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선 민주노총 전 조직실장 / 저항의 필연성과 희망의 가능성 보여준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성장기

⌜들꽃, 공단에 피다⌟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노조결성 2주년을 맞아 조합원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 펴낸 책이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해지와 집단해고의 두려움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과 연대로 자신을 단련시켜온 성장의 과정을 살아있는 입말로 차근차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이 책은 단숨에 읽힌다.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책의 구성은 탄탄하고 이야기를 푸는 목소리는 쫀득쫀득하고 글에는 힘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22명의 아사히 조합원들이 한 명 한 명 차례로 교도소 내 방을 들락거리며 얘기를 전해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 책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겪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정규직은 누구나 같은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비정규직이고 싶어서 비정규직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딜 가도 비정규직이고, 어딜 가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 사실 이젠 갈 곳도 없다.” 
(조합원 최진석)

그렇다. 비정규직 노동자 열의 아홉이 그렇듯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사는 이유는 정규직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윤을 향한 자본의 끝없는 탐욕이 정규직은 없애고, 비정규직을 늘렸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당하는 부당한 차별과 비인격적 대우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노동자의 저항은 필연이 된다.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의 힘을 깨달은 노동자는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세상을 인식한다.

“노조활동을 하기 전에 나는 강자 앞에선 약자로, 약자 앞에선 강자로..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짓밟히며 사는 게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가슴속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노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내 분노의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잘못된 거란 것을 나는 그 동안 저항 할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대의원 안진석)

노동자라는 자각을 통한 인식의 전환은 활동의 목표를 뚜렷이 세우게 만들었고, 실천하는 힘이 된다.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은 것,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은 것, 현장의 주인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와 투쟁을 통해 삶의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노조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다. 투쟁의 불확실성보다 비정규직의 삶이 주는 절망이 더 깊다. 이들은 결코 예전의 노동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아사히 노동자들은 장기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하고 건강한 감성을 갖고 있다. 늘 흔들리는 삶의 조건 속에서도 깊고 단단하게 현실을 껴안는 삶의 자세가 뭉클하다. 절박함으로 이어지는 장기투쟁은 두려움과 패배감, 원망과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가면 저 동생들은 어떻게 하나? 형님들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결코 ‘나 하나 나가면 그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조합원 박세정) 

“철거 당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행됐고 차 안에 갇혔다. 동지들은 다섯 시간이나 비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속이 탄다. 저 허름한 농성장이 우리 투쟁의 끝이고 희망이었음이 새삼 느껴졌다. 한편 ‘그래, 어차피 철거할거면 해라. 또 새로 짓지 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꿈도 희망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우리의 것이 된다.” 
(대외협력부장 이민우)

이런 다짐에서 배려와 공감, 여유와 감사로 커가는 노동자를 만난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빠질 수 없는 힘은 연대다. 울산 과학대, 강원도 동양시멘트와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에서 성주 사드반대 투쟁까지. 지역과 업종, 부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대와 공동투쟁은 아사히 노동자들을 가장 노동자답게 만드는 ※본질이다. 

[※ 그 옆에는 6년간 노조파괴, 정리해고, 손배에도 꺾이지 않고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금속노조 KEC지회가 있다. KEC지회 동지들의 연대는 수준과 질이 다르다. 연대는 남는 것에서 보태는 게 아니라 내 것을 덜어 나누는 것임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다. 지금도 아래로부터 연대를 조직하는 KEC지회의 모범을 아사히 동지들에 이르러 더 크고 넓게 확장되고 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투쟁과 정신은 들꽃의 생명력에 맞닿아 있다. 차헌호 지회장의 바램처럼 이 책이 끝나지 않는 모든 투쟁에 힘이 되고, 전국에 넘쳐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씨앗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법적 대응을 함께 한 이경호 노무사는 글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노조 할 권리의 완전한 보장⌟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허기진 나를 든든히 채워준 꿀맛나는 밥상이었다. 아사히 동지들과 책을 만드는데 함께 해 준 모든 분들이 고맙고 반갑다. 무엇보다 동지들이.. 보고 싶다.

2017. 5. 
춘천교도소에서 민주노총 전 조직실장 배태선 

 

■ 차례 

책을 내면서 ―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차헌호

1부  새싹, 시멘트 바닥을 뚫다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 ― 오수일 
지랄 같은 세상의 노동자들 ― 남기웅 
쉬는 시간 20분 만에 먹던 도시락 ― 최진석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 박세정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 김정태 
승리하는 날, 신명나게 노래하고 싶다 ― 이영민 
나의 새로운 도전, 몸짓패 ‘허공’ ― 장명주 
맨몸으로 버틴 천막농성장 강제철거 ― 김성한 
투쟁의 눈물과 우리의 희망이 담긴 농성장 ― 이민우 
국경을 넘은 연대의 감동 ― 민동기 
밥하는 것이 나의 투쟁 ― 조리담당 짬장 

2부  꺾이지 않고 질기게

돈 버는 것도 투쟁! ― 송동주 
공동투쟁으로 만난 소중한 동지들 ― 오수일 
서울 경찰, 생사람 잡네 ― 전영주 
나는 1급 이발사, ‘이발’로 세상과 연대하다 ― 조남달 
연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처럼 ― 이명재 
가족들의 사랑으로 고통을 이기고 ― 박성철 
가족에게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 허상원 
곁에 있고 싶은 아빠의 마음 ― 한상기 
동지에 대한 믿음으로 ― 임종섭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 민동기 
노동조합에서 함께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 안진석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 ― 차헌호 

3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 아사히 투쟁의 사회적 의미

구미공단 산업 변화와 아사히 비정규직 노조 ― 천용길 
아사히 투쟁과 법・제도 ― 이경호 
공공・행정의 뒷짐 속에 파괴되는 노동과 삶 ― 신순영 
전범기업 아사히글라스와 악마 변호사 김앤장 ― 안명희 
노동자는 하나다! 품앗이를 넘어 공동투쟁으로 ― 초희 

에필로그 ― 책을 함께 만든 편집팀 ‘별별책’ 
아사히 비정규직지회가 걸어온 길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소개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 
책을 함께 만든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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