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 곽장영(공공연구노조 한국건설기술연구원지부장)

공공운수노조에서 ‘4.3항쟁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팩스가 왔을 때, 올해는 지부 조합원들에게 ‘조합비로 경비를 지원해 줄 테니 참여해 보라’고 했다. 1박2일 일정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조합원은 모두 6명. 이 정도라도 성공이라 생각해 본다.

공공연구노조의 확대간부수련회는 뒤늦게 잡혔는데 다행이 공공운수노조의 ‘4.3항쟁 역사기행’과 같은 주 중반에 잡혔다. 두 프로그램에 다 참석하겠다고 한 나는 5박6일간 제주도에 남아야 했다.

‘4.3항쟁 역사기행’은 언젠가 참가했던 기억이 있는데, 사진을 뒤져 보니까 ‘노동자역사 한내’를 따라서 2014년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겨우 3년이 지났을 뿐인데 4.3 항쟁도 잊어 버렸고, 어디를 다녔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덕구 산전에서 본 깨진 가마솥, ‘동광리 넓은 궤’에 들어갔던 기억, 굴 밖에 무심코 피었던 할미꽃이 생각난다. 육지에서는 눈 씻고 찾아 다녀도 보이지 않는 할미꽃인데... 그리고 고사리가 한창이었던 때라 주변에 제주 고사리가 지천으로 머리를 내밀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한주먹 뜯긴 했지만 그걸 먹어보지는 못했다.

우리 노조의 확대간부수련회 2일차에 점심을 먹고 ‘4.3항쟁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한나절의 시간이 주어졌다. 봄은 왔지만 아직 쌀쌀하다. 4.3기념관을 한 바퀴 돌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듣는데 그동안 잊혀졌던 4.3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이틀간 노조활동과 관련한 토론이 별 재미도 없었고, 그래서 밖에서 따뜻한 햇살이나 느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우울과 분노가 스멀스멀 내 몸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 중에 인간만큼 잔인한 생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을 다 쓸어버리고, 산속을 뒤져서 죽이고, 감방에 갇혀 있던 사람들마저 몰아서 죽이는 생물들이 인간이라니... 내가 인간인 것이 부끄럽고 답답했다. 무려 3만 명(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을 죽음에 몰아넣도록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싸워야 할 그 무엇이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세대는 다시 이 같은 상황이 온다면 조금 달라질 것인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이 오싹하고 쌀쌀한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다.

이덕구 산전을 찾아서 가는 길은 사려니길. 자전거로 두 번을 달렸던 길이다. 산속으로 꺾어 졌어도 여기에 왔던 곳인지 기억이 안 난다. 마른 내를 건너고, 억새밭을 지나서야 어슴푸레 기억이 난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돌 울타리 안에 깨진 가마솥과 사기그릇이 모여 있다. 이덕구와 그의 동지들이 이렇게 힘들게 산속에서라도 싸우면서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살아남아서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명태와 과일 서너 개를 놓고 소주잔을 따라놓고 절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슬퍼지고 우울해지는 기분과 함께...

우리 노조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돌아가고 나는 남았다. 공공운수노조의 ‘4.3항쟁 역사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제주도로 오고 있는 지부의 동지들을 기다리면서... 토요일 제주공항에서 시작한 기행은 곤을동 유적지를 거쳐서 다시 우리 노조의 기행과 같은 곳을 거쳐 가고 있다. 곤을동 마을엔 집터와 돌담만이 지난 광기의 시절을 보여 주고 있었고, 그 때도 피었을 것 같은 유채꽃이 말없이 피어 있었다. 이덕구 산전에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시 올랐다. 그러나 깨진 가마솥과 돌담을 보는 순간 또다시 올라오는 우울과 분노. 그들이 아직도 어딘가 살아 있을 거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4.3기념관 기행은 지치기도 하고, 몸이 으슬으슬해서 건물 안의 커피 집에 앉아서 보냈다. 내부에 들어가서 두어 시간 동안 4.3항쟁의 역사를 다시 되새기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숙소에 와서 약간의 행사를 하고 저녁을 먹겠다고 했는데 그냥 잠들어 버려서 밥 먹으러 늦게 갔고, 밥만 먹고 돌아와서는 곧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집밖에서 잠드는 날이 5일째인데다 ‘4.3항쟁 역사기행’에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마음의 힘도 완전히 고갈된 듯했다.

다음 날 제주 시내에서 ‘4.3항쟁 역사기행’이 계속되었다. 관덕정에서 시작해서 시내 중심가의 4.3유적지를 설명해 주었지만, 그 설명이 없다면 이곳에서 7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더구나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도 꺼려하고 있다니... 이어진 민주노총 집회와 행진으로 공공운수노조의 ‘4.3항쟁 역사기행’은 끝이 났다.

3만 명의 죽음이 말해 주는 것은 제주도 전체가 4.3항쟁의 유적지라는 것이다. 그냥 날씨 좋고 경치 좋아 놀러 다니기에는 너무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자 곧 잊어버리기도 하겠지만, 다시 제주를 찾을 때는 4.3항쟁이 꿈꾸었던 세상,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다시 한 번 그려보기로 다짐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