 이 법 개정사항이 반영되도록 하여야 한다.”

위 조항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3년에 주 40시간 노동제 실시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했을 때 부칙에 명시한 내용이다. 왜 이런 부칙을 명시했을까? 당시 법정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면서 토요일 근무가 사라지는 사업장이 많아졌다. 기존 주 44시간 시스템에서는 토요일 오전 근무만 하면 대부분 하루치(8시간) 임금을 보장받았는데, 토요일 근무가 사라지면 당연히 사용자들은 임금을 안 주려 할 게 분명했다. 노동시간은 4시간 줄어드는데 임금은 8시간치가 삭감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부칙에는 노사 간 협상을 통해 ‘임금보전방안’이 반영되도록 하라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한 말보다 훨씬 분명한 표현을 부칙에 담았는데, 여기서 ‘임금보전’이란 말은 당연히 법 개정에 따라 토요일이 무급이 될지도 모르니 이 부분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시 노동부는 무슨 일을 했던가? 토요일 임금보전을 위한 노사 협상을 독려하고 사용자가 교섭에 응하지 않거나 임금보전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에 나섰던가? 정반대였다. 오히려 당시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파업을 벌이던 현대차노조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온갖 협박을 일삼았다. 그래, 13년 만에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노동부가 다시 꺼내든 그 긴급조정권 말이다.

다행히 당시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 대부분은 단체교섭과 파업을 통해 토요일 임금보전을 합의했다. 하지만 노조를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사용자들이 토요일 임금을 없앤다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강행했고, 결국 저항조차 못 해보고 임금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사용자들은 토요일 무급을 강요했고, 노동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2003년에 임금보전이라는 표현의 법 규정을 만들었을 때는 노사 교섭 촉진은커녕 법을 지키라며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긴급조정권으로 협박하고, 2013년에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모호한 법 규정 하나로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인다.

노동부는 오로지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집단이란 말인가. 이런 인식이 오해라고 주장하려면 미조직노동자들이 2003년 토요일 임금을 강탈당할 때 노동부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는지부터 공개함이 마땅하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시 임금삭감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토요일 임금을 되돌려주도록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

임금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것처럼 철도노조와 현대차지부는 현재 임금을 핵심 쟁점으로 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현행 노동조합법상 임금을 이유로 한 파업이 아니면 정부가 모조리 불법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철도노조가 2006년에 KTX 승무원들의 정규직화를 파업의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는 이유로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수많은 해고자와 구속자를 만들지 않았던가. 심지어 ‘성과연봉제 반대’라는 명백한 임금성 요구를 내건 이번 파업조차 불법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더 절실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임금을 핵심 요구로 내걸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 철도 민영화나 의료 영리화 반대를 내걸어도 불법,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도 불법,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해도 불법,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법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해도 불법 딱지를 붙인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인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걸어도 똑같은 태도를 보일 텐가.

임금 아니면 파업을 못하게 만들어놓고, 임금 내걸고 파업한다고 비난한다?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파업금지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내친김에 전 사회적 토론을 시작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조합이 최저임금 1만원 등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전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싸울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10052111005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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