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노동조합에 가입했지요. 뭐가 달라졌냐구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분회가 87년 6월 항쟁과 7‧8‧9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조합원들과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87년 당시 병원 내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땠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동조합을 세워 투쟁했던 조용숙 서울대병원 간호부 조합원의 이야기입니다.

조용숙 서울대병원 간호부 조합원

- 결혼하면 병동으로

79년 3월쯤에 입사했던 거 같아요. 월급이 10만원이 안 되었던 기억이 나요. 4만원 저축하고, 6만원으로 생활했어요. 같이 취직한 친구랑 자취했는데, 친구가 바로 시집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간호보조원들이 결혼만 하면 외래에서 병동으로 꼭 힘든 곳만 골라서 올려 보냈어요. 저도 외래 1년 있다가 바로 쫓겨 올라갔어요. 결혼했다고. 사실 그 때 수간호사가, 여름휴가를 신혼여행으로 포개서 가면 외래에 그대로 있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싫다 그랬더니 바로 병동으로 올려 보내더라구요. 그래서 교수님이 많이 화 내셨던 기억이 나요. 대체 왜 다 가르쳐 놓으면 병동 가냐고. (웃음)

 

- 다들 일하다가 애 낳았죠

한번은, 제가 피부과 외래에 있을 때 맞은편 안과 외래에 있던 간호보조원이 계속 살이 찌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니, 임신을 했다는 거예요. 결혼했다고 알리면 병동에 올라갈까봐 말을 못한 거였죠. 그런 사람 꽤 있었어요. 하여간 얼마 뒤, 그만두더라구요.

 

그 때는, 출산휴가는 42일뿐이었어요. 심지어 그것도 분만예정일부터 쓸 수 있었어요. 근데, 애가 딱 분만예정일에 나오나요? 더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산후조리가 다 안 되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들 얼굴 붓기도 다 안 빠진 상태에서 출근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꾀를 내기 시작했어요. 하루라도 더 쉬려고 분만예정일을 말 안하고, 애 나오기 직전까지 일을 하는 거예요. 미련하게. 그렇게 일을 하다가 진통이 갑자기 오면, 3층 분만장에 가서 애를 낳는 거예요.(웃음) 지금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근데 참 많이들 그렇게 했어요. 하루라도 더 쉬고 싶어서.

 

기억해보면 참 많이 유산들 했던 거 같아요. 너무 힘드니까요. 결국 동기 중 몇 명은 병원 그만두고 임신해서 애 낳고 사는 친구들도 있어요. 참 간호부는 왜 그렇게까지 모질게 했나 싶어요.

 

-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그 때는 막 알려지면 안 된다고 쉬쉬했던 기억이 나요. 저도 사실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죠. 다들 그냥 하니까.(웃음) 쉬쉬하면서 뭔가 이름을 적으라고 했던 거 같은데, 돌이켜보니 그게 노동조합 가입원서였던 거 같아요.(웃음) 하여간 계속 말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아요. 큰일 난다고.

 

제일 기억나는 건, 가입하고 나서 병원이랑 협상을 할 때 우린 병원 2층에 모여 있었는데, 가족한테 편지를 쓰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저는 돌 지난 우리 큰 애한테 쓰면서 많이 울었었어요. 다들 엄청 울었던 거 같아요. 불안하니까. 확신이란 게 없으니까.

 

- 월급, 간호화, 생리휴가, 탄압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탄압이 참 심했던 기억이 나요. 안하던 출근부 감시도 하고. 저는 그 때 수간호사가 괜찮은 편이어서 파업 나갔다가 오면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고 했는데, 다른 병동 애들은 엄청 수간호사 때문에 고생했다고 하더라구요. 파업 나갔다오면 더 모질게 굴고, 힘든 부서로 로테이션 시키고.

 

근데 참, 월급은 많이 올랐어요. 입사할 때는 서울대병원이 우리나라 최고니까 월급도 제일 많이 받을 줄 알았는데, 이건 다른 데보다 훨씬 적은 거예요. 그래서 봉급 인상 요구를 제일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많이 올랐죠. 노동조합하기 전에는 병원이 월급도 잘 안 올려줬어요.

 

사실 제일 좋았던 건, 병원이 간호화를 준 거에요. 그 때까지만 해도 병원이 간호복만 주고, 간호화는 내 돈 주고 사서 신어야 했었는데 그걸 따낸 거죠. 압박붕대도 주고요. 종일 서서 있으니 다리가 붓잖아요. 그러고보니 복지도 많이 따냈던 거 같네요.

 

또 생리휴가도 따냈어요. 근데 웃긴 건, 생리휴가를 받으려면 수간호사한테 말을 해야 하잖아요? 무섭잖아요?(웃음) 그러니까 평일에 말 못하다가, 주말에 전화하는 거예요. 못 나갈 거 같다고. 그래서 주말에 병동 근무가 참 많이 펑크 났었죠. 일요일 병동에 아무도 없던 적도 있고. (웃음) 그러니까 수간호사가 화가 나서 생리한 걸 증명하라는 식으로, 생리대를 갖고 오라고 했던 거예요. 어이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 간호사 엄마가 병원에 생리대 들고 찾아 온 적도 있어요. 어떤 미친X이 갖고 오라고 했냐고.

 

- 나의 바람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 때는 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너무 다들 이해타산적인 거 같아요. 서로 돕고 나누고 했었는데 말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복지를 거저 주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아요. 그냥 주는 거 아닌데. 그거 다 사람들이 일군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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