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이해하기 (에릭 올린 라이트 저, 문혜림-곽태진 역, 산지니, 2017)

[서지정보] 원제 : Understanding Class 저자 : 에릭 올린 라이트 역자 : 문혜림, 곽태진 쪽수 : 416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400-7 93300 출간일 : 2017년 1월 24일

계급은 논쟁적인 개념이다. 한편에서는 계급의 죽음을 선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에서 계급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대표적 좌파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는 마르크스주의가 기세를 떨치던 1970년대에 계급연구를 시작하여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구조적 산물로서의 계급 vs 역사적 ․ 문화적 산물로서의 계급 논쟁, 중간계급 논쟁, 계급 죽음 논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계급분석 틀 고안에 힘써왔다. 독자들은 『계급 이해하기』에서 이런 계급 논쟁에서 불거진 쟁점들에 대한 고민과 판단, 더 넓게는 계급이론과 계급분석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발생한 사회학 내의 소통불능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사회학자의 노력을 살필 수 있다.

 

- 라이트의 새로운 통합적 계급분석 틀

라이트의 저서들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많이 출간됐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계급론』(2005년)과 『리얼 유토피아』(2012년) 두 권만이 완역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두 저작만으로도 국내 진보좌파진영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다. 『계급론』은 소위 중간계급 논쟁이라 일컬어지는 마르크스주의 민감한 난제를 다루었고, 『리얼 유토피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체적인 변혁전략과 대안사회의 상을 과감하게 제시했다. 새로운 역서 『계급 이해하기』는 라이트가 1995년부터 2015년 사이에 집필한 논문들을 모은 것이다. 앞서 출간된 두 저서의 이론작업을 총괄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는 새로운 계급분석 틀을 제시한다. 그는 통상 대척점에 있다고 간주되는 계층연구 전통과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게임의 비유’를 통해 계급분석에 함께 적용하고, 이론적 난제로 여겨지는 중간계급을 분석하기 위해 베버주의를 수용한다. 계층이론과는 선을 그었던 라이트가 계급분석의 추상수준에 따라 유연하게 분석기준을 적용하는 통합적 방법을 보여주고, 베버주의로의 귀착이라는 자신에 대한 비판 또한 반박한다. 비록 특정 국가나 시기에 자신의 분석 틀을 적용한 실증적인 자료는 이 책에 담겨 있지 않지만, 계급의 개념화 및 분석 방법 등 계급론의 방법론적 측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장점 중심의 비평으로 본 비마르크스주의 불평등 이론

『계급 이해하기』는 실용적 실재론의 관점(실재 메커니즘을 잘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 방법들을 통합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비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불평등 이론을 개괄하고, 계급분석에 필요한 부분을 적극 받아들인다. 막스 베버, 찰스 틸리, 오게 쇠렌센, 마이클 만은 분석을 위한 개념적 측면에서, 데이비드 그루스키와 킴 위덴, 토마 피케티, 잔 파쿨스키와 말콤 워터스, 가이 스탠딩은 21세기 계급을 분석하는 방법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된다. 책 본문 뒤에 첨부된 역자 해제를 통해서도 라이트가 본 비마르크스주의 불평등 이론의 의미와 한계를 간략히 정리해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주의 접근법이 종종 어떤 문제에 관해 서로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취해지는 기본적 태도 중 하나는 상대와의 논쟁에서 각자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적합한 지적 토론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책 논문들에서 나의 목표는 특정 이론가의 저작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발견해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의 가장 유용하고 흥미로운 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있다. 소위 이를 단점 중심이 아닌 장점 중심의 비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_ 「본문」 중에서

 

- 적극적인 계급타협과 비자본주의 경제영역의 강화

라이트는『리얼 유토피아』에서 전략적 다원주의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기로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했던 정치사조들(사민주의 전통, 아나키즘 전통,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전통)의 전략을 절충하는 전략이었다. 『계급 이해하기』에서는 이 중에서도 사민주의 전통에 속한 적극적인 계급타협 논리를 게임이론을 통해 면밀히 살핀다. 라이트는 자본과 노동 어느 하나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두 계급이 상호 협력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계급타협이 황금기가 아닌 침체 시기 자본주의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비자본주의 경제영역을 강화하는 아나키즘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노동계급의 단결력은 증가할 것이고 이는 적극적인 계급타협의 가능성 또한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라이트의 이런 사회변혁 전략은 민주주의를 사회 전 영역에서 실현하고 협동조합식 생산을 이상적인 생산체제로 간주하는 민주사회주의 전통과 매우 관련이 깊다.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조직의 비자본주의적 형태를 강화하는 것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가 유연하게 기능하는 것을 뒷받침하여, 자본주의 안에서 발생하는 잉여의 일부를 사회보험과 공공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비자본주의적 부문과 실천을 육성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인 계급타협을 위한 조건이 형성될 수 있더라도 자본주의 구조가 갖는 장기적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좌파는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비자본주의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이롭고 가능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_ 「본문」 중에서

다독가로 유명한 에릭 올린 라이트의 저작은 여러 학문분야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번역이 쉽지 않다. 또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이 되었어도 역자 간 차이가 존재하는 개념들이 왕왕 사용되어 확인과 판단이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계급의 죽음까지 논해지는 상황에서 계급론을, 그것도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을 다룬 저작이 국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한 옹호가 아닌 문제제기와 비판이라도 계급에 대한 토론을 다시금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번역한 동기이자 의미로 작용했다. 계급론을 공부하는 역자 역시 라이트의 계급분석 방법과 사회변혁 전략에 모두 동의하진 않는다. 그가 다른 불평등 이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했듯이 역자 역시 라이트의 이론에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고 본다(자세한 내용은 책에 첨부된 역자 해제를 참고). 하지만 누구도 선뜻 계급에 관해 말하지 않을 때, 계급 논의가 시대에 뒤쳐진 담론으로 치부되고 있을 때, 라이트는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계급에 관해 토론해야 할 때라고 제안한다. 독자들도 라이트가 제안한 이 값진 토론에 기꺼이 참여해주길 기대해본다.

 

 

 

 

※ 역자 토막인터뷰  - 문혜림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

Q) 계급을 나누는 사회시스템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조응해 운동적 ․ 의식적 차원에서도 노동계급이 형성되었다고 보는가?

A) 마르크스의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의 이행’이라는 문구를 떠오르게 하는 질문이다. 노동자가 개인이 아닌 계급으로서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단계를 이르는 이 표현은 ‘계급의식에 대한 계급투쟁의 선차성’을 이르는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개 자본가에 대한 투쟁에서 자본가계급으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투쟁의 경험이 필요하다. 계급의식이 형성된 후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계급의식은 형성된다. 계급을 나누는 강력한 사회시스템에 조응하기보다는 그에 대항하는 활발한 투쟁에 조응하여 운동적 ․ 의식적 차원의 노동계급은 형성되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자명한 표현을 해보자면, 노동진영의 활동가들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 한 이런 노동계급의 형성은 영원한 과제가 아닌 현실로 실현될 것이다.

 

Q) 에릭 올린 라이트는 중간계층과 노동계급 간 계급연합 전략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자로서 이런 계급연합 전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한 가지 수정할 부분이 있다. 라이트는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간의 연합을 주요한 사회변혁 전략으로 사유한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 경제영역의 강화를 통한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간의 계급타협을 주장한다. 물론 아나키즘 전통의 비자본주의 경제영역의 확대를 위해서는 중간계층(라이트에게는 중간계급)과의 연합이 필요할 수 있지만, 라이트는 이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명시하지 않는다. 계급분석 시 주요하게 다뤄졌던 중간계급의 존재가 자본주의 변혁전략을 수립할 때는 사상되어 버린 것이다. 역자는 중간계급이 독립된 하나의 계급이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분파가 혼재되어 현상하는 집단이라고 본다. 따라서 질문자가 제기한 계급연합보다는 계급 내 분파들의 연대 전략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며, 노동운동가 및 계급연구자들이 계속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가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전략은 반드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Q) 노동운동의 대중성과 계급성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중성을 띠지 못한 채 계급성만을 강조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이론의 수단에 불과한 것 아닌가?

A) 원론적으로는 노동운동이 대중성과 계급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인 한, 그것은 계급성을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질문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계급성만을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대중성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유의미한 운동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계급성과 대중성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자생성과 일상적 의식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에서 계급의식의 고양에 힘써야 한다. 물론 현실의 구체적 운동에서는 계급성을 중심으로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 과업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성의 확보를 위해 계급성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식의 생각과 실천은 오히려 노동운동의 현실적이고 잠재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