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정수석 비망록 보니... 4일에 한 번꼴로 전교조 관련 논의

청와대가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취소 소송, 교육부 후속조치 등 전교조 법외노조 과정 전반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전교조는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 4층 대회의실에서 청와대 직접 개입 ‘전교조 죽이기 공작’ 증거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교조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가운데 전교조 관련 부분을 유족의 동의를 얻어 제공받은 뒤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2014년 6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총 170일 중 42일에 걸쳐 전교조 관련 내용이 등장해 청와대가 4일에 한 번꼴로 전교조 동향 점검 및 탄압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 공영순 기자

청와대 전교조 법외노조화 적극 개입 정황 드러나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6월 19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 1심 판결 전인 15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6월 19일 재판 중요. 승소 시 강력한 집행’, ‘재판 집행 철저히’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에는 수석과 교육부 차관 등이 참여해 ‘전교조 판결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아직 법원의 1심 선고 전임에도 ‘재판 집행 철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법부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을 시사하는 것”이라면서 “‘승소시 강력한 집행’, ‘전교조 판결 이후 대응 방안’ 관련 논의는 직권면직, 단체협약 해지, 사무실 퇴거 및 지원금 반환 조치 등 후속조치로 현실화 됐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1심 판결 당일 위와 같은 내용의 후속조치 방안이 적힌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발송했다.

법외노조 판결 직후인 6월 20일 메모에는 전교조 관련 ‘고용부에 조치토록, ILO·OECD에 외교부 통하여 취지 전달토록, 교원노조법 개정안 환노위 계류중 원칙 고수토록 독려’ 등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따른 고용부의 역할 강조와 함께 이후 전교조 투쟁 일정이 적혀 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발언인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의지로 법집행, 전교조 생존문제로 경시할 수 없어’, ‘국제적 연계 정부 압박’. ‘긴 process 끝에 얻은 성과’, ‘엠네스티, ILO, 대사들도 숙지토록’ 등의 메모도 발견됐다.

전교조는 “메모를 보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소송 1심 판결 직후 청와대가 전교조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파악한 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대한 적극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교원노조법 개정 관련 원칙 고수를 말한 것은 행정부가 입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며 긴 process 끝 성과라는 것은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집권 세력의 장기적 기획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을 내며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교조의 조퇴 투쟁을 앞둔 2014년 6월 26일 교육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등이 함께 전행한 공안대책회의는 당시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메모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 회의 하루 전인 25일 ‘전교조 대응 방안-대검 공대협’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청와대가 전교조 탄압에 공안기관을 동원한 것이 입증된 것”이라면서 “전교조 와해 공작은 고용노동부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공안세력을 동원해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9월 19일 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를 결정한 다음 날인 20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관련 메모에는 ‘즉시 항고 인용, 헌재 결정-합헌 결정’이라고 적혀있다. 전교조는 “청와대가 효력 정지 결정에 대한 즉시 항고를 지시하고 헌재 합헌 결정 유도를 구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즉시 항고, 헌재- 합헌 등 내용이 적힌 메모.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정훈 위원장-교직 박탈’, 조합원 압박으로 노조 활동 방해

청와대는 또 28일 메모에서는 ‘전교조 교사-불법집단행동(조퇴, 집회) 처음부터 단호한 대처-상응한 불이익이 가도록 일관성 있게’로 적고 있다. 7월 1일 메모에는 ‘전교조 본부 전임자 복귀 조치 우선적으로 단행-형사고발’ 등의 메모로 전임자 등 조합원의 공무원 신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전교조 탄압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2014년 8월 20일 시도교육청에 전교조 전임자를 직권면직하지 않으면 직접 행정대집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지만 김영한 전 수석 메모에는 이미 보름 전인 8월 2일 ‘전교조 미복귀자 징계 – 직무이행명령’, ‘교육부장관 직권면직 대집행’을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8월 9일 ‘전교조 위원장 김정훈 – 교직 박탈’ 메모 등을 보면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전교조 교사의 대량 해고를 준비하며 전교조 활동의 발을 묶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메모에 따르면 청와대는 7월 1일, 3일, 4일, 5일, 6일, 8일 등에는 거의 매일 전교조 전임자 복귀 관련 사안을 논의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전국교사대회 다음 날인 2014년 9월 14일 메모에는 ‘전교조 원칙대로 처리- 뚜벅뚜벅, 조용히’, ‘9월 13일 전국교사대회 추가 의율 검토, 위원장 표적’이라고 다시 한 번 적혀있다.

김정훈 위원장 교직 박탈이 명시되어 있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고자 9인 때문’ 아닌 ‘청와대 지시’로 전교조 법외노조화 추진 의혹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은 “이번 문건으로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박근혜 정권의 공작 정치의 산물임이 확인된 만큼 법외노조 조치는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34명 교사에 대한 직권면직 역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영구 민변 교육위 변호사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재판 과정과 후속조치, 직권면직에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는 교원노조 사용자인 정부가 노조 지배개입 목적으로 노동부 장관의 사무에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위법하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강영구 변호사는 “공개된 비망록에 따라 전교조에 대한 고용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해고자 9명’에 따른 통보가 아닌 ‘청와대 지시’에 따른 통보임이 드러난 만큼 대법원 재판부에 비망록 자료를 제출하겠다”면서 “전교조는 정부의 불법 행위에 따라 법적 지위를 박탈당한 만큼 국가 배상청구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공영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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