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

박정희 시절, 노동조합은 금기였다. 중국의 유엔 가입을 계기로 1971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박정희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노동조합을 통제했다. 단체행동은 물론 단체교섭까지도 주무관청의 사전 조정을 거쳤고 노동조합은 따라야만 했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가 직접 노동조합을 파괴하기도 했다. 동일방직에 민주노조가 들어서자 다시 어용 집행부를 세우려고 조합 간부를 연행하고, 항의해 농성하는 여성노동자를 경찰을 동원해 끌어냈다. 대의원선출을 준비하는 민주노조 조합원들에 똥물을 끼얹는 만행을 기획 엄호하기도 했다.

박근혜 집권기간, 청와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몰아냈다.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는 네 차례나 거부당했다. 청와대 민정실은 전교조 사무실 회수와 복귀명령을 따르지 않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징계 등을 도모했다. 더 포괄적으론 노동개악을 강행하기 위해 정규직 과보호론 선전을 지시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공공기관 정상화대책과 성과연봉제지침으로 통제했다.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계승한 단체협약시정명령 제도를 악용해서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에 개입했다. 정부의 노조파괴는 취약계층 노조에도 거침이 없었다. 건설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고 단체협약을 맺는 것을 ‘공갈협박죄’로 몰아 탄압했다.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은 박근혜의 집권기간, 노조파괴를 대행하는 각종 노무법인들은 성업을 이뤘다.

아버지 박정희는 헌법을 바꿔가며 노동조합을 옥좼고, 딸 박근혜는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을 어기고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박근혜가 50년 전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계승해 노동조합을 탄압할 수 있는 건 노동관계법 곳곳에 남아있는 유신 잔재 덕(?)이었다. 유신헌법이 노동3권을 제한했던 것처럼, 오늘의 노조법도 노조 할 권리를 봉쇄하고 있다. 25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못한다. 공무원이나 교사, 교수도 제대로 된 노동3권이 없다. 노조설립 신고를 까다롭게 했던 유신시대의 법은 현재도 시행령에 남아있고, 노동조합에 해산명령을 할 수 있게 했던 악법은 ‘노조 아님’통보를 할 수 있는 시행령에 남았다. 단체교섭을 제한하던 특별조치법은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없게 만드는 노조법으로 이어졌고, 산별연합단체 지부로만 노동조합을 만들도록 국가가 노동조합을 통제했던 잔재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로 계승되어 이젠 아예 산별노조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특별조치로 언제든 단체행동을 금지했던 박정희 헌법은 손해배상 청구, 업무방해 형사처벌, 필수유지제도, 긴급조정 등등에 살아남아서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막고 있다.

법이나 제도는 노동자가 오늘 받아야 할 임금과 노동시간, 쉬는 날과 휴게시간은 지키라고 하겠지만,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은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유신의 잔재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노조법조차 더 나은 일자리를 요구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노조법 제1조 ‘목적’을 보자.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사용자와 단체교섭하며 요구 관철을 위해 파업할 수 있게 보장해야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할 수 있고, 그럴 때 산업평화는 물론 국민경제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권리는 현재의 권익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 권리 가운데 노조 할 권리는 미래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다. 정치에 주권이 있듯 노동자들은 경제주체로서 그에 마땅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700년 전 하멜른의 시장은 시장이나 시의회가 해결하지 못한 쥐떼를 피리를 불어 몰아낸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약속했던 대가를 주지 않았다. 그 탐욕에 분노한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마법의 피리를 불었고, 하멜른의 모든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좇아 산속 동굴로 사라졌다. 하멜른은 조잘대던 아이들의 목소리와 미래를 잃었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나아질 길 없는 노동자의 내일을 위해, 모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3권을 틀어막은 유신잔재를 노동법에서 털어내는 일이 급하다. 박근혜가 탄핵된 후에도 무능과 탐욕에 눈 멀어 마을의 미래를 잃은 하멜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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