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예비후보 캠프 노동회의소 설립 방안 공개…“산별교섭부터 법제화하라”

<세계일보>는 3월13일 “모든 근로자 의무 가입 ‘법정노동단체’ 신설 검토”라는 제목 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예비후보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감 국민성장’이 공개한 ‘노동회의소(가칭)’ 신설 방안을 단독 보도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정책공감 국민성장’은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비정규직과 실업자 등 일정기간 고용보험 납부 실적이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의무 가입하는 법정노동단체로 노동회의소를 구상하고 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이며 법정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를 상대하는 성격이다.

운영 재원은 고용보험을 바탕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공감 국민성장’은 우리나라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1천8백만명에 달하는 90% 미조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법정노동단체를 구성해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노총 요구 노동회의소, 민주당 대선공약으로 가나

애초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국민의 당이 한국노총의 노동회의소 설치 요구를 받아 노동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진출한 이용득 의원 등 한국노총 출신 인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이 한국 노사관계의 대안이라며 노동회의소를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의원 주관으로 2월17일 국회 의원회관 2소회의실에서 ‘새 정부의 과제, 비정규직 등 취약노동자 이해대변기구 마련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어 근로자대표위원회와 노동회의소를 소개했다.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노사협의회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민정협의회, 노사발전재단 등은 근로자이익대표제도로서 애초 노동자 이익 대변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대안으로 노동회의소 제도를 소개했다.

김기우 연구위원은 “산업구조 변화와 고용형태 다변화,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기술변화 등을 원인으로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무제공자를 보호할 필요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논평은 산업 기술변화와 고용형태 악화라는 원인이 발생한 이상 그 원인을 규명하고 교정하는 정책마련이 우선이며 산별교섭을 무력화시키는 제도는 그대로 놔둔 채 “초기업 교섭이 어려우니 노동자 권익대변을 외부화하자”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 태도나 지금까지 노동계가 이룬 노력의 결실을 보면, 초기업별 단체교섭은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권익대변 외부화가 산업평화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산별교섭 성사가 어려운 이상 노동회의소를 설치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예비후보 쪽에서 그리는 ‘한국형 노동회의소’는 가입대상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와 실업급여 수급대상, 특수고용직까지 포함한다.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을 기본으로 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까지 보조재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회의소 역할로 ▲법안에 대한 입장표명과 제안 ▲고용사업, 교육, 문화, 환경보호, 소비자보호, 주거 등에 관한 대책 ▲가격 등 경제정책 ▲근로자 이익 관련 정보와 법률서비스 ▲노동법, 사회보장법, 기타 근로자 보호와 관련한 법률규정 준수 감시 등이다.

 

1921년부터 시작한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노동회의소 제도 설계는 노동회의소를 오랜 기간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가 교과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회의소는 오스트리아 전역과 룩셈부르크, 독일 16개 주 중 브레멘과 자를란트 2개 주, 이탈리아 일부에서 시행 중이다. 노사협력 전통이 강한 오스트리아에서 노동조합의 줄기찬 요구 끝에 1921년에 입법해 전국 상공회의소에 상응하는 노동회의소(AK) 운영을 시작했다.

법률상 모든 임금노동자가 의무 가입해야하며 임금 총액의 0.5%를 회비로 납부한다. 실업자와 연금생활자도 실업급여나 연금의 0.1%를 회비로 납부한다. 전체 노동자 수가 350만명인 오스트리아에서 노동회의소 회원은 330만명에 달하고 연간 회비 규모는 3억4천만 유로(약 4천135억원)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일곱 개 산별노조조직에 123만여 조합원을 보유한 오스트리아 노총(ÖGB)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핵심 사업인 노동자 대상 법률서비스를 비롯해 정부, 경제계, 언론, 법안 등과 관련한 입장 대변, 소비자 보호, 교육과 훈련 사업 등을 벌인다.

오스트리아 노동자들은 노동회의소를 통한 법률자문을 한사람 마다 한 해 평균 세 번씩 받고 있다. 노동회의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대단히 높아 2위인 대통령이나 3위 중앙은행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인을 규명하고 교정하는 정책마련이 우선

노동회의소와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간 뒤 대선 정책공약으로 노동회의소 설립을 요구해온 한국노총은 3월14일 논평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환영했다.

실제 산별교섭 시도는 물론, 조직 확대에 어려움이 있는 한국노총은 노동회의소를 통해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자 단체와 협의를 벌여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노동회의소가 법제화하면 적극 참여해 막대한 재원을 운용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은 3월14일 논평을 내어 “노동회의소가 노조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 산별교섭을 법제화해야 하며 사용자단체의 산별교섭 참가를 법 제도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6일 금속노조 2016년 1차 중앙교섭 상견례에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불참했다. 사진=신동준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노총 입장이다. 굳이 한국노총 언급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취약한 미조직·비정규 노동에 대한 방안 마련이 시급한 점은 사실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노총 김기우 연구위원 말대로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기술변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증가는 정부의 방치 아래 산업별 교섭을 거부하고 산업기술 변화를 기회로 노무비용 축소를 노리는 사용자들의 후진적 노무관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불안정 노동 보호를 위한 ‘서비스’ 제공인 노동위원회 제도는 이 같은 원인과 무관하다. 말하자면 결과에 대응한 정책이다.

민주노총은 3월14일 논평을 내어 “노동회의소가 노조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유일한 법정노동단체는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노동조합”이라며 “노동조합 이외의 법정노동단체를 구성하려는 발상은 결국 노동조합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산별교섭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사용자단체의 산별교섭 참가를 법 제도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논평은 산업 기술변화와 고용형태 악화라는 원인이 발생한 이상 그 원인을 규명하고 교정하는 정책마련이 우선이며 산별교섭을 무력화시키는 제도는 그대로 놔둔 채 “초기업 교섭이 어려우니 노동자 권익대변을 외부화하자”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노동회의소를 전국에 걸쳐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조건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산별교섭이 단체교섭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노조 조직률은 50%에 이른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경제·사회적 동반자관계’라는 오스트리아 특유의 노사정 협력 체제를 유지해온 나라다.

강력한 산별교섭을 기반으로 상공회의소를 상대하는 노동회의소 설치를 스스로 요구했던 오스트리아 노동계와 달리 우리 노동조합의 산별교섭은 자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가장 형편이 낫다는 금속노조 중앙산별교섭은 사용자 외면으로 나날이 규모와 위상이 줄고 있다.

고용보험을 기본으로 하는 재원 마련과 운영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있다.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은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을 노동회의소 보조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에 대해 “정부가 산재 기금에 기여하는 비율은 고작 0.2%에 불과한데 노동자를 위한 세금 확충은커녕 노동자들이 낸 보험금을 뽑아 쓰겠다는 말”이라고 따졌다.

문재인 예비후보 쪽은 노동회의소를 통해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과 대립 노사관계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있다.

노동회의소가 현실화할 경우 교섭권조차 확립하지 못한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은 방향을 잃고 노조가 수행해야할 산업정책 교섭이나 사회 의제 제시,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강력한 교섭력 확보 등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조직 확대 사업을 벌여 온 민주노총 역시 전망의 큰 부분을 잃을 확률이 크다. 이번 대선과 차기 정권의 노동 공약과 정책을 눈여겨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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