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동자입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사연 첫 번째

 

공공운수노조 재택집배원지회 유아 지회장이 '특수고용노동자 라이브 방송 '사장님 줄게, 노동자 다오!'에서 사연글을 낭독하고 있다. ⓒ 변백선 기자

집배원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우체국 전화번호와 우체국택배 대표번호가 선명하게 박힌 빨간 수레를 끈지도 10년!

시작할 땐 4살이던 나의 막둥이가 벌써 중2가 됐네요. 어린이집 자리가 날 때까지 편지배달 할 때 수레에 태우고 다녔습니다. 전날 구분해놓은 우편물 배달을 위해 오전 8시부터 시작하면 점심밥도 못 먹고 배달을 하고, 애는 수레에서 지쳐 잠들고 ... 그렇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재택집배원 아파트단지 게시판에 붙은 구인광고를 보고 잘됐다 생각했습니다. 재택이라고 하니 집에서 애들 키우면서 경력도 단절 되지 않고, 살림도 하고 가계 보탬도 되고 1석 3조다! 싶어 냉큼 이력서를 써서 한걸음에 우체국에 이력서를 냈고 그날로 채용됐습니다.

근데 오판이었습니다. 분명 재택이라고 했는데 모든 업무가 현장에서 시작하고 끝나고, 저녁이면 우편물이 어마어마하게 왔습니다. 우편물 구분도 제가해서 배달을 해야 한다기에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이내 시작한 거니 한 달 월급은 타고 관두자 하며 우편물 구분을 시작, 분명 저녁 일찌감치 먹고 시작했는데 담날 새벽 5시에 우편물 구분이 끝났습니다. “아휴~~” 한숨이 나왔습니다. 날밤을 새워 구분을 하고 8시쯤 배달을 시작하고 등기를 배달했습니다. 일반우편물과 등기배달,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배달하는 것도 민원 상대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이유 없는 폭언에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을 다 참으며 보낸 세월이 오늘입니다.

“딩동! 딩동!”, “계세요~ 집배원입니다”그러면 다짜고짜

“야! 너 왜 나자는데 벨 눌러 이년이 죽을라고...”

험함 욕설에 3일을 쫒아 다니는 민원의 갑질이 시작됐고, 우체국은 오히려 잘 때 벨 누르면 짜증내는 게 맞다며 민원편만 들었습니다. 그날 서러워서 많이 울었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민원대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해고를 당할까 억울하게 욕만 먹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힘든 건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란 사실이었습니다. 재택집배원이 생긴 이래 단시간 노동자에서 2013년 4월 개인사업자 특수고용직으로 신분을 바꿔버린 우정사업본부의 힘에 우리의 저항은 맥없이 무력화됐고 우린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노조였습니다. 2013년 5~6월쯤 구원의 손길을 찾아 간곳은 간판이 다 떨어진 민총(민주노총), 순간 온몸에 송충이가 기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언론에서 말로만 듣던 그곳! 빨갱이 집단!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 때 두 손을 잡아준 곳이기에 “한 번 믿어보자”란 마음으로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재택집배원의 노동자성을 찾는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첨엔 급여나 올려보잔 맘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것이 다가 아니란 깨우침도 있었습니다. 노동자성, 우리들의 이름을 돌려 달라 1인 시위, 집회, 기자회견을 했지만 철옹성 같은 우정사업본부와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게 버림받은 힘없고 빽없는 노동자들이 마지막에 찾는 곳은 법원이었습니다.

법률소송 1심 2심 승소, 재택집배원은 우정사업 본부의 노동자가 맞다는 판결을 받던 날 울었습니다. 노동자란 이름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대법원에 상고를 하고 현재도 재택집배원은 희망투쟁을 진행 중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정부로 바뀌면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 요구에도 희망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겐 인권은 없고 해고는 있고, 누군가의 휴식 날 휴식 없이 일해야 밥이라도 한 숟갈 뜰 수 있는 그런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정부가 만들고 정부가 버린 노동자! 

이제 그 이름 노동자를 돌려주세요.

 

2017년 6월 7일 재택집배원 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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