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노동자의 하루... 그리고 365일

정찬길씨(만 49세)는 서울고등법원 종합접수실에서 민원접수와 제증명 업무를 맡고 있다. 하루의 시작은 외국인 난민사건 민원서류로 시작한다. 언어소통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특히나 재정신청업무(고소인의 검찰 고소건이 불기소처분된 건을 다시 기소해달라고 고등법원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할 땐 욕설과 고성이 오간다. 법관들의 판결에 대한 민원인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는 터라 그 화풀이 대상은 오롯이 직원들에게 돌아간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서비스 지침’ 때문에 직원들은 말 한 마디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감정을 통제하다 보면 사무실 전체 분위기는 침체된다.

“민원 수요 중에 우선 순위를 정해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싶어요. 악성 민원 때문에 소극화된 행정은 자발성과 합리성을 제한하고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만들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친절문제는 항상 직원들을 도마 위 생선으로 만들어버린다. 법원 행정처에서는 대국민 사법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불친절 직원은 징계를 주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 징계를 받은 직원들도 있다. 법원행정처의 과도한 친절 지침은 법의 형평성과 기준까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법의 테두리에서 한참 벗어난 요구를 하는 민원인들에게도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며 대국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인지... 내가 이러려고 공무원이 된 건지 자괴감이 찾아온다.

일례로 ‘사법서비스 체크리스트’의 ‘복장과 용모’ 항목은 ‘스타킹은 살색, 커피색, 검은색을 착용하며 발목까지 오는 레깅스는 착용하지 말라’는 다. 민원응대태도 항목에서는 자세와 손동작까지 ‘껌 씹지 않기, 몸 뒤로 젖히지 않기 등등’을 친절하게도 조목조목 나열한다. 직원들이 평소에 그렇게 했다는 것인지 다분히 인격 모욕적인 평가항목들이다. 사람을 못 믿는 지침은 사람의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깎아내릴 뿐, 진정한 대국민 친절서비스와는 거리가 멀다.

하루를 마치고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이다. 하루 종일 억눌렀던 감정을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 안 그러면 목 디스크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낮 시간에도 감정노동을 해소할 공간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심신을 잠깐이나마 쉬게 할 공간 말이다. 법원 노동자로서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직원들의 자살과 돌연사. 남의 일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2과 윤지혜(만 33세). 윤씨는 민사재판을 준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장을 접수하고 판결 선고 전까지 재판 전반의 업무를 담당한다.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 오는 당사자들이 거의 없기에 그것을 채우는 과정은 온통 직원들의 몫이다. 법원은 당사자의 소송에 중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기관임에도 법원은 그 기준을 벗어난 판단을 요구한다. 대국민 사법서비스 지침에 따라... 법원은 당사자에게 유리한 방식을 알려주는 기관이 아닌데도 민원인들은 그런 것을 아주 쉽게 요구한다. 그것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욕설과 고성은 당연히 따라 붙는다. 지침에 따라 절대로 맞대응해서도 안 되고 끝까지 존댓말로 악성 민원인을 상대해야 한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법무사의 조력을 통해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아쉽다. 진정한 친절의 길은 멀고도 요원하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당 기관 감사담당관에서 전 직원 메일을 보내 “법원장 특별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그 중 “사투리를 쓰면 민원인이 불친절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광주나 부산지역의 직원들은 모두 다 불친절하다는 결론 아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법원장의 인격모독행위를 지적하며 노조에서는 성명서를 냈다.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친절의 잣대, 직원들은 감정노동에 힘겨워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하다.

윤지혜씨는 작년 형사합의과에 근무할 때 주당 60시간 근무를 했다. 전자소송 같은 새로운 제도가 시행될 때마다 인력충원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그저 직원들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살인적인 노동강도 직원 자살과 과로사가 잇따르자 법원행정처는 그제서야 대책 마련에 나섰다. 모직원은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다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해서 직원들이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다. 자살을 택한 직원들의 대부분은 평소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무능력자로 찍힐까봐 두려웠어요.” 결국 문제는 공직사회로 침투한 성과주의다. 성과퇴출제 가 도입된다는 얘길 들었을 때 끔찍했다. 성과퇴출제는 공공업무의 협업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다. 조직의 공동체정신을 파괴하고 개인주의와 권력 앞 줄서기를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나 구글사에서도 실패한 사례를 왜 유독 고집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해결책은 노동조합이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죠.” 서울중앙지법 박정열 지부장은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됐던 법원 직원들의 자살과 돌연사를 회상하며 운을 떼었다. 경매와 등기업무, 연일 재판부 업무의 엄청난 노동강도를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진 직원들. 잠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자살사건과 돌연사가 발생하면 진상조사위를 꾸리고 유족들을 만나고 동료들의 진술을 들었다. 제도적 문제점은 조직적인 투쟁을 통해, ‘업무상 재해 발생’ 처리는 공무원연금공단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조합원들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400~500명의 인력충원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박지부장은 2011년 김병하 계장님의 자살 사건이 그 전환점이 되었다고 회상한다. 노동조합의 지속적인 투쟁은 이 사건의 서울행정법원 승소를 일구어낸다. 자살도 업무연관성이 있으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판결로... 또 한편으론 16,000명 법원 직원들의 상호부조회 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한 결과 2015년 조직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법원본부 차원에서 집중하고 있는 사법개혁 과제는 조기 대선 이후 새정부에 의해 임명될 대법관으로 초점이 모아져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 이력, 권력과 자본에 굴종하지 않는 인물, 조합원들의 노동기본권 향상에 힘써줄 사람이 대법관으로 임명되도록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박지부장은 힘주어 얘기한다.

“2009년 3개 노조가 통합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총투표를 성사했을 때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탄압으로 법외노조가 되고 10년 이상 단체교섭도 못 했지만 묵묵히 노동조합을 믿고 따라준 조합원들이 고마웠어요.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고 이젠 정말 이기는 싸움을 해야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노조사무실을 방문하는 조합원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입니다’ 창문에 붙여진 선전물이 봄볕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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