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10주기 추모집회

철창에 갇힌 인권을 석방하라 -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 속에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부울경 이주공대위) 활동가들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모였다. 코리안 드림의 장밋빛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이 교도소를 방불케하는 속칭 '보호소'에 갇혀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매년 이 맘때, 이 곳에서 10년째 만나는 사람들은 안부 대신 '날씨가 너무 춥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만큼 부산 중구 영주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은 유난히 춥다. 올해는 그 추위가 극에 달했다. 한 참가자는 '10년이 된 화재참사 희생자의 한이 섞인 바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아래 추모집회)는 울산이주민센터 조돈희 소장의 사회로 시작했다. 이 날 추모집회에서는 화재참사 10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노예와 같은 삶이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공개되었다.

밀양 깻잎밭에서 하루 10~12시간을 일하며 월 2회 휴무에 월급은 약 120만원을 받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임금 대신 월 15만원 가량의 생계비를 받는 인도 노동자, 허리통증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하선(下船)한 베트남 선원 노동자를 선주가 이탈했다고 신고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강제퇴거 당한 사건도 있었다.

또한 강제퇴거 명령을 취소하라는 부산지법의 판결에 항소한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의 몰상식함과 의지도, 능력도 없는 고용노동부의 실상이 공개되었다. 추모집회는 참가자들의 발언에 이어 헌화와 묵념으로 마무리되었다.

내일(10일)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과 추모행사가 열리며 모레 토요일 오후 3시에는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울산이주민센터 조돈희 소장은 여수 화재참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뒤 "불법체류자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한국 정부의 문제도 함께 얘기하고자 한다"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성화하고 합법화 하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는 농업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해 발언한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정해 사무국장은 "하루 12시간 가량 일하며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여성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협박에 못 이겨 고용노동부를 찾았지만 5개월이 넘도록 해결된 것이 없다"면서 "노동부는 오히려 이 노동자들에게 깻잎밭에서 일 한 것을 증명하라고 했다. 근로감독관은 그 노동자들이 깻잎밭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며 분노했다.

정해 사무국장은 "이 나라에서는 부당과 모욕을 감내해야만 합법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혜에 관해 발언한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김은이 간사는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온 인도 노동자는 근무 중 손을 다쳤는데 산재가 불허됐다.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서 그렇단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 임금이 아닌 생계비 명목으로 월 15만원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김은이 간사는 "수 천명의 산업연수생들이 우리나라에 와 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할 노예제도이다. 여수 화재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이 제도를 바꾸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의 무리한 단속과 강제퇴거로 고통을 겪고 있는 베트남 선원노동자에 대해 발언한 이주민과함께 김그루 상담실장은 "제발 '보호'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 철창 안에 가두고 출입을 못하게 하는 것은 구금이고 수용이지 보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그루 실장은 "허리통증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하선(下船)한 베트남 선원 노동자를 선주가 이탈했다고 신고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강제퇴거 당한 일이 있다"며 "이탈 신고만으로 사람을 감금할 수 없고 신분증을 압류하는 것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라고 설명했다.

김그루 실장은 "지난 해 1월,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지법은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했지만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는 항소했다"며 분노했다. 추모집회 참가자들은 "뭘 잘했다고 항소하냐! 항소 포기하라!"라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여수 화재참사 희생자 열 분의 이름이 담긴 폼보드 위패.

 

"일시킬땐 노동자, 월급줄땐 연수생! 노예제도 폐지하라" 부울경 이주공대위 활동가들과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집회 사회를 하고 있는 조돈희 울산이주민센터 소장.

 

발언 중인 정해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사무국장, 김은이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간사, 김그루 이주민과함께 상담실장.

 

피켓으로 만든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부상자의 증언이 지나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판 노예제도, 산업연수생제도 폐지하라"

 

세찬 바람에 제단이 쓰러지지 않도록 활동가들이 양쪽을 잡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천연옥 비정규위원장이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