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무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에 반발여론 확산

경북 문명고 학부모들은 17일 오전 학교 앞에 한국사 국정교과서 거부 현수막을 게시했다. / 사진=현장제보

국정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이 지난 15일 마감됐다. 교육부는 연구학교 신청 ‘0’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전교조 탓’으로 돌리며 연구학교 응모 기간 연장 '꼼수'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전국 5249개 중고교 중 경북지역에서만 3 개교가 국정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들 학교의 연구학교 신청 과정을 들여다보면 최소한의 절차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조 경북지부 등에 따르면 연구학교 신청 3개 교 중 항공고, 오상고는 연구학교 신청을 위한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지 않았고, 경북도교육청은 ‘교원 동의율 80% 미만인 학교는 연구학교 공모에서 제외한다’는 연구학교 운영 지침을 무시한 채 공모 신청을 받는 등 파행이 이어졌다. 

게다가 뒤늦게 학교 측의 연구학교 신청을 인지한 교사, 학생들의 반발로 경북 오상고는 하루 만인 16일 오후 연구학교 지정 신청 철회를 선언하면서 연구학교 신청 학교는 전국에서 단 두 개만 남게 됐다.

“가슴 아프고 부끄럽고 참담하네요.”

두 학교 중 하나인 경북 문명고의 ㅊ교사는 학생 피해를 걱정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에 반대하는 교사 의견서에 이름을 올린 그는 부장 교사 보직 해임을 통보 받은 상황이다.

ㅊ교사는 “도교육청이 연구학교 공모 공문을 발송한 1월 중순부터 학교 내 반대 움직임이 있었고 2월 6일에는 연구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교사 10명이 직접 서명한 의견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하지만 3일 뒤 부장교사 보직 해임을 통보받았다. 반대 서명에 참여한 또 다른 교사는 담임에서 배제됐다”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부실 교과서로 수업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학교는 따로 보직 해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두 교사 모두 연구학교 지정 반대 의견서에 서명했다.

이준식 교육부총리는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정교과서 구하기'에 나섰지만 연구학교 신청결과 국정역사교과서에 대한 싸늘한 국민 여론만 확인한 셈이다. / 사진=교육희망 자료사진

전교조 경북지부는 “교사들이 국정 교과서에 반대했다고 이미 발표한 2017학년도 부장교사 보직과 담임 보직을 아무 이유 없이 박탈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면서 이영우 교육감에게 연구학교 추진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차상의 문제점을 점검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6일 문명고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지역단체 관계자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SNS 등을 통해 ‘일베 학교가 된 것이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문명고 졸업생과 학부모들은 17일 현수막 걸기, 학교 항의 방문 등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촉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경북지부와 구미지역 교육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북 오상고는 전체 교사의 의견 수렴 과정은 물론 학교운영위원회까지 생략한 채 도교육청에 연구학교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16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교사들은 대책회의를 진행한 뒤 학교 측에 항의했다. 학생들도 운동장에 모여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시범학교 지정 반대 손 피켓을 들었다.

교육시민단체 관계자는 “학부모는 물론 졸업생들까지 학교에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학교는 연구학교 신청 철회 입장을 정했다.

이용기 전교조 경북지부 대변인은 “교육부와 일부 보수언론이 국정교과서 실패를 전교조 탓으로 돌리지만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함량 미달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인지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경북 김천고는 연구학교 신청 마지막 날인 지난 15일 학부모의 항의 방문, 연구학교 중단을 촉구하는 학생 대자보와 자율 토론, 교사들의 반대 결의문 등 반발 여론에 연구학교 신청 포기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용우 경북지부 총무국장은 “아이가 입학할 학교가 연구학교를 신청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부터 연구학교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관련 전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말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연구학교를 신청한 경북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위한 교육시민사회정치 비상대책회의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국민의 상식이 거둔 당연한 결과인 만큼 교육부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요구를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연구학교 신청과정에서 학교 구성원이 의사결정에 자유롭게 참여하지 못한 한계가 드러난 만큼 교육부의 경북교육청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희망하는 모든 학교에 국정역사교과서를 무료로 보조교재로 지급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은 학교 현장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또 다시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를 살리려는 꼼수일 뿐”이라는 말로 보조교재 배포 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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