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입으로 저임금, 장시간노동 돌파하는 흥아포밍지회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하루 기본 잔업 3시간, 토요일, 일요일 특근까지 합니다. 조합원 월 평균 잔업시간이 120시간 입니다. 연간 3천4백시간정도 일합니다.” 이상현 흥아포밍 지회장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 이상현 지회장은 지회 설립하고 난 뒤 회사 쪽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누가 지회간부를 맡고 있는지 간보려고 했던 것 같다고 한다. 회사 쪽이 간부들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직장, 반장 등 현장의 주요 기술자들이 전부 지회 간부를 맡았다. 신동준

흥아포밍 공장에 비정규직은 없고 전부 정규직이다. 흥아포밍이 착해서 정규직을 채용한 게 아니다. 최저임금 수준 임금을 주니 굳이 비정규직을 채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바로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최저임금으로 4인 가족이 먹고사는 생활비를 벌려면 무조건 많이 일하는 수밖에 없다. 흥아포밍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길을 생각했다. 바로 ‘노동조합’이다. 흥아포밍 노동자들은 2016년 8월 금속노조 경남지부 문을 두드려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지회를 설립했다.

흥아포밍은 타이어를 만드는 ‘흥아타이어’ 그룹의 계열사다. 르노삼성자동차에 차체를 납품하는 1차 벤더 업체다. 경남 김해 골든루트 산업단지에 공장 두 곳이 있고 경주 냉천에도 공장이 있다. 세 개 공장 노동자 360명이 모두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흥아포밍은 공장을 새로 짓고 흑자가 나는데 입만 열면 죽는 소리를 해요. ‘한마음 협의회’가 매년 노사협의회를 열었지만 회사 쪽 입장을 전달하는 창구일 뿐이었습니다.” 흥아포밍지회 이상현 지회장과 김태식 사무장은 ‘한마음 협의회’ 대표와 간사를 맡고 있었다.

“노사협의회에 들어가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안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 쪽 제시안에 노동자가 맞춰주는 교섭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회사 쪽이 해가 갈수록 노동자에게 불리한 안을 관철하려고 해서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흥아포밍 노동자들은 노사협의회의 한계를 벗어나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고 현실을 바꾸기 위한 길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현 지회장은 “주변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시는 분이 있어 금속노조를 소개 받았어요. 노조 경남지부는 노동조합을 왜 만들려고 하느냐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니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이 지회장은 “처음 경남지부에 찾아갔을 때 상담만 받으려 했습니다. 우리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을지 없을지 스스로 반신반의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경남지부가 정말 열성으로 도와주는 거예요. 용기가 솟았습니다. 이왕 상담 받은 거 노동조합 한 번 해보자 마음먹었죠.”

 

조마조마했던 지회설립 보고대회

흥아포밍 현장 노동자 20여명이 비밀리에 모여 교육을 받으며 3개월 동안 단단히 준비했다. 2016년 8월 지회를 설립하고 2공장 마당에서 보고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참석할까, 잘 따라줄까. 정말 떨렸습니다. 보고대회 하는 날 한 조합원은 심장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흥아포밍 들어오고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김태식 지회 사무장의 표정에서 그날의 가슴 벅찬 감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보고대회를 하는데 처음이라 서툴렀습니다. 조합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호응을 보내줬습니다. 특히 여성조합원들이 많이 응원해줬습니다. 경남지부 다른 지회 조합원들이 많이 와주셨습니다.” 흥아포밍 노동자들은 벅찬 가슴으로 금속노조 푸른 깃발을 공장에 힘차게 꽂았다.

김태식 사무장은 “그날 옆 공장 사람들이 놀랐을 겁니다. 공장 마당에서 투쟁가를 크게 틀고 함성이 울렸으니까요. 르노삼성자동차 납품업체들 가운데 처음 생긴 노동조합입니다. 게다가 금속노조 가입해서 관련 업체 사장들이 긴장할 겁니다.” 이렇게 경남 김해시 골든루트 산업단지에 하나의 노동조합 거점을 만들었다.

김 사무장은 “김해에 노동조합이 딱 세 개가 있어요. 칼소닉칸세이코리아지회가 금속노조에 가입할 때 흥아포밍이 금속노조 지회를 설립했다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대요. 다른 사업장도 노동조합에 많이 가입하면 좋겠어요.”

 

노조 가입하고 노동자 요구 관철 시작

흥아포밍지회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가입 뒤 가장 큰 변화로 현장 노동자 요구가 관철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노조 가입 전에는 회사 쪽 방침만 일방으로 강요받고 따라야 했다고 한다.

이상현 지회장은 “회사 쪽이 에너지 절약한다고 지붕을 투명한 재질로 설계해 한여름에 공장 실내온도가 40℃ 이상 올라갑니다. 완전히 쪄죽을 판입니다. 일하다 구토하고 쓰러지는 노동자가 나옵니다. 회사 쪽은 그런 사고가 생기면 잠시 휴식시간을 주고 얼음물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고 다시 일 해야 했습니다.” 흥아포밍 노동자들은 얼음물 먹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수없이 요구했지만 회사 쪽은 좀 더 지켜보자는 대답만 했다.

지회를 설립하고 나서 지회는 회사 쪽과 교섭을 벌여 투명한 공장 지붕을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재질로 바꾸는 공사를 하게 했다. 공장식당 식사 단가도 인상했다. 회사 쪽이 노동자 불만사항을 바로 개선하는 게 조합원들 눈에 보였다. 노동조합이 있어 달라지는 현장을 체감했다.

이상현 지회장은 지회 설립하고 난 뒤 회사 쪽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누가 지회간부를 맡고 있는지 간보려고 했던 것 같다고 한다. 회사 쪽이 간부들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직장, 반장 등 현장의 주요 기술자들이 전부 지회 간부를 맡았다.

흥아포밍은 지회 설립 뒤 지회에 “이왕 노조를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 대신 한국노총에 가입하면 어떠냐”며 은근히 떠보기도 했다. 금속노조 존재감을 이런 사용자들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아포밍지회가 노조 가입 시점부터 현장 노동자 전체를 조합원으로 조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억눌렸기 때문이다. 지회 설립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더구나 직장, 반장들과 주요 기술자들이 나서서 지회 설립을 추진했다.

흥아포밍은 신입사원이나 10년, 20년씩 근무한 노동자나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불만은 장기 근속자들이 더 컸다. 지회는 무엇보다 낮은 임금에 대한 조합원 불만이 높기 때문에 올해 가장 중요한 요구로 임금인상과 호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내세웠다. 임금이 올라야 그만큼 잔업시간을 줄이고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식 사무장은 “임금인상 요구가 가장 절실합니다. 단체협약은 우선 노동조합의 틀을 갖추자는 뜻으로 체결했습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검토해 지킬 조항은 지키고 바꿀 조항은 바꿀 겁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상현 지회장은 “회사 쪽이 현장 라인 권력을 빼앗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쪽은 지회 만들기 전에는 기술 내용은 직장, 반장들하고 기술자들에게 다 맡겼는데 요즘 어떻게 하는지 상세히 묻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노조 가입 후 지회에 대한 회사 쪽의 공격이나 탄압이 없었다. 지회는 설립 1년이 돼가는 지금부터 회사 쪽이 슬슬 대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이상현 지회장은 노조 조합원들에게 할 말이 꼭 있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집회할 때 대오 안에서 담배를 막 피웁니다. 저도 흡연자지만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한 집회 때 지나가는 여성 한 분이 담배 피우는 조합원들을 보고 ‘양아치새끼들’이라며 욕을 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중이 상식으로 생각하는 기본예절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지회장과 김태식 사무장이 힘찬 지회 활동을 다짐하고 있다. 신동준

금속노조,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야

이상현 지회장과 김태식 사무장은 대중이 생각하는 금속노조의 벽이 높다고 했다. 이상현 지회장은 “언론에서 금속노조 투쟁하는 모습만 보여주니까 주변 노동자들에게 과격하다는 선입견이 생긴 듯합니다. 금속노조가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이 투쟁만하는 집단으로 비춰지니 선뜻 노동조합에 가입할 생각을 못 한다는 말이었다.

전영진 교선부장은 “저도 금속노조에 가면 회사가 망하든가 내가 그만두든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전영진 교선부장은 막상 노동조합 활동을 해보니 그런 생각이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전영진 교선부장은 근속 20년차다. 흥아포밍 창립 때부터 일한 최고참이다. 이런 사람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노동조합을 선택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현장에서 라인장 직책을 맡은 최고참 선배 노동자로서 회사 쪽과 노동자들을 연결하는 위치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영진 교선부장이 20년 동안 공장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회사 들러리 조직인 노사협의회 역시 한계가 빤하다는 것이었다. 전 부장은 금속노조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이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 조합에 가입하도록 금속노조가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금속노조 문을 쉽사리 두드리지 못했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

이상현 지회장은 노조 조합원들에게 할 말이 꼭 있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집회할 때 대오 안에서 담배를 막 피웁니다. 저도 흡연자지만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한 집회 때 지나가는 여성 한 분이 담배 피우는 조합원들을 보고 ‘양아치새끼들’이라며 욕을 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중이 상식으로 생각하는 기본예절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근함’은 어렵고 큰 무엇이 아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중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대중이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집단을 특별하게 보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삼가자는 주장이다.

김태식 사무장은 “1987년부터 선배노동자들이 30년 싸웠다면 앞으로 30년은 우리 세대가 노동조합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50년, 100년 이어가는 금속노조를 만들려면 노조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며 지회장의 말에 동의했다.

이상현 지회장은 초보 지회장으로서 아쉬움과 어려움을 호소했다. “처음 활동하다 보니 조합활동과 조합에서 쓰는 용어를 잘 모르겠어요. 10년, 20년씩 해 오신 분들은 한마디만 해도 다 알아듣는데 저만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저 같은 초보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 더 눈높이를 낮춰 주셨으면 해요.” 이상현 지회장은 신규 지회로서 조합원들과 함께할 일상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힘들어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1987년 마창노련과 전노협 시절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간부 조합원들이 다수 있다. 이제 막 금속노조 조합원이 된 새내기 간부들과 경험과 정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문을 열고 자세를 낮춰야 하는 쪽은 선배 조합원들이다. 금속노조가 가진 소중한 자산과 정신을 새내기 조합원에게 전수하고 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역사를 이어 나가야 한다. 어떤 경험, 정신, 가치를 이어나갈지 지금 우리 모습 속에서 반성하고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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