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임금 권위자 피터 필립스 교수에게 듣는 ‘적정임금’

미국의 적정임금 권위자, 피터 필립스 교수가 방한했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피터 필립스 교수는 적정임금과 직접시공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하여 적정임금에 대한 발제를 진행하였다. 또한 기자 간담회, 건설산업연맹 방문 및 간담회 등을 통해 적정임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했다. 피터 필립스 교수의 설명으로 적정임금에 대해 한발짝 들어가보자.

 

2016년 11월 15일, 적정임금 직접시공 도입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피터필립스 교수가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Q / 미국의 적정임금제도 현황은 어떠한가요?
A / 미국에서는 현재 적정임금(Prevailing Wage)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931년, 대공황 시기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무한정 깎여나가자 데이비스와 베이컨, 두 의원이 발의하여 미국 연방정부가 채택한 것이 바로 적정임금법입니다. 공공공사의 경우에 주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을 목수, 철근공 등 기능인력별로 설정해놓고 건설사가 이를 제대로 지급하는지 감독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데이비스-베이컨 법이 적정임금법이고 주별로도 적정임금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전체 52개 주 가운데 32개 주에서 적정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적정임금제도가 없는 주들은 주로 농촌지역의 주들이어서 숙련된 건설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공화당이나 건설사들의 반대로 적정임금제도를 유지하다가 폐지한 경우도 있습니다.

 

Q / 미국에서 여러 산업 중 특히 건설산업에 적정임금제도를 도입하고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가장 큰 이유는 건설산업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만들면서 사회 전체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주는 것이 건설산업입니다. 건설업에서 부실시공이 일어나면 나라 전체에 악영향을 줄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규제가 필요합니다. 적정임금제도는 건설산업의 신뢰도를 높이고 건축물의 품질을 높이고 건설산업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규제입니다. 또다른 이유로는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공사가 전체 건설공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전체 건설공사의 약 25% 정도가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공사입니다. 정부를 가장 큰 구매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건설업에서 적정임금법을 도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정부가 최대규모의 구매자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적정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Q / 적정임금과 최저임금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산업별로 적정임금을 도입하면 최저임금은 없어도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최저임금은 모든 산업, 모든 직종에 적용되는 하나의 단일한 임금입니다. 최저임금은 가장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입니다. 최저임금 보장을 통해 하층민들도 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노동자와 경제 모두에게 좋은 효과를 줍니다. 적정임금은 최저임금처럼 모든 산업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 업계에 적용되는 임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건설산업의 적정임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서 고숙련의 건설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높은 품질의 건축물이 제 시간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정임금입니다. 이를 통해 고숙련 건설노동자들을 키울 수 있고 이러한 숙련인력이 건설산업에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게 합니다. 건설산업에 적정임금이 적용되더라도 미숙련 노동자들,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의 노동자들 또한 계속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들을 위해서 최저임금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건설산업연맹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의 적정임금과 건설노동시장을 설명하는 피터필립스 교수.

Q / 적정임금제도의 효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나요?
A / 적정임금제도는 건설사들이 비용, 특히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것으로 경쟁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러면 결국 건설사들은 비용이 아니라 기술과 품질, 안전 등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기술과 품질, 안전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숙련의 건설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하고 이를 위한 각종 투자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적정임금제도를 통해 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들을 훈련하는데 투자하도록 의무화하여 고숙련의 건설노동자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적정임금제도가 도입되면 건설사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비용이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이렇게 고숙련의 노동자들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비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건실한 건설사들이 오히려 적정임금제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고숙련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품질경쟁을 할 수 있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기술력이 없고 오로지 저임금의 미숙련 노동자들을 토대로 가격을 후려치기만 하는 건설사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정임금제도는 건설현장의 안전도 또한 향상시켰습니다. 미국에서 조사해보니 적정임금법이 없는 주들이 적정임금법이 있는 주들에 비해 건설현장의 사망자가 20%나 많았습니다. 적정임금제도를 통해 기술력이 있고 경험이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 많아짐에 따라 안전도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입니다.

 

Q / 적정임금제도가 공공공사에만 적용이 된다면 민간공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나요?
A / 적정임금제도는 민간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공공공사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은 민간공사에서도 일을 합니다. 공공공사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적정임금제도를 통해 임금이 올라가고 숙련도가 올라가게 되면 이는 자연스럽게 민간공사로도 이전됩니다. 만약 민간공사에서 여전히 낮은 임금만을 고수한다면 이곳에서 일하려는 건설노동자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임금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적정임금제도는 민간공사에서도 전반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킵니다. 적정임금제도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유인을 만들고 이에 따라 경험을 쌓고 숙련도가 높아지면 공공공사와 민간공사를 포함하여 건설업계 전체에 고숙련의 노동자들이 많아지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저임금 저생산의 건설산업을 고임금 고생산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Q / 우리나라에서는 건설산업이 ‘복마전’, ‘무법천지’ 등으로 표현될 정도로 불투명하고 비리가 많기 때문에 쉽사리 손을 대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A / 예를 들자면, 청소를 하려는 사람이 엄청나게 더러운 방을 딱 마주치면, 너무 더러워서 그대로 놔두는게 차라리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깨끗한 방과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건설산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생산성에 불법과 어둠이 판치고, 비효율적이고 더럽고 위험한 상태인 건설산업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고칠 수만 있다면 그에 따른 편익은 엄청납니다. 건설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정부로서는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고품질의 건축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건설산업을 뜯어고쳐야 하는 유인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 교수

 

 - 유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건설노동시장을 전공한 노동경제학자

 - 미국의 적정임금법 전문가

 - 포모나대학교 학부 졸업

 - 스탠포드대학교 석사 및 박사

 - 저서 ‘적정임금(Prevailing Wage) 법의 경제학”(Hamid Azari-Rad, Mark Prus와 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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