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년 만에 열린 UN HABITAT 3차 회의를 다녀와서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전 세계 167개국 3만 6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 3차 회의. 주거와 지속가능한 도시 구축을 위해 새로운 도시 의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계획이 논의됐다.

민주노총 나기주 대외협력국장

 

지난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에콰도르 키토에서 ‘UN 해비타트 3차 회의’가 열렸다.

2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전 세계 정부와 지방정부, 시민사회 167개국 3만 6천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정부와 지방정부를 대표하여 국토부를 비롯 서울시와 시흥시, 그리고 한국의 주거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그룹 1백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주거(권)와 관련하여 관심을 갖고 국제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발하기에 앞서, 확인한 바 20년 전인 1996년 6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차 회의에서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가 세계 각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핵심 과제라는 ‘이스탄불 선언’이 채택됐지만 국내 주거권과 관련 큰 진전이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었다. 1997년 주거권 입법추진위가 구성되고 입법 추진을 했지만 무산됐고, 2003년 최저주거기준 마련, 작년 들어서 겨우 주거기본법이 마련됐지만 선언적 의미에 그쳤을 뿐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만에 다시 해비타트 3차 회의에 참석하는 한국의 주거권 운동은, 지난해 말부터 해비타트의 핵심 의제인 ‘주거권’에 대한 국내 이행 평가와 주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을 모아 왔다. 민주노총은 2016년 전국 7개지역 공단(서울, 안산, 의정부, 대구, 웅상, 녹산, 광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자의 주거비 부담능력 하락”이라는 주거권 보고서를 제출하고, “오늘날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을 고려한 별도의 주거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모두를 위한 도시, 모두를 위한 주거를 보장하라” 42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 민간위원회 참석자들이 대회 구호를 외치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 앞쪽 좌측 4번째 나기주 대외협력국장

 

“한국의 주거 정책에서 노동자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 ‘근로자임대주택’이나 ‘사원임대주택’ 같은 정책이 있었으나 규모도 작았고, 실효성도 크지 않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조 건설 등을 통해 실질임금 상승을 쟁취한 노동자들은 1987년에서 1997년 IMF 이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주택 소유를 통한 ‘중산화 가능성’을 경험했지만 비정규직의 증가와 임금 상승의 정체로 현재 이러한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1990년대 이후 정책적 조력 없이 노동자들은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과거 ‘성장시대’에 틀이 잡힌 주거 정책이 경로 의존성을 발휘하는 가운데 다수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거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20년 전 해비타트 Ⅱ에서 한국 정부는 대표 연설문을 통해 “한국 정부는 적정 주택의 제공이야말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된다는 점을 믿고 있다.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단체를 포함한 모든 기구와 기관 간에 새로운 협력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천명했지만 한국에서 주거권은 여전히 다른 권리에 비해 취약하고, 해비타트 Ⅲ에 제출된 국가보고서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민간단체는 물론 지방정부의 참여도 거의 배제된 채 작성되었다. 아울러 한국정부는 해비타트에 참가한 ‘해비타트Ⅲ 한국 민간위원회’의 거듭된 면담과 간담회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주거권을 권리로서 인정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국가가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묻고 있으며,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정부가 가용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적절한 주거의 보장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무를 가지고 있다.(UN HABITAT, 2009)

 

이번 해비타트 3차 회의에서는 주거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20년간 주거와 지속 가능한 도시에 관한 ‘새로운 도시 의제(New Urban Agenda)’를 채택했다. 도시 공간 내에 사회, 경제, 노동, 문화, 환경 등 포괄적인 새로운 도시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를 핵심 개념으로 채택한 것이다.

 

의제를 확대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맞설 필요성 때문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차별이 없는 도시, 모든 거주자가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포용적인 도시, 정치적 참여가 확대된 도시,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도시, 양질의 공공 공간이 있는 도시, 양성 평등의 도시,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포용적 경제의 도시, 공동체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도시여야 한다는 꿈과 이상을 담아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에 어떤 의미와 내용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급속도로 진행된 한국의 도시화 경험을 소개하며, 향후 국제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도시 모델의 하나로 ‘스마트 시티’를 제시하고 ‘자화자찬’ 알리는 데만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적인 강제 퇴거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현장들은 소개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리의 강점인 도시개발 경험과 우수한 ICT(정보통신기술)를 연계한 핵심기술을 개발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비타트Ⅲ가 제시한 ‘도시에 대한 권리’는 한국 정부의 지난 도시화 방식에 대한 비판이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도시를 마케팅의 수단으로만 제시하고 ‘스마트시티’를 수출하겠다는 데에만 관심을 두어 각국 참가자들과 한국 민간위원회 참가자들의 빈축을 샀다. 이에 한국 민간위원회는 해비타트 3차 마지막 총회에 시민사회를 대표해 한국 정부의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한편 해비타트 회의와는 별도로 세계 민중운동 진영은 해비타트Ⅲ에 대응하는 민중사회포럼을 동시에 열었다. 해비타트가 겉으로는 시민사회 참여와도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고 정부 주도의 불평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입장 부재를 비판하며 전 세계 시민사회가 연대해 주최하는 포럼이다. 해비타트 회의에 비해 자유롭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세계 각국의 투쟁하고 저항하는 동지들을 만나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민중사회포럼에서도 국제 교류와 연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의 청년-주거단체들이 <청년의 주거권과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제주 강정 주민들이 직접 참석하여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국제법정>을 열고,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렸다. 한국 민간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고 백남기 농민의 실상을 알리는 서명과 행진을 벌였다. 브라질, 미얀마, 페루의 지역 공동체 활동가들이 직접 참석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퇴거 실상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운동과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겪고 있는 저성장, 불평등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마지막 날에는 해비타트 3차 회의 폐막식에 참석하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반대, 생명평화 기원 100배’를 진행했다. 세계 각국 참가자들에게 스마트시티를 주창하며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 도농간 격차 심화로 농민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권리 보장을 요구한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를 본 각국 많은 참가자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3차 해비타트 회의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주거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20년 전 이스탄불에서 채택한 ‘모두를 위한 주거’ 선언 과제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 여기에 새로이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이 추가되었다.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1차적으로 한국 정부의 답이 필요할 때지만, 한국의 주거권 운동단체들도 그 못잖은 책임과 과제가 있다.

 

시급한 일은 이번 해비타트 3차 회의와 민중사회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주거권운동 진영의 연대(틀)를 하나로 모아내는 일이다. 이를 기반으로 주거권과 관련한 공동요구안을 만들고 입법화 하는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주거권과 도시권이 우리 시민 전체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리고 통일된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주거운동단체 중심의 운동에서 더 나아가 시민운동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의 이행을 촉구하고 계획을 점검하는 모니터링을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의 주거운동은, 주거권 보장과 함께 주거권을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되살려 도시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역학을 분석한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하드가 그의 저서에서 밝힌 울림있는 목소리로 이 글을 맺을까 한다.

“결국 도시에 대한 권리를 정치적 이상이자 투쟁의 슬로건으로 내걸어서, 이러한 여러 투쟁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배제되고 도시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던 사람들이 도시 통제권을 되찾고, 자본 잉여를 통제하는 새로운 양식의 도시화 과정을 제도화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의지를 담보할 도시에 대한 권리의 민주화와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불가피하다.”

- 데이비드 하비 《New Left Review 53》(2008)

 

전세계적으로 주거가 보장 되지 않아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에콰도르 키토의 시민들

 

UN 해비타트

UN HABITAT는 주거와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인류에 적절한 쉼터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UN 산하 기구로, 1976년 이래 20년마다 공식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1976년 벤쿠버에서 열린 1차 회의를 시작으로 1996년 이스탄불, 2016년 키토에서 열렸다. 이번 3차 회의에서는 '지속가능도시 구축'을 위해 새로운 도시 의제(New Urban Agenda)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 계획(Implementation Plan)이 논의됐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