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 최명선 / 사진 매일노동뉴스

“안전한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의 공약 중 하나다. 그러나 2012년 구미 불산누출 사고부터 세월호 참사, 판교 붕괴사고, 코오롱 마우나 리조트 붕괴,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지진에 이르기까지, ‘안전한 대한민국’은커녕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자괴감을 느껴야했다. 매년 2,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이 빈번한 죽음 자체가 심각한 문제지만 그 죽음조차 불평등한 현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 아니라, 생명과 안전조차 불평등하다. 대표적인 비정규직 직군인 건설노동자들은 매년 아파트 건설현장, 화학물질 사고로 600여 명이 사망한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6년 한 해에만 1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삼성, LG 재벌 대기업의 2차, 3차 하청에서 불법 파견으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6명이 실명위기에 빠졌다. 주택 난간이나 지붕에 매달려 일하다 추락해 사망한 에어콘 수리, 케이블통신 수리 노동자들도 대기업의 하청노동자들이다. 이렇듯 주요 30개 대기업 산재사망의 95%가 하청 노동자다. 화물, 건설기계, 퀵 서비스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아예 통계조차 없다.

 

한전에서는 지난 5년 동안 710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6년 14조원의 영업이익이 전망되는 한전. 그러나 원청 정규직은 1인당 73만원, 하청 노동자는 공사 1건당 고작 1만7천원이 안전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 국민은 구의역에서 사망한 19살 김 군의 죽음을 통해 어렴풋이 위험의 외주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하청, 파견, 특수 고용이라는 뒤틀어진 고용방식은 재벌 대기업과 공기업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생명을 차별하고 위험을 외주화시키는 수단으로까지 악용된다.

 

산재 위험이 작업자 개인의 위험으로 끝나지 않는 다중이용 공공시설의 안전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 분야는 국가가 그 직접적인 책임주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다. 메르스 사태당시 병원의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인천공항 비정규노동자들은 최소한의 통보와 보호구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원전의 사고사망자는 100% 하청 비정규 노동자였고, 방사선 피폭은 일반인의 14배, 정규직의 10배에 달한다. 비정규직노동자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문자 통보에서 조차 제외됐다. 경주에서는 지진으로 열차운행이 변경된 통보를 받지 못한 채 선로보수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러한 공공시설 분야의 외주화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과 직결돼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노동자 시민의 생명안전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감사원의 지적에도 메르스 확산처인 삼성병원에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다가 2016년 12월에야 부랴부랴 처벌의 흔적을 남기려 한 것이 드러났다. 탄핵 사유의 핵심 중 하나인 국민의 생명안전보호 의무에 대한 방기는 세월호 참사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탐욕으로 노동자와 시민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보고도 대통령과 국가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주권자들은 촛불항쟁을 통해 박근혜 퇴진과 더불어 시대적 과제를 묻고 있다. 시민들이 말하는 정의와 평등은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를 말하며, 세월호는 그 상징이다. 오직 이윤을 위해 위험한 업무에 외주화를 남발하는 현실, 매년 2,400여명의 노동자 사망하고, 외주화에 따라 수백 명의 시민이 죽어도 기업이나 정부 누구하나 제도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중단돼야 한다. 위험한 업무,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부터 외주화 금지를 시작하자. 국회는 노동자 시민의 사망과 직업병에 대해 기업의 최고 책임자, 정부 책임자가 처벌을 받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국회의 책임은 탄핵가결로 끝나지 않는다. 생명안전의 불평등, 이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치는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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